세모가 다가오자 올해도 어김없이 이 골목 저 골목에서는 우렁찬 “위하여!”소리가 넘쳐 납니다. 괴롭고 힘들었던 일이 너무나 많았기에 모두들 그것을 잊어버리고 싶어 술잔을 기울이며 외쳐대는 메아리입니다.

전래의 고유 풍속은 아닐지라도 경제가 어려워 모든 국민들이 고통 속에 보낸 한해였기에 망년회라도 가져 괴로움을 잊으려하는 마음은 십분 이해되고도 남는다 하겠습니다.

망년회는 본래 일본의 세시풍속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옛날부터 연말이 되면 친지끼리 모임을 갖고 덕담을 나누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전통이 있는데 그것이 망년회의 뿌리입니다.

원래 망년(忘年)이란 훌륭한 사람과는 나이에 관계없이 벗으로 사귄다는 중국의 고사 망년지교(忘年之交), 망년지우(忘年之友)에서 비롯된 말이지만 이것을 일본사람들은 ‘한해를 잊는다’는 것으로 뜻을 바꿔 망년회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것이 우리 나라에 들어와서는 일본 못지 않은 국민적 연례행사가 되어 이제는 빼 놓을 수 없는 연말의 세시풍속으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때문에 어떤 이들은 일본의 풍습을 따라하는 것을 못마땅해하면서 명칭을 놓고도 “왜, 일본식 망년회냐”며 “송년회로 해야한다”고 이의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라고 하겠으나 송년회 역시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할 수도 없으니 명칭이 그리 대수는 아니지 않은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망년회가 됐든, 송년회가 됐든 한해를 마무리하는 의미의 모임이라면 바람직하기는 합니다. 그렇다면 망년회는 지난 한해를 되돌아보면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묵은 것을 정리하는 대화의 자리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망년회는 그렇지 못하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조용히 담소를 나누기보다는 진탕 먹고 마시고 왁자지껄 떠들어대며 흥청대는 것으로 시종 하는 것이 현실이기에 말입니다.

2차, 3차는 정해진 코스요, 고성방가로 노래방이 떠나가고 때로는 폭언으로 시비마저 벌이는 볼썽 사나운 모습조차 없지 않으니 건강까지 해치는 이것을 아름다운 정경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괴롭고 슬펐던 일이 너무나 많았기에 잊고 싶은 것도 많겠지마는 그렇다고 몇 잔 술로 괴로운 일이 잊어지는 것은 아닐 터인즉 어찌 딱하다 아니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술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한잔 술이 만고의 시름을 씻는다(一盞能消萬古愁)”는 옛 글도 있듯 술은 풍진세상을 사는 윤활유이긴 합니다. 하지만 술 몇 잔에 한해의 시름을 잊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나저나 2004년, 갑신년도 10여일 뒤면 역사 속으로 묻히게됩니다. 즐겨 읽는 한시(漢詩)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해는 서산에 지는데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西山日暮重任途遠)”…이를 어찌 필자만의 심정이라 하겠습니까.  /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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