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만의 빨갱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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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만의 빨갱이 이야기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4.12.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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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주성영의원의 폭로로 시작된 정치권의 친북공방이 점입가경이다. 흥미로운 것은 문제의 친북·용공논란이 과거와는 좀 다른 양상을 띤다는 것이다. 과거 군사·권위주의 정권시절엔 친북세력 즉 빨갱이는 철저하게 특정 세력의 양극화 잣대로만 세상에 알려졌다.

빨갱이로 몰린 운동세력이나 지하조직들이 이 빨갱이를 색출하려는 국가기관에 의해 난도질 당하면 일반 국민들은 그저 그 결과를 브리핑받는게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빨갱이로 몰린 측이나 이를 물고 늘어지는 세력들보다는 일반인들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사상과 이념에 대한 진단과 해석도 너무나 자유스럽다.

정치권이 6, 70년대의 낡은 도그마에 휩쓸려 주접을 떠는 이 순간에도 국민들은 좀 더 발전된,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열고 있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대한민국의 국보급 ‘빨간 바이러스’ 정형근의 부활은 섬뜩하다. 주성영의원의 폭로 이후 그는 “여당에 조선노동당 관련 의원이 더 있다”며 장기간의 침묵을 깼다. 마치 박쥐가 어두움이 스며들자 부지불식간에 날개를 펴듯이 말이다.

이근안이 고문의 기술자였다면 정형근은 시국사건의 기술자다. 그가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만들어낸 각종 시국사건 뒤엔 역시 고문과 반인륜, 반역사가 점철돼 있다. 89년 6월 어느날 남산의 안기부 건물 지하에선 밀입북 혐의자 서경원이 정형근의 고문과 구타로 피를 세바가지나 쏟았다.

한번은 재떨이로 하나, 또 한번은 양재기로 하나, 마지막엔 바가지로 하나, 이렇게 코와 입으로 쏟아져 나온 피는 서경원이 석방 후 국회의원이 된 정형근을 보자마자 또 한번 솟구쳤다. 이번엔 이런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저주스러워서다. 시인 박노해가 고문에 못이겨 거울을 깨 왼쪽손 동맥을 끊은 91년(사노맹)과, 양홍관이 성기고문 등을 참다 못해 자술서를 쓰게 된 92년(민족해방애국전선)의 어느 음습한 날에도 여지없이 정형근의 충혈된 눈이 거기에 있었다.

한나라당의 빨갱이 공세로 불쌍하게 된 건 엉뚱하게(?) 박근혜대표다. 이철우의원이 젊은 시절 외친 ‘친북·용공과 반미’가 빨갱이의 족쇄라면 박근혜의 부친인 박정희야말로 똑 떨어지는 빨갱이와 반미분자였기 때문이다. 만주 군관학교에 자원입대 후 일본 육사를 나와 관동군장교로 잘 나가던 박정희는 일본의 항복으로 그가 그렇게 원했던 ‘군인의 길’을 마감해야 할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다시 조선경비사관학교(육사 전신)에 들어가 군인의 길을 이은 박정희는 대구에서 좌익을 주도한 형 박상희가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자 형 친구 이재복의 포섭으로 남로당에 가입했고, 곧 이어 터진 여순반란 사건으로 대대적인 남로당 색출과 숙군이 이어지면서 체포됐으나 이번에는 잽싸게 변신, 수사에 협조함으로써 1개월만에 석방됐다. 이때 남로당 동지들을 배신한 건 물문가지다. 게다가 박정희는 자타가 공인하던 반미주의자였다. 박정희는 재임동안 미국과 번번이 부딪쳤고, 미국 혐오증의 결정체가 바로 핵무기의 자체개발이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번 빨갱이 망령은 이를 처음 폭로한 한나라당 주성영의원의 과거 때문에도 더 음습하다. 그는 현직 검사이던 춘천지검 시절, 34세의 젊은 혈기로 음주 뺑소니를 치다가 경찰에 붙잡히고도 적반하장으로 아버지뻘 되는 파출소의 담당 경찰관(당시 53세)에게 ‘앉아 일어서’를 명령해 대한민국 공권력을 유린했는가 하면, 전주지검 공안부에 근무하던 40세 땐 음식점에서 유종근전북지사 비서실장의 머리를 술병으로 내리 쳐 6㎝를 찢어놓은 장본인이다. 이는 살인미수나 다름없다. 한나라당이 이런 비이성(非理性)들의 유혹에서 벗어나 빨갱이의 무당혼을 털어내지 않는 한 정권을 잡기는 앞으로도 영원히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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