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출신으로 대전법조비리사건 단초 밝혀냈던 기획조사의 ‘달인’

40여 일간 첩보전 방불케 한 기획세무조사 성공적으로 수행해 화제

기자들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진실을 발굴하거나 사회의 구조적인 비리를 파헤치는 등 공동체의 건강과 발전을 위해 문제의식을 끝없이 던지는 데에서 존재이유와 보람을 확인한는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세상이 놀랄만한 ‘일대 특종’을 발굴한다면 그것은 자신에 부과된 신성한 의무를 다하는 동시에 대단한 영광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희망사항이다.
하지만 특종이란 간혹 소가 뒷걸음치다가 가재 잡듯 우연히 낚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기자의 치열한 문제의식과 시대정신, 첩보와 정보·소문이 뒤엉켜있는 속에서 진리와 신성한 사실들을 골라 낼 수 있는 천부적인 감각, 부분적 사실들을 조합해 실체적 진실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 나아가 이를 과감하게 활자화할 수 있는 용기도 없이 행운만으로 결코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획세무조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축구에서 골게터가 있듯 특종 역시 기자라고 아무나 하지 못한다. 이것은 수사나 조사기관 역시 마찬가지다!

개청 이래 최대규모의 투기조직을 적발한 대전지방국세청(청장 조용근)이 요즘 사기충천의 분위기에 싸여있는 것 역시 이들이 뛰어난 후각과 집념, 외부의 압력을 완벽하게 차단한 채 첩보전을 방불케 한 강도 높은 ‘기획 세무조사’ 끝에 의미있는 ‘대특종’을 일궈낸 때문이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청주출신인 홍순필 대전지방국세청 조사2국 조사1과장이 이번 기획세무조사를 가능케 한 ‘첩보수집-사실확인’은 물론 기획조사 드림팀의 지휘관으로 활약한 사실이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그는 몇 년전 사법권력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변호사를 대상으로 법원칙을 들이대며 세무조사를 실시, 결과적으로 ‘대전법조비리’ 사건을 밝혀내는 데 결정적 단초를 제공하는 등 일찍부터 기획세무조사 전문가로서의 능력과 강단을 보여 온 인물이어서 주목을 끌고 있다. 이번에 굵직한 투기조직을 장기간의 기획조사 끝에 그가 적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청주세무서 등 국세청 조직 안팎에서는 “역시 홍순필 과장…”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 40여 일에 걸친 기획세무조사를 통해 전국 규모의 부동산 전문투기조직을 적발해 낸 대전지방국세청 조사2국 소속 홍순필 조사1과장(가운데)과 드림팀 소속 조사요원들.

대전국세청 직원들도 몰랐던 극비작전

취재가 본업인 기자들과 수사 또는 조사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는 신분의 상이함을 떠나 단박에 동질성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홍순필 과장을 만난 기자는 대뜸 “기자로 말하자면 대특종을 한 셈인데 기획세무조사에 나서게 된 경위와 조사과정에서 겪은 애로사항 등을 듣고싶다”며 홍 과장을 막바로 대화본론으로 끌고 갔다.

“지난 9월 충북의 한 언론에 실린 기사에서 단서를 포착했다. ‘오창 공동택지 용지가 전매되는 과정에서 투기혐의가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1명의 기자가 짧은 시간에 접근한 까닭에 모든 정보가 들어있지는 않았지만 분명 놀랄만한 기사였다. 단서는 이렇게 포착됐다. 즉각 내부조직을 가동, 오창신도시의 분양현황 등에 대한 파악에 들어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즈음 조용근 대전지방국세청장이 조사1과장인 나를 부르더니 ‘오창 얘기가 나도는 데 주목하라’고 지시했다. 이 말에 고무된 나는 “이미 내사에 착수한 상태”라며 “청장께서 외압을 철저히 막아만 준다면 끝까지 진실을 파헤치고 싶다”고 했다. 기획세무조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홍 과장은 자신이 지휘하는 조사1과를 중심으로 조사2국내 정예 조사요원 8명을 선발, 첩보전처럼 비밀작전에 들어갔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철저한 보안 속에 착수한 조사는 무려 45일간이나 계속돼야 했다. 투기총책 A씨가 부산 경남일대를 본거지로 하고 있는 부동산 업계의 ‘거물’이었기 때문에 사실관계를 확정해나가는 작업은 가시밭길처럼 험난했다. 거물답게 A씨는 조사초기 완벽한 방어전술을 폈다.

거물 A씨를 무너뜨린 소신과 정확한 증거

“이번 기획조사는 청장과 조사2국장, 조사1과장인 나, 그리고 팀원을 제외한 누구도 몰랐다. 같은 대전국세청 조사2국 직원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성격의 기획조사는 기밀유지 여부에 성패가 달리기 때문이다. 40여일간 계속된 장기조사 과정에서 애로는 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좋은 예로 조사요원들의 동선을 숨기기 위해 일몰 이후에야 부산 현지로 내려보내야만 했다. 부하들이 혹 과로로 사고라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들은 밤새 현지탐문 작업을 한 뒤 다음날 오전에 귀환한 이후에도 쉴 틈조차 없이 조사업무에 투입됐다. 기름값을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가스차량을 빌려 쓰던 일화도 잊을 수 없다.”

홍 과장은 “조사요원들이 40여 일간 지치지 않고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제 국세청이 정의로운 세무조직으로 우뚝 서 국민의 편에 서 있음을 보여주자. 그러기 위해서 이번 기획조사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격려를 요원 모두가 자기 소신으로 승화시킨 때문”이라고 고마워했다.

역시 A씨가 화제초점으로 떠올랐다.
“A씨는 우리의 조사망이 시시각각 자신을 겨냥해 조여져오고 있는 것을 어느 순간 포착한 이후 여러 곳에 구명선을 댔던 것 같다. 심지어 ‘홍순필 과장이 어떤 사람인지’도 뒷조사를 했던 모양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A씨와 친분이 있는 국세청 직원이 ‘그 사람은 대전법조비리사건의 단초를 제공할 만큼 강단있는 사람이다. 거짓말로 진실을 감추고 끝내 조사에 비협조적으로 나온다고 해서 중간에 포기할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차라리 조사에 순순히 협조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A씨에게 조언했다고 한다. 어쨌든 어느 순간 A씨의 태도가 크게 바뀌었는데 이 일이 있고 난 후가 아니었나 싶다. 물론 우리가 수집한 결정적인 증거가 그의 태도변화를 일으켰겠지만….”

홍 과장은 “조사초기 완강했던 A씨는 뒤늦게 ‘잘못을 시인한다. 모든 것을 말하겠다’고 태도를 바꾼 뒤 제3자 명의로 위장해 둔 자신의 재산까지도 모두 털어놓았다”며 “이 덕분에 그의 재산을 압류, 215억원의 추징세액에 대한 조세채권을 전액 확보할 수 있었다”고 했다.

오해의 소지가 없기를 바란다며 어렵게 말을 연 홍 과장은 “조사과정에서 지켜본 A씨는 보통 통이 큰 것 같지 않았다”며 “하지만 중요한 것은 투기조직들 때문에 결과적으로 일반 시민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세간의 의혹을 이번에 사실로서 입증해 냈다는 것”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홍 과장은 “이들의 투기행위를 보다 일찍 파악했더라면 선량한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고 못내 아쉬움을 털어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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