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꾼과 병원장이 합작해 ‘먹잇감’사냥

오창과학산업단지 등 토지공사가 개발한 전국의 공동택지만을 대상으로 계약금만 내고 분양받은 뒤 6개월도 지나지 않아 중도에 거액의 프리미엄을 받고 건설사에 분양권을 전매하는 방법으로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청난 차익을 챙겨온 부동산 전문투기조직 사건의 충격파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전문 투기조직의 투기규모와 수법의 대담성이 세무당국조차 “개청 이래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고 토로할 만큼 일반의 상상을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일반인에게 놀라움을 넘어 허탈감마저 던져주고 있다. 특히 투기조직이 공동택지를 손쉬운 투기대상으로 삼을 수 있었던 데에는 공기업의 정신을 망각하고 “아무에게나 땅만 팔면 된다”는 토지공사의 도덕적 불감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큰 파장과 함께 논란이 예고되고 있다.

“토지공사의 도덕적 불감증이 투기 조장”

충청리뷰는 대전지방국세청에 의해 적발된 전국 규모의 투기세력들이 펼쳐온 투기행각 전모는 물론 세무당국이 관련 첩보를 입수해 기획조사에 착수하게 된 경위 첩보 및 비밀작전을 방불케 한 조사과정의 숨겨진 얘기들을 집중 취재했다.

특히 이번에 굵직한 대형 투기사범을 적발한 대전지방국세청 조사2국 내 조직은 대전법조비리사건의 단초를 제공하는 등 강골의 ‘기획 세무조사 전문갗로 불리는 청주출신 홍순필 조사1과장(52)이 이끄는 ‘드림 팀’이었던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

기획조사 발표내용=지난 10일 대전지방국세청은 예고에 없던 기자회견을 자청, 언론의 ‘특종’에 비견될만한 ‘대박’ 사건을 터트렸다. 오창과학산업단지를 무대로 한 대규모 투기조직을 45일간 집요하게 추적한 끝에 ‘일망타진’한 것이다.

오창 땅 4만 5000평 32억에 계약했다 6개월만에 400억 챙겨

대전지방국세청은 10일 “아파트건설 시행과정에서 투기조직이 개입해 분양가 상승을 부채질한다는 사실이 장기간에 걸쳐 비밀작전을 펴듯 전개한 이번 기획조사에서 확인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대전지방국세청은 토지공사가 개발한 오창과학단지 내 공동주택용지를 분양대금의 10%인 32억원을 계약금으로 납부한 뒤 아파트건설사에 전매, 계약금 규모의 10배가 넘는 386억원의 프리미엄을 챙기며 세금을 탈루한 부동산컨설팅업자 A씨(47)와 건축업자 B씨(50) 병원장 C씨(39) 등 투기조직을 적발했다. 이들은 역시 토지공사가 분양한 대전 계룡지구도 ‘손 댄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세무당국에 전매차익을 64억원으로 축소 신고, 세금을 탈루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전문투기조직과 투기자본의 암약, 이로 인해 부동산가격에 거품이 발생하고 있다는 항간의 추측이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실체가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대전지방국세청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아파트용지 전매과정에서 투기세력이 챙긴 거액의 프리미엄은 아파트 건축원가에 포함돼 분양가 상승 소비자 피해로 이어진 셈이 됐다”며 이번 사건의 특징을 자세히 설명했다. 대전지방국세청은 이들에 대해 215억원의 세금을 추징하고 조세포탈범으로 대전지방검찰청에 형사 고발했다.

215억 추징한 뒤 검찰에 고발조치

적발된 투기조직과 수법=세무당국에 적발된 이번 투기조직의 총책인 A씨(47)는 의외로 ‘거물’이었다는 게 대전지방국세청의 설명이었다.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A씨는 부동산업계의 살아있는 전설과도 같은, 부동산투기의 귀재였다. 부동산컨설팅업자 A씨는 뛰어난 투기적 본능과 후각, 결단력의 소유자로 통했고, 실제 그가 손대는 물건들은 엄청난 이윤을 가져오는 등 불패신화를 계속, 그에게 돈을 대지 못해 안달하는 투기자본들이 쇄도할 정도였다는 게 세무당국의 전언이다.

“A씨의 투기수법은 대범하고도 치밀했다. A씨는 부동산개발업자 B씨(50)와 병원 원장인 C씨(39)를 전주로 끌어들이는 한편 D씨 등 4명을 속칭 ‘바지’로 동원했다. 이들 바지는 A씨 등에게 부동산 매매과정에서 명의를 빌려주는 대가로 ‘구전’을 받는 공생관계에 있다.”

   
▲ 오창 아파트공사현장. 이곳 공동택지를 투기의 제물로 삼아 수백억원을 챙긴 투기조직이 적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거물이었던 A씨는 부동산 흐름포착에 동물적 후각 가져

대전지방국세청은 “A씨는 전주들이 댄 자금을 갖고 전국에 걸쳐 토지공사가 택지개발한 곳을 주무대로 땅을 분양받았다가 몇 개월 새 전매하는 방식으로 계약금의 최고 10배 이상 웃돈(프리미엄)을 챙긴 뒤 전매차익 규모를 축소신고, 세금을 탈루 해 온 민생경제침해사범”이라고 정의했다.
오창을 무대로 이뤄진 투기행위의 전말=이번 기획 세무조사결과 드러난 A씨 등 투기조직은 오창에서만 불과 6개월 만에, 그것도 단돈(?) 32억원을 종잣돈으로 삼아 400억원 가까운 거액을 단숨에 움켜쥔 것으로 드러나 대담한 투기수법과 혀를 내두를 만큼 정확한 부동산 시장 흐름 포착 능력을 보여줬다.

대전국세청은 “A씨는 2002년 12월과 2003년 1월 1개월 여 사이에 속칭 바지들인 D씨 등 4명의 명의로 두 필지에 달하는 오창 내 공동택지 4만 5000평을 평당 71만 1000원씩 총 320억에 분양받으면서 10%인 32억원을 계약금으로 지불한 뒤 불과 2개월과 6개월만인 2003년 3월과 7월에 ‘ㄿ과 ‘ㄴ’ 건설업체에 400억원의 웃돈을 받고 분양권을 전매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결국 A씨는 반년만에 32억원을 투자, 원금을 빼고 368억원의 차익을 올린 것.

세무당국은 “A씨는 전주들과 차익을 50대 50으로 나눠 가지면서 당국에는 차익실현 규모를 64억원으로 축소신고, 세금을 탈루했다”며 “A씨는 물론이고 의사인 병원장이 투기자본의 실체였다는 점도 충격”이라고 말했다.

토지공사는 문제없나=A씨 등 투기조직은 오창뿐 아니라 대전 계룡지구 등 토지공사가 분양하는 땅만을 대상으로 투기행각을 벌여왔다는 점에서 토지공사의 업무처리 관행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토지공사가 일개 땅장사꾼처럼 분양에만 중점을 둔 채 단독택지 용지도 아니고 대규모 공동택지를 아파트 건축실적이 있는 건설회사(법인)가 아닌 일반인에게까지 마구잡이식으로 팔아온 행위가 이런 불법투기조직의 활약을 방조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의 향후 수사방향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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