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김기춘 비서실장 '종북세력이 문화계 장악, 용서가 안 된다'는 취지 발언"
'예술가인 국민에게 두려움 갖게 한 행위' 법원 "대한민국이 손해배상 해야" 판결

지난 2017년 충북도청 브리핑룸에서 충북블랙리스트예술가 소송단이 "박근혜 정부가 만든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는 문화인을 능멸하고 예술인을 박해하는 폭거"라면서 민형사적 대응 방침을 밝히고 있다(사진 충청리뷰 육성준 기자).

"피고(대한민국)의 '문화예술계 지원배제명단(블랙리스트)' 작성행위는 헌법상 문화국가원리를 거스르고 법률상의 근거 없이 예술의 자유의 본질적 영역 및 그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반헌법적으로 침해하고 예술적 결사의 자유마저 근거 없이 제한한 위헌적인 행위다"

[충북인뉴스 박명원 기자] 지난 2017년 2월, 박근혜 정부가 작성한 '문화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른 도내 문화예술인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낸 지 2년 만에 내려진 판결. 결과는 문화예술인들의 승리였다.

청주지방법원 제12민사부는 지난 24일 충북민예총, 예술공장두레 등 도내 예술단체 및 예술인 27명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반헌법적이고 위법한 예술의 자유 침해 사건이다"라며 "피고(대한민국)는 충북민예총 등 예술 법인 단체에는 2천만원을 개인 문화예술인에게는 각 1천5백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충북인뉴스>가 입수한 이번 판결문에 따르면 법원은 '반헌법적이고 위법한 예술의 자유 침해', '일반적 표현의 자유 침해 및 평등원칙 위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침해' 등의 이유를 열거하며 피고인 대한민국의 반헌법적 위법 행위에 대해 지적했다.

법원이 밝힌 블랙리스트 작성 배경 

법원이 밝힌 지원배제명단 즉 블랙리스트 작성 경위는 다음과 같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대통령 비서실장 김기춘은 2013년 8월21일경 비서실장이 주재하고 대통령 수석비서관들이 참여하는 회의에서 수석비서관들에게 '종북세력이 문화계를 15년간 장악했다. CJ와 현대백화점 등 재벌들도 줄을 서고 있다. 정권 초기에 사정을 서둘러야 한다. 이것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국정과제이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며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외에도 김 전 비서실장은 2013년 9월9일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가 메가박스에서 상영되는 것은 종북세력이 의도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제작자와 펀드 제공자는 용서가 안 된다. 국립극단에서 공연한 연극 개구리도 용서가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언급된 연극 '개구리'와 같이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하거나 정부비판 여론에 동조하는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정부지원이 부적절하다는 기조가 청와대 내부에 확산된 것.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건 파동으로 구속기소된 김기춘 전 비서실장(사진 뉴시스).

이 이후에도 김 전 비서실장은 2014년 1월과 5월 관련 회의를 열었고 그때 회의에 참석했던 신동철 국민소통비서관이 당시 '야당 후보자에 대한 지지선언, 정권반대운동 참여' 등 전력이 있는 개인·단체 약 80명의 명단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 소속 김 모 비서관에게 건네줬다.

이 명단은 그대로 문체부에 전달됐고 이후에도 수시로 이와 관련한 문건들을 전달받은 문체부는 2015년 5월,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 '세월호 시국선언',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 '박원순 후보 지지선언' 등에 포함된 문화예술인 9천473명의 명단을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2017년 ‘박근혜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 예술인들이 정부세종청사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박근혜 퇴진과 김기춘 조윤선 구속수사 촉구 전국 1만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 단체행동’ 퍼포먼스를 마치고 행진하고 있다(사진 충청리뷰 육성준 기자).

'세월호 시국선언' 참여한 충북 예술인 블랙리스트 올라

충북도내에서는 시인 이안, 충북민예총, 예술공장두레가 대표적인 전 정부가 추진한 블랙리스트 탄압 사례에 포함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안 시인의 경우 지난 2015년 11월 '문학인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아르코 주목할 만한 작가상' 지원에 원천 배제됐고 2016년 7월에는 정부의 문화지원 사업을 심사하는 민간 전문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위원 선정에서도 제외됐다.

사단법인 예술공장두레는 지난 2015년, 소외계층문화순회 공모사업에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이야기를 공모했지만 제외됐고 기획경영전문인력지원 사업에서도 제외돼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

충북민예총의 경우에도 예술공장두레와 마찬가지로 지난 2015년 예술위원회가 공모한 사업에서 제외됐다. 이들 모두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 '세월호 시국선언' 등에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등 문화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랐다는 이유에서다.

법원 "반헌법적인 위법한 예술의 자유 침해"

이 같은 내용을 토대로 재판부는 당시 자행됐던 해당 행위들에 대해 '반헌법적이고 위법한 예술의 자유 침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우리나라는 건국헌법 이래 문화국가의 원리를 헌법의 기본원리로 채택하고 있다"며 "하지만 문체부나 대통령비서실 등 피고는 문화예술 영역에서 어떠한 개인이나 단체가 정부에 반대한다거나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했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정부의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고자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일부 원고들에 대해서는 실제로 지원배제까지 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 행위로 당시 정권을 잡고 있는 측의 특정한 정파적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예술적 사상이나 양심을 형성하면 국가로부터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예술가(국민)로 하여금 갖게 했다"며 "예술가인 국민이 내면적 자기검열을 하게하고 결과적으로 예술적 양심과 사상 형성에 찬물을 끼얹는 냉각효과를 갖게 했다"고도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피고의 블랙리스트 작성행위는 헌법상의 문화국가원리를 거스르고 법률상의 근거 없이 예술의 자유의 본질적 영역 및 그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반헌법적으로 침해한 위헌적인 행위"며 "위와 같은 피고(대한민국) 소속 공무원들의 행위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을 정하기 위한 전체 요건인 위법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해당 재판과 관련해 충북민예총은 "헌법과 문화기본법에 보장된 창작의 자유가 인정된 것 같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문화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이 제도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통용되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충북민예총 소속 원고인단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이와 같은 집단소송을 제기했고 승소판결에 따른 배상금은 개인이 아닌 단체로 귀속시키는 것으로 사전결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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