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했으나 합의하지 않은 임금체계, 포괄임금

 

<캠페인 : 지역과 노동을 잇다> 비정규직 없는 충북만들기 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는 비정규직 문제를 고민하는 충북의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의 연대체로 충북비정규직의 처우개선과 나아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회양극화 및 불평등 해소’, ‘비정규직 문제 해결’, ‘노동존중’ 등이 시대적 과제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운동본부는 충북인뉴스와 지역의 저임금‵비정규 노동의 현실, 노동정책과 이슈 등을 통해 시대적 과제로 제기되는 문제들을 집어보려고 합니다. 지역과 노동을 잇는 소식이 ‘노동이 존중되는 충북, 살 맛 나는 충북’을 만들기 위한 걸음에 보탬이 되길 희망합니다. 충북인뉴스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뿐만 아니라 모든 차별을 반대합니다. 비정규운동본부의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하면서 활동가들이 기고한 글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글쓴이 : 하태현 (비정규직 없는 충북만들기 운동본부)

 

하태현 노무사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처음 입사 면접을 보면서 자신이 하루에 몇 시간 동안이나 사업장에 머물며 일할 것인지, 일하는 도중에 어느 정도나 휴식을 취하면서 일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 대가로 얼마만큼의 임금을 받아야 하는지와 같은 문제를 두고 사용자와 협상하게 되는 상황을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어떠한 근로조건으로 일할지 그리고 면접을 보고 있는 회사에서 내가 일하게 될지 여부는 전적으로 사용자의 손에 쥐어져 있을 뿐 계약 상대방인 노동자에게는 어떠한 선택의 여지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채용을 꿈꾸는 노동자는 단지 사용자가 내민 근로계약서에 서명할 것인지 여부만 정할 수 있을 뿐 그 근로계약서의 내용을 문제 삼기는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의 근로계약서는 형식적으로는 둘 사이의 ‘원만한 합의’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어느 한쪽의 ‘강요된 선택’에 그칠 뿐이다. 입사한 회사에서 앞으로 어떤 근로조건으로 일할 것인지는 맨 처음 체결하는 근로계약으로 정해지기 마련이다.

이처럼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과정 자체가 어느 일방의 의사만으로 결정되는 구조이다 보니 많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포괄임금’이나 ‘포괄임금’이 아닌..

 

근로기준법은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나 야간 및 휴일근로에 대하여 50%의 임금을 가산하여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사용자는 원칙적으로 최소한 제공받은 근로시간에 상당하는 임금(가산임금 포함)을 전액 지급하여야 한다.

반면에 포괄임금제는 연장근로수당 등 법정수당 등을 실제 근로시간에 상관없이 기본급에 포함하여 지급한다거나, 제 법정수당을 고정적인 일정액 등으로 지급하는 임금지급 방식을 말한다.

월 기본급을 200만원으로 하고, 여기에 연장수당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포괄임금이라고 하거나, 또는 월 기본급은 190만원이고, 시간외수당 30만원을 정액으로 지급한다는 식이다.

실제 근로시간을 꼼꼼히 따지지 않고 사전에 정해진 금액만 지급하고 말기 때문에 많은 경우 근로기준법이 정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한 편법으로 자주 활용된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시간에 관한 규정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시간에 따른 임금지급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에 포괄임금계약은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 인정될 뿐이다.

즉 근로계약서에 포괄임금제를 적용한다는 명시적인 기재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근로시간의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 한해 인정될 수 있을 뿐이다.

매일 매일 출·퇴근시간이 체크되거나 근무시간표에 따라 근무하는 경우처럼 실제 근로시간을 산정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근로계약서에 포괄임금약정을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근로기준법이 정한 법정 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실제로 포괄임금약정이 포함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선뜻 나서서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휴게시간’이나 ‘휴게시간’이 아닌...

 

비슷한 문제는 ‘휴게시간’의 경우에도 종종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근로계약서에는 근로시간뿐만 아니라 휴게시간도 함께 기재되기 마련인데, 대개는 점심시간 1시간을 휴게시간으로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휴게시간은 임금을 지급하는 근로시간이 아니라는 점을 악용하여 근로계약서에는 휴게시간을 길게 잡아 지급해야 할 임금액을 줄여 놓고 실제로는 그 휴게시간에 근무를 하게 하거나, 근무환경상 휴게시간에도 근무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경우들이 있다.

경비원에게 휴게시간에도 경비실을 떠나지 못하게 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접수되는 민원을 제 때에 처리하도록 요구한다거나,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는 보육교사에게 휴게시간을 부여한다고 하면서 대체근무자 없이 한 교실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휴식을 취하라고 지시하는 경우 등이 그렇다.

근로계약서에는 휴게시간으로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일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들, 또는 제대로 쉴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 주지 않는 시간들이다. 그러나 노동자가 작업시간 도중에 현실로 작업에 종사하지 않은 대기시간이나 휴식·수면시간 등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휴게시간으로서 그 노동자에게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된 것이 아니고,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놓여 있는 시간이라면 근로시간에 포함되는 것이고,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임금이 지급되어야 한다.

 

‘노조할 권리’의 보장이 지름길이다.

 

그렇지만 근로기준법과 같은 개별 노동법은 단지 최저 기준의 근로조건을 정하고 있을 뿐이고, 앞서 언급한 포괄임금이나 휴게시간 같은 문제들은 직접 나서서 시시비비를 따지는 경우에만,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개별 노동자에게만 유의미할 뿐이다.

더구나 많은 경우 노동부와 법원은 처음 입사하면서 체결한 근로계약을 ‘강요된 선택’이 아니라 ‘원만한 합의’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처음 근로계약을 맺으면서 정해진 근로조건은 근로계약을 맺을 당시에 존재했던 계약 체결 당사자의 권력관계가 변하지 않고는 근본적으로 개선되기 어렵다.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 사이의 권력관계를 바꾸는 유일하고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노동조합이다. 그런 점에서 ‘노조할 권리’는 처음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다른 선택의 여지없이 강요받았던 나의 근로조건에 관해 ‘진짜로 원만한 합의’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을 말하는 셈이다.

우리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그래서 무엇보다도 노조할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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