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틈이 작품 활동…지난해 말 ‘희망 수리 중’ 발간
농민신문 제 23회 신춘문예 ‘부드러운 시간을…’ 당선

이성배 시인.

어느 순간부터 진지하고 심각한 글보다는 잔잔하면서도 편안하고, 위트 있는 글이 좋아졌다. ‘아!’하고 깨달을만한 진리가 있다면 금상첨화겠지.

마흔 일곱 살, 경찰관(경위)이면서 틈틈이 시를 쓰고 있는 이성배 시인.

그의 작품을 읽으며 딱 ‘금상첨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작품은 우선 편안하면서도 재밌다. 70~80년대 시골 풍경을 가감 없이 기억해내고 그 과정에서 과거에 얽매이기보다 현재를 위트 있게 표현한다.

 

육상선수

“매일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의 할머니는 한 손에 회초리를 들고 잡귀를 쫓는 것처럼 고함을 지르며 뛰었고 아이는 도돌이표처럼 더 크게 울면서 내달리다 되돌아오기를 반복했습니다. 한 번도 빠짐없이 그렇게 열심히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할머니가 아이의 날랜 짓을 따라잡지 못하자 이번에는 젊은 엄마가 나섰습니다. 딱 한번, 정자나무 밑에서 젊은 엄마에게 목덜미를 잡힌 아이가 뭍에 나온 피라미처럼 파닥거리던 아침, 지레 다른 아이들도 걸음아 나 살려라 달려 나갔습니다.

아이 할머니는 심한 관절염이 생겼고 아이는 육상선수가 되었습니다.“

 

학교가기 싫어했던 아이가 도망치기를 반복하다 결국은 육상선수가 되었다니……. 생각지 못한 반전에 웃음이 난다.

이성배 작가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자세히, 오래 관찰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우리들의 모습’을 재미있게 표현한다.

그렇게 매일매일 삶의 단편들을 곱씹은 시 70편을 모아 ‘희망 수리 중’이라는 책을 지난해 12월 발간했다.

 

소들 마을 반상회

……

여섯 집, 까치의 가구 수가 더 많은 마을

청년회장 총대 양반이 내친김에 노인회장도 맡기로 했습니다.

……

면 대항 체육대회 선수 선발 내용 때문에 모였지만

뜀박질 선수는 없고 모두 막걸리 추렴 선수입니다.

……

회원 한명 없는 청년회장은 칠십셋,

마을 발전에 청춘을 바치겠다며 막걸리를 냅니다.

……

 

‘소들 마을 반상회’를 통해 이성배 작가는 암울한 농촌현실을 표현하지만 결코 우울해하거나 심란해 하지 않는다. 이 또한 반전매력이다.

“정해진 것을 모두 똑같이 획일적으로 따라하는 것을 싫어해요. 나만의 생각, 내가 왜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를 늘 생각하죠. 그렇다보니 반전된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경찰 진급시험은 언제 볼꺼냐?’, ‘수시로 출동해야 되는 힘든 현장에 언제까지 있을꺼냐?’라는 질문에 연연해하지 않는다고.

순찰하다가 다리 불편한 노인들을 순찰차에 태워주는 등 어려운 분들을 도울 수 있는 현장이 좋다는 이성배 작가. 그는 2년 동안 무려 100여 편의 시를 썼다.

“2016년 이후 주·야간 근무를 교대로 하는 맹동파출소로 옮기면서 내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온 다음날 오후는 오로지 나만을 위해 책도 읽고, 생각도 하다 보니 시를 많이 쓰게 됐어요.” 

괴산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1991년 충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 이성배 작가는 최근 농민신문 23회 신춘문예에 ‘부드러운 시간을 어느 곳에 쓰면 좋을까’라는 작품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신춘문예니, 시집발간이니 그런 ‘간판’보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도구, 시가 있어 참 행복하다는 이성배 시인.

그는 시인이라는 호칭이 아직도 어색하지만 언제까지나 시인이고 싶다고 말했다.

 

부드러운 시간을 어느 곳에 쓰면 좋을까

미선나무 가지마다 밥알 같은 꽃들이 총상꽃차례*로 수북하다.

이 부드러운 시간을 어느 곳에 쓰면 좋을까.

 

십여 년 전 겨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무차별 폭격이 있을 때

나는 군고구마를 사 들고 눈 오는 거리를 걸었지 싶다.

재빨리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들과 그 어머니들은 사락사락 죽어갔다.

 

하굣길에 장벽 쪽으로 돌을 던진 팔레스타인 소년 사미르 아와드가 이스라엘

군인들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즉사한 2013년 1월,

나는 따뜻한 거실에서 유치원에서 돌아올 네 살배기 딸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총상꽃차례 같은 폭탄 다발을 투하하는 인간적인, 그 인간적인 인류에

엉뚱하게 우리 집 마당에 던져진 밥다발을 두고

고슬고슬한 밥알에 어머니 젖가슴 냄새 비릿하게 스며있는

이 질기지 않은 의미를 어찌하면 좋을까.

 

햇볕 좋은 마당에 과분한 꽃

장벽 아래 양지바른 팔레스타인의 언덕에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의 폐허 사이에 수북수북 피어

덤불 사이를 뛰노는 아이들 얼굴에 밥알이 하얗게 붙는다면

꽃 하나가 그럴 수 있다면.

 

*총상꽃차례: 꽃이 촘촘히 피는 형태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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