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서 인두로 그림그리는 ‘낙화장’, 국가무형문화재로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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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서 인두로 그림그리는 ‘낙화장’, 국가무형문화재로 인정
  • 최현주 기자
  • 승인 2019.01.0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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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이후 47년째 낙화에 몸담고 있는 김영조 장인
김영조 낙화장

문화재청은 7일 충북 보은의 낙화장 김영조(66) 씨를 낙화장 보유자로 인정, 국가무형문화재 제 136호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낙화장(烙畵匠)은 인두로 지져서 산수화나 화조화 같은 그림을 그리는 기술과 그 기술을 보유한 장인을 뜻한다.

김영조 낙화장은 1972년 낙화에 입문, 1977년 대구 동아백화점 화랑 개인전을 시작으로 2003년에는 일본 宮岐縣 낙화전을 열었으며 2010년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22호 낙화장으로 지정받았다.

인도 세계공예심포지엄 워크숍, 이탈리아 아솔로 Asolo 비엔날레 참가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자리에 참석하고 있으며 다양한 전시회도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낙화 하산도

 

낙화는 종이, 비단, 가죽, 나무 등의 표면을 인두로 지져서 그린 그림을 말한다.

끝이 뾰족하고 무딘 2종의 인두를 불에 달구어 사용하며, 뜨거우면 세우고 식으면 뉘어서 온도에 의해 필선의 굵기와 가늘기, 짙고 옅은 농담의 차이를 조절한다. 본격적인 회화작품으로 제작할 경우 인두를 붓처럼 사용해 수묵화와 같은 효과를 나타낸다. 인두그림이라고도 하며 글씨만 쓴 것은 낙필이라 부른다.

낙화의 쓰임새나 소재는 매우 다양해서 일찍부터 공예예술로 분류되고 있다. 중국은 명나라 말기에 활동했던 무념이라는 사람이 낙화의 최고 명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에서는 19세기 활동했던 수산 박창규라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낙화의 명인으로 알려져 있다.

낙화는 도구가 비교적 간단하지만 그 기능을 배우기가 까다롭고 숙달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그 명맥이 단절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김영조 낙화장은 50여 년 동안 낙화와 함께 했으며 2010년 전국 최초 충북 무형문화재 22호 낙화장으로 지정 고시, 일반인들에게도 서서히 알려지고 있다.

김영조 낙화장은 “낙화는 가장 한국적이라는 전통 회화 공예의 장점을 살릴 수 있고 세계적으로도 손색없는 예술의 한 장르로 발전할 수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현재 김영조 낙화장은 전수자이자 그의 딸인 한 김유진 씨와 함께 낙화의 가치와 예술성을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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