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 추모열기 이어…성안길 촛불 밝힌 시민들

"아무리 퇴근시간 전이라지만 가는 길이 이렇게 적적해서 어떡하나요. 요즘 세상에 비정규직 진짜 많잖아요. 우리 아들 같아서 너무 가슴이 아파요. 많이 와서 함께 하면 좋겠는데..."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야간작업을 하다 숨진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故김용균 씨의 분향소가 청주시 분평동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에 마련됐다.

떠나는 길에도 식사를 거를까 걱정됐던 걸까. 누군가 놓아 둔 과자 세 개와 노잣돈 만 원이 김 씨의 영정사진을 지키고 있었다. 이제 겨우 24살, 앳된 얼굴의 고인 사진을 마주한 시민 이 모씨는 고요한 분향소를 보고 안타까워했다.

발길 돌리지 못하는 추모객
 

지난 11일 새벽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야간작업 중 사고로 숨진 하청 노동자 故 김용균 씨를 추모하기 위해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에 마련된 분향소. 17일 오후 5시 반, 추모객의 발길이 뜸하다. 사진 계희수 전 청주방송 기자

 

누군가 영정사진이 놓인 단상에 두고 간 과자와 만 원. 사고 후 고인의 가방에서 라면과 과자가 발견됐다. 김 씨는 휴게시간이 보장되지 않아 라면과 과자로 식사를 대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전 청주방송 계희수 기자

더 이상 이런 죽음 없길…촛불 든 시민들
 

17일 ‘태안화력 24세 하청노동자 故김용균님 추모행동’ 집회가 청주 성안길에서 열렸다. 사진 계희수 전 청주방송 기자

 

17일 ‘태안화력 24세 하청노동자 故김용균님 추모행동’ 집회가 청주 성안길에서 열렸다. 사진 계희수 전 청주방송 기자

 

17일 성안길에서 열린 ‘태안화력 24세 하청노동자 故김용균님 추모행동’ 집회에서 시민들이 메모지에 고인을 추모하는 말을 남겼다. 사진 계희수 전 청주방송 기자

이날(17) 오후 6시, 매서운 바람에도 청주시 성안길 영화관 롯데시네마 앞에서 촛불집회가 열렸다.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와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 등은 시민들에게 촛불과 메모지를 나눠주며 '故김용균 추모행동'을 펼쳤다. 목숨이 담보되지 않은 열악한 근로환경을 규탄하는 발언도 이어졌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노동현장에서 외주화, 용역, 하청 같은 간접고용이 심각해지고 원청의 책임은 없어지고 있다"면서 "추모와 애도에서 멈추지 않고 '죽음의 외주화'에 맞서기 위해 행사를 마련한 것"이라고 집회 취지를 설명했다.

고등학생 자녀와 옷을 사러 왔다 집회에 합류했다는 서연화 씨는 "일하다가 죽는 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식을 일터에 보내고 싶겠어요?"라고 반문했다. 비정규직의 근로환경이 나아질 수 있다면, 집회에 계속 나오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한 손에 촛불을 들고 다른 손엔 아들의 손을 잡은 채 집회 행렬 맨 끝에 섰다.

여자친구와 집회에 왔다는 대학생 박승재 씨는 김 씨의 죽음이 남일 같지 않다고 했다. 여자친구도 현재 기업 하청업체 소속 계약직으로 일하는데다 본인 역시 비정규직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김 씨는 "현실적으로 정규직 되기 쉽지 않잖아요, 잘 안 뽑으니까. 청주에서 일하는 친구들도 하청, 용역 소속 직원들 많은데 다들 힘들고 열악한 건 비슷해요. 일하다 다친 애들도 산재신청 안 하고 대충 넘어가고 일하는 조건이나 대우도 안 좋고요."라고 말했다.

충북 비롯해 각지에서 추모집회 열릴 예정
 

17일 집회에 참석해 자신을 ‘평범한 할머니’라고 소개한 시민이 고인을 추모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계희수 전 청주방송 기자
17일 ‘태안화력 24세 하청노동자 故김용균님 추모행동’ 집회가 청주 성안길에서 열렸다. 계희수 전 청주방송 기자
1시간가량 이어진 이날(17) 집회에 많은 시민들이 참석해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 계희수 전 청주방송 기자

"죽음의 외주화를 멈춰라!", "기업살인법 제정하라!"는 목소리가 건물 벽을 타고 울려 퍼졌다. 롯데시네마 건물 1층에서 분식을 사먹으며 집회를 구경하던 청년 몇몇은 구호를 따라 외쳤다. 시간이 갈수록 많은 시민들이 참석하면서 두 줄로 늘어선 촛불 행렬이 꽤 길어졌다.

쌀쌀한 날씨에도 한 시간 가량 이어지던 이날 집회는 방송설비가 방전된 관계로 마무리됐다. 18일에도 오후 6시에 같은 장소에서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충남 태안군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소속 1년 계약직 신분으로 일하던 故김용균씨는 지난 11일 새벽 태안화력 9·10호기 석탄 이송작업 중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2인1조 작업이 원칙이지만 하청 소속인 김 씨는 혼자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 뒤늦게 발견됐다.

사고 직후 발전소 방제센터는 인원이 모자란다며 고인의 동료들에게 시신 수습을 시켰고 컨베이어 벨트부터 서둘러 정비해 가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안전설비 부실과 산재 축소 및 은폐 의혹이 나오면서 충북을 비롯해 서울, 광주, 창원 등 각지에서 고인을 추모하고 ‘위험의 외주화’를 규탄하기 위한 집회가 열리고 있다.

기고 계희수 전 청주방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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