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운영위원장·지부장 제명 당하자 ‘민바행’ 발족
민문연 “제명 정당, 극소수 인사의 근거없는 음해”

(사)민족문제연구소가 복수 정관 운영과 회원 대표 기구인 운영위원회 권한 축소와 관련 내홍을 겪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서울시교육청 신고정관과 별도로 운영정관을 만들었는데 문제는 신고정관에 정식회원을 10명으로 신고한 것. 실제로 이들 10명 회원의 날인으로 총회 인준을 받았고 회원 정기총회는 형식상 절차에 불과했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사실에 대해 충북지부 회원들과 전 운영위원장 등이 공개적으로 문제제기했다. 이에대해 민족문제연구소측은 지난달 28일 임헌영 소장을 비롯한 집행부 실무자들이 청주를 방문해 간담회 형식으로 해명하기도 했다. 청주 간담회 현장 취재를 통해 양측의 입장을 2회에 걸쳐 정리해 본다.
 

민족문제연구소 충북지부 회원 모임에서 현재 갈등사태에 대한 임헌영 소장과 일문일답이 오갔다.

지난 1991년 반민족문제연구소가 첫발을 뗀 뒤 1996년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초대 이사장 이돈명)가 설립됐다. 설립 초기 회원수는 100여명에 불과했지만 2018년 현재 1만3000명으로 늘어 매달 1억2000여만원의 후원회비를 납부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09년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했고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2003년 재단법인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을 설립, 서울 청파동에 50억원대의 5층 건물을 매입하는 등 지난 20여년동안 괄목할만한 인적, 물적 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올 3월 정기총회 과정에서 뜻밖의 장면이 연출됐다. 직전 운영위원장을 맡았던 여인철씨가 정관개정의 문제점을 발언하려다 제지당했다. 총회장 입구에서 개인 인쇄물을 배포하는 것도 제지당했으나 여씨에 대한 비판내용을 담은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 명의의 유인물은 총회자료와 함께 정식배포됐다. 총회 직후 여씨를 비롯한 일부 전현직 지부장들이 모여 ‘민족문제연구소 바로세우기’ 모임을 시작했고 지난 8월 ‘민족문제연구소바로세우기 시민행동(이하 민바행)’을 발족하게 됐다.

민바행을 발족하는 과정에서 지난 5월 여씨를 비롯한 3명의 전 지부장이 제명되거나 자진탈퇴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설립이래 이사회를 통해 회원 제명을 결의한 첫 사례였다. 특히 전국 지부장들이 운영위원으로 참석하는 운영위원회의 대표(사실상 회원 대표)가 제명당한 것은 시민사회단체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다. 취재결과 민족문제연구소 집행부는 여씨가 위원장 권한을 넘은 과도한 개입을 했고 여의치않자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주장이다. 이에대해 여씨는 집행부가 운영위원장 선출때부터 선거에 개입해 방해했고 운영위원회 결정사항을 집행거부하는 등 무시했다는 주장이다. 양측의 갈등이 접점을 찾지 못한 가운데 지난달 28일 청주NGO센터에서 충북 회원 전체모임이 열렸다. 이 자리엔 집행부가 대거 참석해 충북 회원 및 민바행 관계자들과 질의응답 형식의 간담회를 열게 된 것.

민바행이 제기한 의혹 가운데 핵심은 민족문제연구소가 2개 정관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교육청에 신고한 법적효력이 있는 정관에는 회원이 10명에 불과하다. 실제로 교육청에 보고된 한해 7~8회에 달하는 정기·임시총회 의결에 참여한 회원은 임원과 집행부 직원이었다. 올해 회원 정기총회는 3월 24일 숙명여대 강당에서 약 300여명이 모여 열렸지만 이미 3월 8일에 열린 것으로 교육청에 보고된 것이다.
 

지난 3월 24일 회원 정기총회 모습.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에는 3월 8일자 10명의 회원 의결로 총회 결과가 보고됐다. <민족문제연구소 홈피 퍼옴>

신고정관엔 회원 10명만 올라

이에대해 민바행측은 “설립 당시인 1997년 106명으로 신고했다가 2002년 30명, 2004년 10명으로 줄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결국 회원들에게 공고된 총회는 형식적인 것이고 그쪽은 실제 의결권한이 없는 유령회원인 셈이다. 단체 예산과 재산이 수십억원에 달하는데 이들 10명의 회원이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기형적인 구조를 회원들에게 제대로 공개하지 않은 자체가 집행부 간부진의 관료화에 따른 부작용이라 본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충북 간담회장에서 집행부측은 “회원수가 1만명인데 총회 인준에 필요한 정족수를 어떻게 채우겠는가? 감독관청인 교육청 업무처리를 위해 불가피하게 신고정관의 회원수를 제한했다. 그리고 2003년 운영위원회의 의결을 통해 운영정관을 만들어 실질적인 업무규약으로 삼아 왔다. 회원 정기총회에서 의결된 사항은 모두 반영됐고 실제로 회원권익을 침해받은 것은 전혀 없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의원제를 골자로 한 단일정관 개정작업을 벌이고 있다. 내년 정기총회에 보고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민바행측은 “서울시교육청에 신고정관 정보공개 신청을 했지만 집행부가 공개거부하는 바람에 받질 못했다. 시민단체에서 정관공개를 거부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이에대해 집행부측은 “단체 사무국에 직접 요청했으면 당연히 공개했을 것이다. 그런데 시교육청을 통해 공개요청을 한 것은 무슨 의도가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어 공개거부한 것”이라고 말했다.

 

회원 정기총회는 3월 24일 열렸으나 서울시교육청에는 3월 8일 10명 회원중 9명이 참석해 의결한 것으로 신고됐다.

운영위원회 권한 축소 논란

충북 간담회장에서 회원 권리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임헌영 소장이 “단일 정관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답변하자 모 회원이 “회원수가 많아 어쩔 수 없이 복수 정관을 만들었다면 지난 20여년동안 ‘대의원제’ 같은 대안을 마련했어야 하지 않느냐?”고 따져물었다. 답변에 나선 방학진 실장은 “복수 정관은 부적절한 표현이다. 2003년 운영위원회가 내규를 손질하면서 정관으로 하자고 해서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이다. 대의원제 도입도 진작에 운영위원회에서 의결했다면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대해 질문했던 모 회원은 “복수정관을 갖게 된 것도 대안제도를 마련하지 못한 것도 모두 운영위원회의 책임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임원과 집행부는 그동안 무슨 대안을 고민했는가?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한편 취재진은 “일부 회원들의 불만 또는 의문사항에 대해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을 통해 전체 회원에게 해명할 계획은 없는가”라고 질문했다. 이에대해 방 실장은 “극소수 인사들의 근거 없는 음해에 대해 일일이 반박하는 것이 사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될지 또는 불필요한 논란을 확산시킬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지만 건설적인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추후 운영위원회 등의 논의를 거쳐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운영위, ‘일상 업무’를 ‘집행위 제안 사업’으로 제한

민바행측은 지난 3월 회원 정기총회에서 개정된 (운영)정관이 사실상 운영위원회의 권한을 축소시켰다고 문제 제기했다. 집행부측은 운영위원회 기능에 대해 ‘기타 연구소의 일상업무를 심의 의결한다’는 기존 조항을 ‘집행위원회에서 제안한 사업에 대하여 심의의결한다’고 개정안을 냈다. 심의의결 대상을 ‘일상업무’라는 포괄적 범위에서 ‘집행위원회에서 제안한 사업’으로 축소시킨 셈이다. 이에대해 집행부측은 “이사회 등과 업무중복 등 문제점이 드러나 운영위원장단이 참여하는 집행위원회에서 1차 걸러서 심의의결토록 한 것이다. 기능이 축소된 것은 아니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민바행측은 “집행위원회는 소장이 위원장을 맡고 집행부 실국장과 운영위원장단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생계와 직업이 있는 운영위원장단 출석률은 저조할 수밖에 없다. 결국 집행부의 입맛에 따라 운영위원회로 넘기는 사업만 심의토록 하려는 의도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또한 운영위원회 기능 중 ‘임원 선출에 있어 추천권을 갖는다’는 조항을 ‘임원을 추천할 수 있다’로 개정했다. 민바행측은 “과거 당연한 추천권한을 선택적인 권한으로 축소시켰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지부활동에 대해서는 ‘(지부)총회결과는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민바행측은 “지부장 선출이나 결정사항을 본부 운영위원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강제로 취소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회원 자율을 무시하고 지부를 감시, 통제하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이에대해 집행부측은 “제명조치된 지부장 중에 회원들과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을 일으킨 경우가 있다. 지부와 지회가 갈등관계를 지속하는 경우도 있어 회원 대표기구인 운영위원회에서 이런 부작용의 방지책으로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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