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의 중턱서 우뚝 솟은 속리산은 아무리 봐도 명산이다. 천황봉, 문장대, 비로봉, 관음봉이 연이어지며 높은 키를 자랑하고 복천암, 은폭동의 물소리가 현대인의 지친 심성을 보듬어 준다. 어디 그뿐인가 계절 따라 옷을 갈아입으며 산행을 유혹하는 멧부리와 여러 계곡은 어진 자와 슬기로운 자가 찾는다는 요산요수(樂山樂水)의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

생태계의 보고엔 이름 모를 들꽃이 저절로 피어 계절을 노래하고 사향노루, 줄 다람쥐, 멧돼지, 고라니가 울창한 대숲과 송림(松林)을 헤치고 출몰한다.주봉인 천황봉(天皇峰), 문장대(文藏臺)에 빗물이 떨어지면 세 갈래로 흩어져 금강, 한강,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그래서 이곳을 삼파수(三派水)라 한다. 문장대 봉우리 이름은 참으로 문학적이다. 글(文)을 감춰둔(藏) 바위 봉우리라는 뜻이다.

피부병을 앓던 세조가 복천(福川)에서 목욕을 하고 문장대에 올라 신하들과 더불어 시를 읊었다는 데서 유래된 글 봉우리이다. 구름에 덮여 있어 운장대(雲藏臺)라고도 부르나 이보다 문장대로 흔히 불린다. 한때 보은문학회에서는 ‘문장대’라는 동인지도 발행한 적이 있다. 글을 감춰둔 문장대는 사시사철 등산객의 발길로 닳아빠질 지경이다. 워낙 우람한 천년, 만년바위여서 그 많은 등산객을 정수리에 태우고도 싫은 내색 한번 안 하지만 선비의 글소리는 찾을 길 없다.

속리산 연봉은 충북 보은과 경북 상주의 경계를 이룬다. 일반적 등산로는 법주사 뒷길이나 요즘엔 경북 화북에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잘 나 있다. 문장대를 오르기 전, 인근의 견훤산성을 둘러보면 자연의 운치와 역사로의 여행을 겸하게 된다. 견훤산성은 산 정상부를 수직으로 에워싼 ‘테뫼식 산성’이다. 테뫼식 산성이란 운동선수가 이마에 머리띠를 두른 듯한 성벽의 모습을 일컫는다. 둘레 650m의 이 산성은 보은 삼년산성과 축성기술이 비슷하다.

자연 암벽 위에다 4~5m 정도의 성벽을 쌓았는데 계곡부는 높이가 15m에 달한다. 이름은 견훤산성이지만 성을 쌓은 것은 5~6세기 경이다. 후삼국 시대 견훤이 이 성을 거점으로 하여 전쟁을 치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국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산성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독일 등 외국에 더 잘 알려져 있다.

후삼국의 역사가 부침하고 청정 자연이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이곳에 생뚱맞게도 웬 온천타령이 심심하면 불거지는지 모를 일이다. 문장대 온천개발은 이미 대법원 판결로 종지부를 찍었는데 요즘 상주시에서 오수처리 방식을 바꾼다는 것을 전제로 다시 허가를 내 주어 충북인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문장대 온천을 개발하면 자연경관의 훼손은 불가피하며 아무리 오수를 정화한다해도 그 찌꺼기가 하류인 괴강을 거쳐 한강으로 흘러들 수밖에 없다. 상류에서는 목욕을 하고 하류에서는 그 물을 걸러 다시 먹어야 할 입장이다. 일찍이 이행(李行 1352~1432)은 우리나라 물맛 중에서 달래 강(達川) 물맛을 최고로 쳤다.

“우리나라 물맛은 충주 달천이 제일이고 금강산에서 한강으로 흐르는 우중수(牛重水)가 둘째이며 속리산의 삼타수(三陀水:삼파수)가 셋째다” 만약 문장대 온천개발이 강행된다면 명경지수(明鏡止水)는 혼탁지수가 될 것이고 이행이 언급한 충북의 물맛은 다시 맛 볼 수 없게 된다. 과연 목욕이 중요한지, 먹는 물이 중요한지 따져볼 일이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