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웅진 신부, 꽃동네 설립 42주년 기념식서 최귀동 할아버지를 기리며

지난 1976년 9월 당시 무극천주교회 오웅진 신부와 최귀동 할아버지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된 지 42년이 지났다. 꽃동네가 설립 42주년을 맞았다.

“사람은 남을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며 허름한 옷에 걸망 하나로 수많은 이들을 살려 내려 했던 그러나, 정작 자신은 가장 낮은 곳을 지켰던 최귀동 할아버지, 그는 오웅진 신부로 하여금 꽃동네 설립의 단초를 마련한 ‘거지성자’였다

장애를 가진 몸으로 구걸조차 하지 못하는 걸인들을 먹여 살린 그의 사랑은 이제 꽃동네를 통해 전 세계에 전파되고 있다.

현재 꽃동네는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방글라데시, 우간다, 미국, 캐나다, 아르헨타니 등 세계 14개국 24개 공동체를 일구어 냈다.

성자(聖者)가 된 걸인(乞人) 최귀동, 자신의 안구를 26세 젊은 청년에게 기증한 채, 그는 지상에서 사랑의 삶을 마치고 지난 1990년 1월 천국에 올랐다.

(사진제공=음성타임즈)

지난 8일 꽃동네 가족 묘지인 ‘꽃동네 낙원’에 봉헌된 '추기경 정진석 센터'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설립자 오웅진 신부는 먼저 "최귀동 할아버지를 만나 꽃동네를 시작한지 세월이 흘러 이제 42주년이 되었다. 참으로 행복한 삶이었다”며 그동안 함께 해 준 꽃동네 회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러면서 “저는 주님이 주신 은총 속에 일생을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다. 앞으로도 믿음하나 가지고 살 것”이라며 “지식도 권력도 명예도 아닌 은총과 믿음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오웅진 신부는 “고난의 특권의 끝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대신 죽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큰 은총은 자선하고 봉사하고 희생하고 속죄하는 삶”이라는 강론으로 자신의 일생을 대신했다.

(사진제공=음성타임즈)

한편, 꽃동네는 그동안 어려웠던 시기, 아무도 모르게 길거리나 다리 밑, 산속 움막에서 죽어가던 사람들을 구호하고, 그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며 살아 왔다.

또한, 꽃동네의 손길이 미처 닿기도 전에 죽어 간 사람들을 정성을 다해 염을 하고 장례를 치루어 왔다.

꽃동네 가족, 꽃동네 후원회원, 꽃동네 은인, 꽃동네 수도자가 잠들어 있는 꽃동네낙원의 약 6,000여 명의 망자 중에는 이름조차 알 수 없어 ‘무명(無名)이라는 ’이름 없는 이름‘으로 모셔져 있는 사람도 있다.

현재 '꽃동네낙원'은 많은 은인들의 도움으로 세상에서 소외되고 버려진 '무연고자'들을 모셔 세상 사람들이 기억하고 찾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귀한 장소로 봉헌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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