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품목 사전유착설, 특정업체가 수억원씩 독점납품
단가입찰제, ‘학교자율 선택권 훼손’ ‘성능미달 납품’ 맞물려

시민사회단체가 김영세 전 교육감의 퇴진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언론사 취재진의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었다. 퇴진운동 단체의 기자회견장이나 거리시위 현장 주변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들이 서성거리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던 것이다. 뒤늦게 밝혀진 이들의 신분은 다름아닌 도교육청 시설공사·납품업체 관계자들이었다. 또한 모신문사 편집국 간부는 김교육감 퇴진운동 기사보도와 관련, 오랜 친구사이였던 모건설업체 대표와 말다툼 끝에 의절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실제로 교육감 퇴진운동 과정에서 엉뚱하게도 교육계 거래업자들이 앞장서서 퇴진운동을 비판하고 무력화시키려는 시도가 빈번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위한 상식을 벗어난 집단행동이었고, 교육계의 입찰·계약이 투명해야하는 이유를 역설적으로 설명하는 안타까운 삽화였다.
학교현장에서 이뤄지는 사업계약은 크게 교육기자재 납품과 학교공사 발주를 들 수 있다. 한해 수백억원의 예산이 교육기자재 및 물품구매와 학교 신축·증축·보수공사에 투입된다. 이처럼 막대한 예산이 집행되다보니 관련 업체의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과열경쟁은 발주처와 업체간에 특혜와 유착시비를 낳게되고 궁극적으로 예산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 교육행정은 적재적소에 사람을 쓰는 것 못지않게 효율적으로 돈을 쓰는 회계가 바로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단가입찰제의 두 얼굴

충북도교육청의 경우 김영세 전 교육감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단가입찰제’가 재임기간 내내 시비의 대상이 됐다. 단가입찰제는 학교에서 공동으로 활용되는 교육기자재·물품에 대해 단가입찰을 통해 일괄 공동구매하는 제도이다. 업체 선정과정의 잡음을 없애고 단가경쟁을 통한 가격하락으로 예산절감 효과를 기할 수 있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하지만 대상품목을 자의적으로 선택하거나 규격미달의 제품이 납품되는등 부작용이 적지않았다. 단가입찰이 아닐 경우 고가의 단일품목을 암묵적으로 특정업자가 독점하도록 편의를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도교육청이 지난 98년부터 연차적으로 실시해온 병설유치원의 원목놀이기구 설치사업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70여개 학교를 대상으로 1개교당 500만∼1500만원의 예산을 배정해 자체적으로 놀이기구를 구입토록 했다. 학교별로 구입토록 했지만 정작 납품업체는 청주 D상사가 대부분을 독점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수의계약 납품가도 1470만원으로 1500만원 예산에 꽉찬 수준이었다. 하지만 비슷한 사양으로 공개경쟁입찰을 실시한 청주 ㅅ초교는 절반가격인 750만원에 구입했고 작년 9월 괴산교육청의 단가입찰에서는 청주 D산업이 795만원의 최저가를 써내 낙찰됐다. 문제는 수의계약 납품해온 D상사와 절반가격에 단가입찰에 응한 D산업의 대표가 부자지간으로 사실상 단일영업을 해왔다는 것이다.
=입찰은 790만원, 수의는 1490만원=
이에대해 교구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한 건물이 같이 영업을 하면서 수의계약에는 1470만원을 받고 단가입찰에는 795만원을 받았다는 것은 스스로 엄청난 폭리를 시인한 셈이다. 도교육청이 이러한 고가품목에 대해 단가입찰을 적극 추진하지 않은 것은 결과적으로 특정업체의 독점이익을 도와준 것이다. 특정업체에 미리 예산편성 정보를 흘려주고 일선 학교를 선점토록해 70여개 학교에서 7억원어치 이상을 수의계약 납품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98년 도교육청이 고교에 보급시킨 다목적 칠판 구입도 단가입찰을 적용하지 않은 예산낭비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 당시 5억7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647개를 보급했으나 단가입찰이 아닌 조달청 수의계약 방식으로 결정했다. ㅎ흑판 충북지사에서 개당 가격 89만원(설치비 12만원 포함)으로 납품받았다. 하지만 이듬해 청원·청주교육청이 총액입찰로 같은 ㅎ흑판의 견적을 받은 결과 48만원으로 최저낙찰됐다. 결국 조달청 수의계약 방식이 개당 41만원의 예산손실을 가져왔고 특정업체에 엄청난 이익을 확보해 준 결과가 됐다.
98년부터 각급 학교에 보급중인 무선어학기(간이어학실) 구매는 활용도가 미흡해 일부 학교에서 예산배정을 거부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도교육청은 무선어학기 구입비로 학교당 1000만원씩 50여개교에 배정했고 청주 ㄱ사에서 5억원 상당을 독점적으로 수의계약 납품했다. 작년에도 40개교의 구입예산을 책정해 충북도의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조평희의원이 활용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몇몇 학교를 방문하기도 했다. 조의원은 현장조사 배경에 대해 “청주인근 학교를 둘러본 결과 기구입한 학교중에 절반 정도만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영어교사들의 얘기가 ‘성능이 떨어져 교육용으로 활용하기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어떤 학교에서는 구입예산이 필요없다고 거부한 사례도 있었다. 예결위에서 이러한 실태를 보고해 결국 당초 책정예산을 일부 삭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단가입찰, 객관적 선정위 구성선행

가격인하와 투명행정을 내세운 단가입찰제의 이면에는 무리한 응찰로 인한 규격미달 제품의 납품사례를 들 수 있다. 97년 청주·괴산교육청의 실물화상기 단가입찰에서 제품사양에는 카메라 헤드가 270도 이상 회전되고 자동촛점기능을 갖추도록 명시했으나 실제로 헤드회전이 안되고 수동촛점기능을 제품을 납품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96년 청주기계공고에 XG급 액정프로젝트를 설치하기 위해 단가입찰을 실시, ㅇ사가 183만을 써내 낙찰됐으나 입찰사양을 맞추질 못하고 납품을 포기하려 했으나 도교육청의 요구로 결국 수백만원대 가격의 다른 회사 XV급 제품을 납품한 것으로 나타났다. 97년 도교육청이 단가입찰을 통해 투시물환등기(OHP)를 시중가격(65만∼70만원)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대당 22만9000원에 납품받았다. 도교육청은 사립학교에도 이 금액으로 구입토록 지시했으나 실제로 같은 사양제품을 구입할 수없어 규격이 작은 다른 제품을 구매했다.
이에대해 도교육청측은 “단가입찰제가 당초 의도대로 완벽하게 정착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획일성을 탈피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부분은 학교별 구매를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각 학교에서 공통적으로 다량 구입하는 품목에 대해서는 단가입찰의 순기능을 계속 살려나갈 것이다. 감사원과 교육부도 도교육청의 단가입찰제를 수범사례로 꼽고 있다. 운영의 묘를 살려 부작용없이 정착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원단체측은 “학교현장이 많이 민주화됐고,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제품정보를 접할 수 있기 때문에 학교특성에 따라 자율적으로 교육기자재를 구입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단가입찰 여부는 선정위원회를 통해 결정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민간전문가들을 위원으로 참여시켜 실제적인 심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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