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고 이산 5가족 금강산 상봉 이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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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연고 이산 5가족 금강산 상봉 이뤄져
  • 충청타임즈
  • 승인 2018.08.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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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늘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고 고생만 시키다가 사라져서 생사도 모르고 있는 게 한스럽다. 피난이라도 갈걸' 이라며 후회했다."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20일 오후 3시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개최됐다.
이날 상봉장에서 조카들을 만나게 된 이재일씨(85)는 6·25전쟁 당시 납북된 형님을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이씨는 1950년 전쟁 당시 인민군들이 고향인 충북 청주까지 내려와 모내기 중 가족들이 피난길에 올랐다. 가족들은 며칠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사이 형님은 납치됐다. 당시 형님 나이는 18세.
이씨는 "형님이 납치된 뒤 아버지가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앓기 시작했고 국군이 후퇴해 내려올 때마다 그 기회를 틈타 도망오지 않을까 간절히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며 "형님은 돌아오지 않았고 1954년 11월 9일 아버지는 52세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이씨는 "아버지가 형을 너무 그리워하며 생을 마쳤기 때문에 그 기억이 더 많이 난다"며 "형님 납치 이후 그해 겨울에 가족들이 피난길에 오르기도 했지만 얼마 못 가서 다시 본가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이씨의 가족은 형님이 납치되고 주변의 감시도 당했다고 한다. 이씨는 "옥산면 지소에서 본인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통해 감시했다"며 "간첩 같은 사람이 와서 접촉하지 않았나 등을 물었다"고 기억했다.
심지어 집안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형님 사진 한 장도 누군가 훔쳐가, 이번 만남에서 진짜 조카들이 맞는지는 이야기와 느낌으로 알 수밖에 없다고 이씨는 아쉬워했다.

곽호환씨(85)는 전시납북된 형님의 두 아들 곽정철씨(55)와 곽영철씨(53)를 만났다.
당시 곽씨 가족은 충북 제천시 금성면에 살았다. 곽씨는 "여름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인민군 관계자들이 회의한다고 소집시켰다"며 "형님이 그 회의에 가서는 안 돌아왔다"고 회고했다.

곽씨의 형님과 함께 사라진 사람은 10여 명으로 당시 형님 나이는 21세에 불과했다.
곽씨는 "이번에 적십자에서 확인해준 걸로는 (형님이) 1981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며 "이번에 (조카들을) 만나게 된 것은 고마운 일" 이라고 전했다.
곽씨와 동행하는 아들 곽상순씨(59)는 "아버님은 오래전부터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다. 큰아버지를 많이 보고 싶어 하셨다"며 "이번에 그 자녀들이라도 만나게 돼서 소원풀이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기호씨(83)의 맏형 최영호씨(2002년 사망)는 충북 청주에 살다가 의용군으로 끌려가면서 납북됐다.
최씨는 "자세히 어떤 상황에서 끌려갔는지 우리는 모른다"며 "당시 폭격이 너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죽었을 거로 생각하고 단념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조카라도 상봉하게 돼서 감개가 무량하다" 고 전했다.
최씨는 "그래도 장수하기도 했고 딸도 2명이나 낳았다니 반갑다" 며 "이번에 조카들을 만나면 어떻게 북에 가게 됐던 것인지 물어봐야겠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번에 북측에 사는 조카 최선옥씨(56 ·여)와 최광옥씨(53 ·여)를 만났다.
최씨는 "어머님이 (납북된) 맏형을 특히 그리워하셨다" 며 "끼니때마다 꼭 형이 먹을 밥을 떠서 함께 상에 올리시면서 '밥공기에 물이 맺히면 네 형은 살아있는 거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고 회상했다.

최씨는 "밥이 뜨거우니까 당연히 물방울이 맺히지"라면서 "아마 잘 살아있으리라고 생각하신 걸 그렇게 표현하신 거 같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이번 이산가족 상봉행사 준비과정에서 국군포로 및 납북자 50명을 별도로 선정해 북측에 생사 확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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