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대선 '북풍공작' J회장 북측 인사 접촉 흑금성이 안내

한국형 첩보영화 '공작'이 8월의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13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신과함께2'가 주말 이틀(12∼13일)간 121만5028명 관람했고 '공작'이 110만5845명으로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다. '신과함께2'은 누적 관객 수 963만1522명으로 1000만 관객 돌파가 확실하며 '공작'은 개봉 5일만에 누적 관객수가 206만6432명에 달해 또 한편의 1000만 영화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공작'의 실제 주인공은 옛 국가안전기획부 대북공작 비밀요원(암호명: 흑금성) 박채서씨(63)다. 박씨는 청주 출신으로 청주고를 졸업하고 육군 3사관학교 14기로 군에 입문했다. 소령진급과 함께 육군대학을 3등으로 졸업 국군정보사령부에서 활동하다 안기부의 눈에 들었다. 1993년 군복을 벗은 뒤 안기부 특수공작원으로 발탁돼 사업가로 위장해 북한을 드나들게 됐다.

영화 제작진은 지난 2015년께 '흑금성' 박씨가 대전교소도 수감 때 면회를 하며 영화화에 대해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종빈 감독은 언론인터뷰에서 "수감중인 박씨 보다 따님을 더 많이 만났다. 아마 따님도 아버님의 일을 알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국가를 위해 일했는데 아버지는 간첩으로 몰리고 독방 생활을 하고 계시니까"라고 말했다. 영화 개봉 이후에는 "(박씨)가족분들이 영화 잘 봤다고 찡했다고 하더라. 박채서 선생님도 감동적으로 봤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공작'은 주인공 '흑금성' 이외에도 주요 촬영장소도 충북의 대학 건물을 이용했다. 김일성 동상이 서 있는 북한 대형 관공서 건물로 괴산 중원대학교 캠퍼스를 이용한 것. 지난해 3월 영화 촬영을 시작했으나 일부 주민들이 건물에 걸린 김일성 찬양 플래카드와 인민군 촬영 세트장을 오인해 경찰에 신고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결국 대학측의 요청으로 학생 방학기간인 7월로 촬영이 연기되기도.

고교동문 골프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난 박채서씨. (왼쪽에서 두번째)

청주 출신 '흑금성'은 1997년 청주 모신문사 J회장과 관련된 '악연'으로 지역에서 그 존재가 알려졌다. 대통령 선거직전인 97년10월 J회장은 중국 베이찡에서 북한 조평통 안병수 부위원장을 만났다. 하지만 뒤늦게 정보당국에 사실이 포착돼  남북교류협력법 위반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J회장과 북측 인사와의 만남을 주선한 사람은 '흑금성' 이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98년 3월 당시 안기부의 ‘해외공작원 정보보고’ 문건이 언론에 유출되면서 이른바 ‘북풍사건’이 불거졌다.

안기부 문건에 따르면‘흑금성'은 J회장을 포함한 여야 대선후보 캠프의 대북접촉을 주선한 사실이 드러났던 것. 한나라당은 정재문 의원, 국민회의는 최봉구 전 평민당의원, 한국신당은 J회장이 관련돼 98년 5월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당시 검찰은 J회장이 '흑금성'의 안내로 북한의 안병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나 대선에서 상호 협력할것을 제의했다는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조사에 따르면 북한의 안 부위원장과 J회장의 만남은 베이징에서 두번에 걸쳐 이뤄졌다는 것.

검찰에서 J회장은 “넷째 조부가 ‘낙동강’의 저자인 고 조명희선생이고 백부가 조벽암 시인으로 이분들의 해방전 문학이 재조명을 받고 있어 자료수집차 중국을 다녀왔을 뿐 북측 인사를 만나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법원에서는 1심 유죄판결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관련자 3명 모두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당시 J회장은 한국신당 대선 후보인 이인제 의원과 동서관계로 정치적 후견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민회의 김대중 대선 후보도 '흑금성'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안기부의 북풍공작 움직임에 대해 '흑금성'이 미리 국민회의측에 귀뜸했다는 것. 당시 국민회의 대변인이었던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는 최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MBC기자 중 흑금성의 고교(청주고) 선배가 있었죠. 그를 통해 접촉제안이 들어왔어요. 음습한 냄새가 나서 처음엔 거절했는데 한사코 만나자고 해 만나보니 깜짝 놀랄 얘기를 하더라고.”  첫 만남에서 흑금성은 안기부의 DJ죽이기 공작을 폭로했다는 것. 그러면서 “신호탄이 천도교령 오익제의 입북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실제로 두달뒤인 8월15일 평양의 방송에 오익제가 나타났다.

당시 오익제는 국민회의 지도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었는데 자진월북해 평양방송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경악할 일이었다. 이후로 정동영 대변인은 '흑금성'과 비밀접촉을  계속했고 DJ에게 실시간 보고하기도 했다는 것. 당시 정 대변인에게 '흑금성'을 소개한 고교 동문이 누구인 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98년 자신의 존재가 노출된 이후에도 '흑금성' 박씨는 고향(청원군 남이면)에 들려 지인들과 골프모임을 자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의 골프 실력은 준 프로급으로 고교 동문골프대회에서 항상 우승권이라는 것.

영화중에 북한 주요 공공건물의 촬영 장소가 된 괴산 중원대학교 캠퍼스

북한공작원 신분을 벗어난 박씨는 느닷없이 지난 2010년 군사 기밀과 방위산업 정보를 북측에 넘긴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구속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박씨와 방위사업체인 L사 간부 손모씨(45) 등 두 명을 구속했다. 박씨는 군사령부 참모장이었던 K소장을 통해 2005~2007년 사이에 여러차례 접촉해 메모를 전달하거나 구두설명 방법으로 한미연합사령부의 `작전계획 5027` 핵심 내용을 북한에 넘긴 것으로 파악됐다.

한편 박씨를 포섭한 북한 공작원은 대외적으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 등 대남 경협을 총괄하는 민족경제협력위원회 소속으로 알려져 왔으나, 실제로는 작년 2월 정찰총국으로 편입된 옛 작전부에서 대남 공작활동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은 박씨의 혐의를 인정해 징역 6년을 선고했고 2016년 대전교도소에서 만기출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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