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평가인증제 필요하지만 불필요한 서류는 과감히 삭제해야

“우리도 아이들 잘 돌보고 싶어요” ①

어린이집의 아동학대. 잊을 만 하면 나오는 뉴스다.

무자비한 손찌검에 어린아이가 속수무책으로 나가떨어지고 억센 발길질에 나뒹군다. 욕설은 기본이고 심지어 낮잠을 재우기 위해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놓고 깔아뭉갠다. 뉴스를 본 부모들은 억장이 무너지고 공포마저 느낀다.

아동학대 사건은 매년 지속적으로, 또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대안으로 2015년 어린이집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했지만 효과는 크게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청에 따르면 아동학대 행위로 적발되는 어린이집은 해마다 수백 곳에 달한다. 2015년 184곳에서 지난해에는 302곳으로 64%(118건)나 증가했다. 2015년 262명의 보육교사가 아동학대 혐의로 수사기관 조사를 받았고 2016년에는 339명, 지난해에는 505명이 입건됐다.

충북에도 아동학대 사건으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곳이 여럿이다. 지난 3월 원생들을 수차례 폭행·학대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던 청주 흥덕구 한 어린이집 원장과 보육교사가 검찰에 송치된데 이어 7월에도 2~3세 영유아를 폭행·학대한 충북 청주 내 민간어린이집 원장과 보육교사들이 검찰에 송치됐다.

도대체 왜 자꾸 이런 걸까?

‘어린이집 교사들은 정말 인성이 그렇게 쓰레기인 걸까?’, ‘피도 눈물도 없는, 그저 아이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걸까?’, ‘부모들은 공포감을 느끼면서도 계속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걸까?’

이런 질문에 어린이집 원장과 교사들은 할 말이 많다. 아이를 때리고, 욕하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천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그래도 너무 서럽고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두 번에 걸쳐 그들의 속사정을 알아본다.

어린이집 교사들이 작성해야 하는 서류들.<사진 청주시 M어린이집 제공>

“잘못된 건 알지만 우리도 너무 힘들어요”

어린이집 교사 1년차인 A씨(40여).

어제 새벽 1시까지 서류정리를 한 탓인지 자고 일어났는데도 머리가 띵하다. 그래도 일어나야 한다. 방학을 맞은 두 딸의 끼니를 챙겨놓고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오늘은 ‘차량’이 있는 날. 8시까지 출근이라 조금 더 서둘러야 한다.

9시, 차량 도우미 일을 끝내고 어린이집으로 들어왔다.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유난히 힘들다.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잔하며 한숨 돌리고 싶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곧 오전 간식시간이라 아이들에게 손 씻기를 지도하고 간식을 먹인다.

10시. 본격적인 하루 일과 시작이다. 수업하랴 20명의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랴 어느새 1시간 30분이 훌쩍 지나간다.

11시 30분 드디어 점심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밥 먹을 여유는 여전히 없다. 아이들 밥먹이기에도 A씨는 바쁘다. 아이를 한명 한명 관찰하고 그 아이에게 필요한 활동은 무엇인지, 어떤 것이 좀 더 교육적인지 생각할 여력이 없다.

이제 겨우 오전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A씨는 어느새 녹초다. ‘보조교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은 굴뚝같지만 표현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A씨의 ‘아이들 돌보기’는 오후 5시가 되어서야 마무리 된다. 하지만 마무리 됐다고 해서 퇴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갖가지 서류정리와 청소도 A씨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요즘 며칠째 TV에서는 어린이집에서 교사가 11개월 된 어린아이를 재우기 위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온몸으로 눌러 질식사시켰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같은 교사지만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우리도 힘들다’는 말이 자꾸 입에서 맴돈다.

어린이집 교사들이 매일 작성해야 하는 보육일지

평가인증 앞두고 그만두는 교사 많아

어린이집 현장에서 보육교사들이 가장 힘들다고 토로하는 부분은 ‘불필요한 서류작업’이다. ‘긴 보육시간’, ‘열악한 처우’도 문제지만 서류작업은 매일매일 교사들을 힘들게 한다. 수업일지, 관찰일지, 사진촬영, SNS로 부모들과 소통하기 등 교사들의 기본적인 서류작업은 상당하다. 특히 공개수업이나 갖가지 행사, 평가인증 기간이 되면 교사들은 그야말로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고 토로한다.

청주시 서원구 A어린이집 B교사는 “서류가 많아도 너무 많다. 특히 평가인증을 받는 기간 3~4개월간은 밤 12시까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기간에는 교사들이 뽑히지도 않고 심지어 평가인증을 앞두고 그만두는 교사도 많다”며 “교사도 사람이다. 몸이 지치고 힘들면 보육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어린이집의 평가는 한국보육진흥원이 3년마다 진행하고 있다. 또 1년에 한 번은 불시에 방문, 사후관리 및 점검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평가 방식은 지난해 11월 도입된 ‘제 3차 어린이집 평가 인증’으로 하고 있는데 3차는 1, 2차에 비해 간소해졌다는 특징이 있다. 또 어린이집 간의 지나친 경쟁으로 발생하는 부작용을 막기위해 점수 대신 등급제로 이뤄진다.

한국보육진흥원(이하 진흥원)에 따르면 현재 진행되는 평가영역은 △보육과정 및 상호작용 △건강·안전 △보육환경 및 운영관리 △교직원 등 4가지다. 4가지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21개 지표 79개 항목을 절대평가 방식 A, B, C, D 등급으로 평가가 이뤄진다. D등급일 경우는 불인정된다. 유효기간도 일괄 3년이고 A등급일 경우는 4년이다.

진흥원 한 관계자는 “3차 평가지표는 1, 2차에 비해 평가항목을 40%이상 줄였다. 서류로 작성하는 것 보다 관찰하는 형태로 평가방법을 바꿨다. 환경이 열악한 어린이집 교사들의 편의를 위해 개선했다”고 말했다.

평가인증제도 개선해야 할 사항 많아

하지만 실제 보육현장에서 느끼는 온도는 다르다.

12년 동안 네 번의 평가인증 작업을 참여했다는 B교사는 “간소화됐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잘 모르겠다. 큰 항목에서는 없지만 세세하게 밑에 작게 항목을 만들어 표시해 놓아 얼핏 보면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안 그런 것 같다. 현재 어린이집의 평가인증은 너무 방대한 분야에 대해 지나치게 완벽한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예를 들어 손씻기 교육을 평가한다고 했을 때 수도꼭지를 잠그는 방법까지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너무나 완벽하고 굳이 이런 것까지 평가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전했다.

교사들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어린이집에서는 교사드을 위해 회식과 공연관람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서류.

20년 차 어린이집 교사 C씨는 “업무가 과중한 교사들을 위해 어린이집에서는 정기적으로 회식이나 공연관람도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 또한 서류로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마련했는데 이것 또한 또다시 서류작업을 해야 한다니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A, B, C, D 등급제로 나눠 지나친 경쟁을 방지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95~100점은 A, 90~95점은 B 등으로 구분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개선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교육부에 소속돼 있는 유치원 평가는 어린이집과 차이가 있다. 기본적인 평가지표는 동일하지만 구체적인 평가항목은 각 시·도 교육청이나 유아교육진흥원에서 결정, 각 지역에 맞게 융통성있게 진행하고 있다.

행복한 보육위해 도움되는 평가제도 도입해야

어린이집 보육교사들과 관계자들은 평가인증제도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현재의 방식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24일 문재인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어린이집 평가 인증 체계도 어린이를 중심에 놓고 아동 안전, 아동 인권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도록 정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B교사는 “한꺼번에 모든 분야를 점검하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한두 가지 영역을 중점으로 다루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열린어린이집을 확대하는 것도 어린이집 평가의 또 다른 개선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충북어린이집연합회 임진숙 회장은 “평가인증제도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정한다. 분명히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평가인증을 통해서 교육의 질이 향상되고 교사도 경각심을 느끼게 되는 것도 맞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너무 과중하다. 아이들이 행복하고 질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 평가를 하는 것인데 실제로 그렇지 못하다. 원래 취지대로 개선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보육진흥원의 한 관계자는 “사실 문제는 어린이집 교사들의 열악한 처우가 더 문제다. 유치원 교사들의 서류작업이나 문서는 어린이집보다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유치원 교사들은 어린이집 교사보다 월급도 많고 시간도 훨씬 여유롭다. 어린이집의 구조적인 문제가 더 근본적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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