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직언직썰/ 최윤정 충북청주경실련 사무처장

최윤정 충북청주경실련 사무처장

2016년 12월말, 행정자치부가 ‘가임기 여성 지도’를 공개해 논란이 됐다. 전국 253개 지자체별로 20~44세 여성인구수를 분홍빛깔 농도와 숫자로 표시한 지도였다. 심지어 가임기 여성수에 따라 17개 시도별 순위를 매긴 도표는 참담했다. 여성들은 “우리가 애 낳는 기계냐?”, “출산율과 여성 인구수가 무슨 관계냐”, “건강한 남자 정자수도 공개하지 그러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행자부는 “저출산 극복을 위해 다함께 참여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라고 해명했으나, 여론의 압력에 ‘대한민국 출산지도’는 곧 폐쇄됐다.

이른바 가임 여성 지표가 최근 부각된 것은 2014년 5월, 일본에서 발표돼 충격을 던진 ‘마스다 보고서’였다. 마스다 히로야는 현재의 출산율과 인구 이동 추세가 지속될 경우 2040년엔 일본의 기초자치단체 중 절반 가량이 소멸한다고 경고했다. 여기서 ‘소멸 가능성 도시’는 20세에서 39세까지의 여성인구가 노인인구의 절반 이하로 감소하는 지역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중앙대학교 마강래 교수가 펴낸 『지방도시 살생부』에 따르면,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95년 대비 2040년 인구를 추산한 결과 226개 기초 자치단체들 중에 인구가 ‘반토막’ 나는 지역이 3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에 96%는 예상대로 ‘지방도시’였다. 가임 여성 인구수로 분석한 결과도 거의 흡사했다. 대체 지방도시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지난주 충북·청주경실련 특별강연에 초대된 마강래 교수는 시민단체의 초청에 만사 제치고 내려왔다며 많은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현장을 보니 상황이 훨씬 더 심각했다고도 전했다. 지방 중소도시의 쇠퇴는 예측이 아니라 현실이며, 이미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지자체가 인구를 늘이기 위해 온갖 방안을 내놓아도 인구 감소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더구나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 지역이 전국 228개(세종·제주 포함) 지자체 중 86곳에 달하고 있다. 충북에선 보은, 옥천, 영동, 괴산, 단양 지역의 노인 인구가 초고령을 넘어 27~31%를 차지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마스다 히로야는 저서 『지방 소멸』에서 현재의 인구 소멸은 출산율 저하라는 자연적 인구 감소뿐 아니라, 젊은이들이 대도시로 빠져 나가는 사회적 인구 유출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도쿄 한 곳으로만 집중하는 ‘극점 사회’가 인구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주범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방 인구를 빨아들이면서 재생산은 안되는 ‘인구의 블랙홀’이 비단 도쿄뿐일까? ‘인서울’(대학)을 꿈꾸고 바늘 구멍 대기업 입사와 공무원 시험에 목 맨 청춘들이 서울로 몰려드는 현실을 언제까지 두고 볼 것인가? 젊은이들이 제대로 된 독립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게 만드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과연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이런 젊은이들에게 아이 낳기 운동이나 출산지원금이라는 당근책이 먹힐까? 왜 여성들이 행자부의 가임 여성 지도에 그토록 분노했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

이번 6.13 선거에도 후보들은 지역 개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삶의 질’을 말하는 후보조차 쇠락해 가고 있는 우리 지역의 현실은 말하지 않는다. 마 교수의 주장처럼 이제 지방 중소도시는 양적 발전이라는 환상을 깨야 한다. 가히 서울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도시 계획은 폐기해야 한다. 지역 특색이 없는 도시 전략은 ‘빨대효과’에 속수무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단지 유치에 골몰하는 단체장에게 4차산업혁명 시대에 지속가능한 생존 전략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5년간 500곳의 쇠퇴지역에 50조원을 투입하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쇠퇴 도시를 살리는 정책은 중요하다. 그러나 몇 개 도시, 몇 조원 투입 같은 성과 중심의 정책은 지양해야 한다. 도시 재생이라는 이름으로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도시 개발’을 해왔던 과거 정부의 관행을 끊었으면 싶다.

쇠락하는 지방도시에 ‘살생부’를 들이대며 머잖아 중앙정부도 손 뗄 날이 올 것이라 경고하는 메시지는 참 불편하다. 그러나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어떻게 지역에 남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이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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