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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품’ 사후관리 손놓은 지자체청주 현대코아앞 조형물 10여 년 전 금천동 무단 이전
작가 J교수 “건물주 채무 대신 작품 가져간다 전화받아”

지방자치단체가 대형건물에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되어 있는 공공미술품 관리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르면 연면적 1만㎡ 이상의 건축물은 건축비의 0.7% 이상의 가치가 있는 미술품(조각, 회화, 공예)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80년대 들어 권고사항으로 적용됐으나 충북도는 지난 95년부터 의무사항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의무사항으로 바뀐 지 22년이 지나도록 사후관리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있다. 심지어 지자체의 사전 승인없이 설치 작품의 위치를 무단 변경한 사례도 드러났다. 공공미술품의 제작과 심사·관리 문제점에 대해 알아본다.
 

현재 사창동 현대코아 앞에는 J교수 작품이 있던 자리에 석물조각품을 대체해 설치했다.


지난 1996년 청주 사창동 현대코아 빌딩에 준공되면서 높이 7m 가량의 브론즈 조형물(작품명 미래공간)이 설치됐다. 청주 모대학 J교수가 제작한 작품으로 문화예술진흥법 의무규정에 따라 설치된 초창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준공 당시 현대코아는 면적이 큰 건물 순위에 꼽혔고 미술 조형물 제작비도 3억 5000만원에 달해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하지만 현대코아 빌딩은 IMF사태를 맞아 잇딴 소유권 분쟁으로 경매와 낙찰을 거듭하며 건물관리가 여의치 않았다. 이런 와중에 J교수의 작품은 금천동 청주국제테니스경기장 옆 커피전문점 앞으로 옮겨졌다. 작품 안내판도 사라진 채 폐점한 커피전문점 정원에 방치돼 있는 상태다. 작품 이동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 J교수에게 연락을 취했다. “작가로서 가슴에 응어리가 진 작품인데 늦게나마 언론에서 관심을 가져줘 다행이다. 애초 작품가 3억5000만원에 계약을 했는데 계약금 5000만원만 받고 잔금을 한푼도 받지 못했다. IMF가 터지니까, 발주자인 현대건설도 이런저런 이유로 돈을 주지 않았다. 나는 브론즈 주물공장 비용대고 세금까지 납부하다보니 큰 손해를 본 피해자가 됐다”

특히 J교수는 제작비를 받지 못한 것 보다 자신의 작품이 부당하게 대우받은 것에 대해 더 가슴아파 했다. “몇 년을 거짓말에 속고 돈 받는 걸 포기하고 있었는데, 2000년대 중반께 누가 전화를 걸어왔다. ‘내가 현대코아 건물 때문에 받을 돈이 있어서 대신 조형물 작품을 뺏어왔다’고 얘기하더라. 그렇게 함부로 옮기는 게 아니라고 얘긴 했는데, 아마 그때 금천동쪽으로 이동시킨 것 같다. 난 속이 상해서 가보지도 않았다. 이후 누군가가 ‘그 작품 지금 주인도 없다는데, 나한테 팔면 안되느냐?’고 하길래 그냥 방치돼 있다는 걸 알게됐다”

J교수는 공공 미술품의 관리감독에 대해 뚜렷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법에 따라 제작된 공공미술품은 시민이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이 함부로 옮기거나 파는 것은 범죄행위다. 자치단체에서 시민의 문화적 재산을 지속적으로 관리감독해야만 한다. 금천동에 방치된 내 작품도 제 자리로 원상복구시키거나 시민공원으로 옮겨 시민들에게 되돌려줘야 한다고 본다”

공공미술품 사후관리 시스템 필요

지난 2012년 시·군으로부터 공공미술품 업무를 이관받은 충북도는 1997년 현대코아 J교수의 작품에 대한 자료를 갖고 있지 않았다. 청주시에 확인 결과 작품 이동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 담당공무원이 1명이다 보니 청주시내 300여점의 작품을 일일이 점검하기도 힘든 현실이다. 하지만 청주시내 손꼽히는 대형 공공미술품이 제자리를 떠난 지 10년이 지나도록 몰랐다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

현재 충북도내에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제작 설치된 공공미술품은 430여점에 달한다. 아파트 단지 준공이 많았던 작년에는 충북도에 신청된 공공미술품 심사 건수가 50여건으로 나타났다. 공공미술품에 대해서는 해당 시군에 2~3년에 한 번씩 점검을 지시하고 있지만 별도의 결과보고를 받지 않고 있다는 것. 따라서 전수 조사를 할 경우 현대코아 J교수 작품처럼 임의이동시키거나 아예 사라진 작품도 있을 거란 추정이다.

이에 대해 조각가 Q씨는 “호주에서는 공공미술품에 대한 ‘30년 일몰제’를 시행하고 있다. 30년 세월이면 건물 수명도 그렇고 작품 수명도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그 시점에 작품의 존속, 이동, 재수정, 폐기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충북도 공공미술품 의무화가 22년째를 맞은 만큼 구체적인 사후관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 역량있는 작가들의 공공미술품은 그 자체로 도시관광 콘텐츠가 될 수도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 도시 공공미술품의 기획운용을 책임질 문화예술 행정가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청주시 금천동 국제테니스장 옆 커피전문점 앞에 방치돼 있는 J교수 작품. 작가 사인 등을 고의로 훼손한 흔적이 보인다.


공공미술품 제작과 관련한 후진적인 ‘나눠먹기’ 관행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문화예술진흥법의 취지는 공공미술 영역 확대와 함께 미술작가에 대한 제작 지원에 방점을 찍고 있다. 하지만 작품 발주 과정이 공정하지 않다보니 실제 제작예산에서 작가의 손에 쥐어지는 것은 50%에 불과하다는 것. 법제정 당시에는 총건축비의 1%를 공공미술품에 쓰도록 정했으나 이후 0.7%로 낮아졌고 발주 과정에 ‘브로커’의 개입도 늘어난 추세다.

공공미술품 예산에서 30%는 발주자인 건축주의 몫이고 20%는 브로커 수수료, 나머지 50%가 수주 작가의 몫이라는 것이 조형 미술계의 정설이다. 증빙서류를 갖추기 위해 작가의 통장으로 작품비용이 입급되지만 총액의 30%는 발주자에게 되돌려 주고 있다는 것. 그나마 경험없는 작가는 추가로 소득세 세금까지 부담해 50%에도 못미치는 작품가를 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과거 작가의 몫이 70%선을 유지하다 수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브로커 역할이 커진데 따른 부작용이다. 도내에서 공공미술 조형물 제작을 많이 하는 작가는 기획사를 매개로 한해 5건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지역작가 Q씨는 “우리 지역에서 공공미술 조형물 제작에 참여한 작가는 10여명에 불과하다. 공공기관이 공모를 할 경우에도 일종의 실적제한을 걸다보니 애초 참여자격이 안되는 작가들이 많다. 결국 민간 건축물의 공공미술품쪽으로 눈을 돌리면 에이전시 역할을 하는 기획사를 통하지 않고 수주하기가 어려운 구조다. 기획사에서도 건설사들과 일종의 사전 작업비가 필요하다보니 20% 정도를 수수료로 가져 간다. 작품공모를 하더라도 투명한 심사를 기대하기 어렵고 민간분야는 ‘짬짬이’로 진행되다보니 개선할 방법이 딱히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세종시 11개 아파트 단지 공공미술품 통합 설치
행복청 “작품 전체 조화와 예술성 향상 위해 첫 공모 대행”


도내 공공미술품 가운데 상당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설치된다. 특히 청주시의 경우 동남지구, 방서지구, 청주테크노폴리스 지구 등 신규 아파트 밀집지역이 생겨나고 있다. 따라서 단지별 개별 미술조형물보다 지구별 통합 미술조형물 발주 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세종시가 아파트 지역의 미술품 통합 설치를 처음으로 시도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행복도시건설청은 지난 2016년 세종시 2-2생활권 11개 아파트 단지 공공 미술품을 통합 설치하기로 하고 공고를 대행했다. 이 생활권은 전체 11개 아파트단지 내 순환산책로 주위 13곳에 미술작품을 설치했다. 위치 당 사업비는 5700만~1억9400만원이지만 통합해 총 16억3000여만원에 발주했다. 전체 작품의 주제는 옛 지명인 송원(松院)리에서 착안, “옛길 소나무에 취하다”로 정해졌다.

행복도시건설청 측은 “지금까지는 아파트 단지 별로 미술품이 설치돼 전체적인 조화나 예술성, 작품 규모 등에 한계가 있었다. 미술품 공모 대행제를 첫 시도한 앞으로 2-2생활권 아파트에 대한 반응이 좋아 도시문화상업가로(어반아트리움) 등 주요 시설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권혁상 기자  jakal4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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