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시인·서원고등학교 교사)
많은 사람들이 단조로운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며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꾼다. 일탈의 일환으로 가끔 여행을 떠나지만 그것은 잠시 한 호흡을 쉬어가는 삶의 환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리라. 그렇게 평소 일탈을 꿈꾸던 이들도 지속적으로 일상적 삶의 궤도나 사회적 통념의 틀에서 벗어나 살아가는 사람이 혹 주변에 있으면, 그의 의지와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안정의 이름으로 편견에 가득 찬 혹독한 평가들을 매복해두었다가 비난의 화살을 쏘아댈 뿐이다.
하여, 궤도에서 일탈하는 삶은 대단한 용기를 바탕으로 한 결단이 필요한 것이리라. 그런 용기를 부여해주는 근원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열정’이 아닐까 싶다.
얼마전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어댑테이션>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는 오랫동안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게 하는 독특한 요소가 있었는데, 그것은 유령난초로 상징화된 최상의 아름다움을 향한 열정적 삶의 모습, 자기 삶의 숨겨진 정수를 찾으려고 하는 인물들의 치열한 모습에서 전해오는 것이었다.
<어댑테이션>은 수잔 올린의 베스트셀러 『난초도둑』과 이 책을 영화로 각색해야 하는 시나리오작가 찰리 카프우먼의 작가적 고뇌가 이중의 축으로 전개된다. 희귀난초를 찾아 눈을 번뜩이며 난초밀렵이 금지된 거대한 습지를 헤매는 존 라로쉬, 안정되고 편안한 일상이지만 생기 없는 삶에 권태를 느끼던 중 존 라로쉬라는 이단적 인물을 만나면서 스스로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고 존 라로쉬와 함께 유령난초를 찾아나서는 수잔, 그리고 『난초도둑』을 제대로 된 하나의 영화로 탄생시키기 위해 치열하게 고뇌하는 작가 찰리 카프우먼, 이 세 인물 모두가 내 눈엔 참으로 빛나 보였다. 특히 희귀난초에 빠져 온 생애를 투신하는 존 라로쉬는 가족에게나 사회에게서나 외면당하는 이단적 삶으로 살아가지만, 난초에 대한 치열하고 진지한 순정의 열정은 언뜻 초라해 보이는 그를 더 빛나게 하는 삶의 정수로 보였다.
때로 우리 사회는 열정이 넘쳐 심지어 범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어디를 둘러봐도 어떤 열정도 없이 건조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왜 이렇게 극단의 모습으로 비춰질까. 어떤 것이건 지속적이지 않은 일회적 관심 순간적 열정은 진정한 열정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잠깐 동안의 나들이 같은 관심, 기분 전환식의 열광을 진정한 열정으로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떤 희생이나 비난까지도 감수할 마음으로 생의 순정을 바칠 수 있는 열정적 삶의 모습이 더 그리운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