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피의자 현장 사진 찾아달다" 주장
민·형사 소송 패소 불구, 경찰에 행정정보공개 청구

청주 옥산면에 거주하는 60대 부부가 4년 전 자신들이 당한 폭행·상해 사건의 수사가 잘못됐다며 하소연하고 있다. 한밤중에 집으로 찾아와 폭력을 행사한 피고인의 증거 사진이 수사과정에서 사라져 결국 법원에서 상해 무죄판결을 받게 됐다는 주장이다. 수사기관을 숱하게 오가며 민원을 제기해온 부부는 당시 출동 경찰의 현장 사진 중 다수가 증발된 것으로 보고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정보공개를 요청한 상태다. 해당 경찰관들이 현장사진 매수에 대해 ‘기억이 없다’고 답하자 해당 파출소 사진기에 대한 정밀감식을 통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나선 것이다.
 

청주 옥산면 정경모씨 부부가 농장 숙소앞에서 사건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건은 2014년 9월 1일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에 사는 정경모(61)·임강열 부부의 외딴 농가에서 발생했다. 부부의 지인인 A씨가 한국전력으로부터 계량기 조작사실이 적발되자 신고한 장본인으로 남편 정씨를 지목하고 항의하러 찾아온 것이었다. 밤 10시 늦은 시간에 술을 마신 채 찾아온 A씨를 돌려보내려 했으나 출입문을 발로 차고 고함을 질러 문을 열어주었다는 것. 거실에 들어온 A씨는 ‘한전에 신고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는 정씨에게 “왜, 거짓말을 하느냐”며 멱살을 잡고 행패를 부렸다는 것. 이에 정씨는 경찰에 112 신고 했지만 출동한 옥산지구대 경찰관이 집을 찾지 못하겠다고 연락이 와 안내를 위해 집밖으로 나가게 됐다.

남편이 나가자 A씨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라’고 요구하는 부인 임씨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고 한다. 부인 임씨는 “욕을 하고 머리채를 잡고 미는 바람에 냉장고에 머리를 부딪쳐 쓰러졌다. 옆으로 다가와 소주병을 들고 머리를 툭툭 쳐 겁이나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때 남편 정씨가 경찰관과 집에 도착했고 웃통을 벗고 소주병을 들고 있는 A씨를 경찰이 제지하며 현장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관할 흥덕경찰서에서 사건을 조사했으나 서로 간에 폭행 상해 부분에 대한 진술이 엇갈렸다. 결국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 A씨는 거짓반응, 남편 정씨는 진실반응이 나왔다. 현장 사진과 동거인 목격자의 증언,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근거로 A씨는 폭행,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 위반(집단 흉기등 상해), 퇴거불응 등 3가지 죄명으로 기소의견 송치됐다. 반면 남편 정씨에 대한 상해 혐의는 ‘혐의 없음’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사건을 배당받은 청주지검은 A씨에 대해 폭행, 퇴거불응, 상해 혐의로 벌금 500만원의 약식기소 처분을 내렸다. 문제는 남편 정씨에 대한 추가 진술도 받지 않은 채 상해 혐의를 인정해 벌금 100만원으로 약식기소한 것. 검찰의 벌금형 처분에 양측 모두 불복해 법원의 정식재판으로 회부됐다. 사건 발생 1년만인 2015년 9월 1심 재판부는 A씨의 물리력 행사와 부인 임씨의 부상과는 ‘상당한 인과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상해죄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따라서 A씨는 폭행, 퇴거불응죄만 인정돼 벌금 150만원(검찰 약식기소 500만원)으로 감경됐다. 한편 남편 정씨의 상해죄도 무죄판결받았으나 실제 건강상 후유증을 겪고 있는 부인 임씨의 상태를 감안하면 부부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었다.
 

경찰이 제시한 현장 사진 3장은 정씨 부부와 술상 뿐이었다.

1심 재판에서 A씨의 상해혐의가 무죄가 되자 남편 정씨는 수임 변호사를 찾아가 항의하고 사건 서류 일체를 되돌려 받았다. 정씨는 법률적 조력자인 모 행정사의 소개로 1심 변호사와 민사소송 1심(부장판사 출신)·2심(검사장 출신) 변호사를 각각 선임했다. 한이 맺힌(?) 정씨는 아들의 돈까지 조달받아 법정공방에 올인한 셈이다.

하지만 형사 1심 변호사와 결별한 뒤 형사 항소심에서는 별도의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남편 정씨는 “청주에서 좋은 변호사(민사재판)들을 샀기 때문에 그냥 잘 되는 줄만 알았다. 행정사도 형사 항소심 변호사 얘기는 하질 않아서 난 생각도 못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름도 모르는 국선변호사 기록만 있고 그냥 항소심이 끝난 거였다”고 말했다. 결국 형사 항소심에서 아무런 대응을 못했고 1심 그대로 A씨의 상해죄는 무죄 판결됐다.

A씨는 취재진과 통화에서 "평소 잘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찾아가서 술한잔 하자고 한 것 뿐이다. 잠시 언쟁이 있어 밀고 당기긴 했지만 내가 때린 적은 없다. 그때 옆방에는 정씨와 함께 일하는 일꾼도 있었는데 내가 정씨 부인을 협박하고 폭행했다면 가만 있었겠는가? 폭행한 사실은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정씨 농장의 일꾼은 경찰 진술에서 "방안에 있으면서 거실에서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 나와보니 C씨가 웃통을 벗고 있었고 직접 때리는 장면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형사재판에서 상해죄가 무죄판결 받은 상황에서 상해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민사소송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하지만 정씨 부부는 재산을 탕진해 가며 1심, 항소심, 상고심까지 모두 다른 변호사를 선임했지만 결과는 줄줄이 기각당했다. 대법원 상고심까지 기각당한 지난해 10월께 남편 정씨가 취재진을 만나 사건 서류를 내밀었다.

정씨의 재판 서류를 검토하며 발견한 의문점은 경찰에서 증거로 촬영한 현장 사진이었다. 재판 자료에 첨부된 사진은 3장에 불과했지만 당초 7~8장을 촬영했다는 게 정씨의 주장이었다. 남편 정씨는 “옥산지구대 경찰관이 7~8장의 사진을 찍었다고 했고 나도 C씨가 웃통 벗은 사진을 직접 봤다. 그런데 법원에 올린 서류에는 3장만 있었고 그나마 C씨가 웃통 벗고 있는 사진은 사라지고 없었다. 1심 재판 때도 변호사한테 ‘어째, 경찰에서 본 사진이 없다’고 얘기했는데 법정에서 따지질 않더라”고 말했다.

이후 부부는 사라진 사진을 찾아내기 위해 검찰과 경찰에 지속적으로 진정 민원을 제기했다. 결국 지난 2월 청주지검은 “경찰로부터 넘겨받은 현장사진은 3장이며 법원에 증거로 제출됐다”고 회신을 보내왔다. 이에 따라 애초 수사기관인 청주흥덕경찰서를 상대로 현장 사진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하지만 “사진은 보존기간이 지나 디지털 카메라 메모리 카드에서 삭제된 상태이며 삭제 사진을 복원해 제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정씨 부부가 메모리카드를 공개할 경우 자신들이 비용을 들여 파일 복원을 시도해 보겠다는 제안에 대해서는 “메모리 카드에 제3자의 사진 등이 포함되어 있어 불가능하다”는 답변이었다. 결국 정씨 부부는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청구’를 제기하게 됐다.

현장·수사 경찰관 ‘기억이 나지 않는다?’
3장 현장 사진 중 피의자 C씨 모습없어 의문

지난해 10월 정씨 부부의 제보를 접한 취재진은 당초 경찰이 확보한 사진 매수에 대한 확인작업을 시작했다. 사건조사를 담당한 흥덕경찰서 경찰관은 “취급 사건이 많아 정확하게 몇 장이었는 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피의자 A씨가 웃통을 벗은 사진을 본 기억이 있느냐고 묻자 역시 “일일이 기억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14년 9월 한밤중에 사건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을 수소문해 당시 상황을 질문했다. 하지만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그 사건은 기억난다. 두 사람이 출동했는데 아마 동료가 찍었을 것이다. 몇장을 찍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출동했던 동료 경찰관은 이미 퇴직한 상태였다.

하지만 법조계 일부에서는 현장 사진 3장 중에 피의자 A씨의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변호인 Q씨는 “대부분 현장출동 폭력사건의 경우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피의자, 가해자 인적 피해나 물적 피해 현장 사진이 제출된다. 이번 사건은 피의자 A씨도 ‘폭행당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당연히 현장 사진을 확보했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만약, 형사소송 과정에서 현장 사진의 의문점을 제기했다면 재판부에 의해 진위파악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법적 판단력이 부족한 정씨 부부는 정작 형사재판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애꿎은 민사소송을 통해 고액의 수임료만 날린 셈이 됐다.

결국 사건은 ‘다람쥐 쳇바퀴’를 돌아 3년이 지난 시점에 사진 유무를 놓고 행정정보공개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남편 정씨는 여전히 똑같은 말을 되뇌이고 있다. “이대로는 평생의 한으로 남을 것 같다. 메모리카드만 공개하면 내가 비용을 부담하고 다른 사람 부분은 모자이크 처리하면 되지 않겠나? 국가기관에서 안된다고만 하지 말고 가능한 방법을 찾아 줄 수는 없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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