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직언직썰/ 최윤정 충북청주경실련 사무처장

최윤정 충북청주경실련 사무처장

“○○들은 정치에서 판단력을 행사하기엔 너무 감정적이고 쉽게 냉정을 잃습니다. ○○들에게 투표할 권리를 준다면 사회 구조가 무너질 것입니다. 투표권까지 주어지면 멈출 수가 없어집니다. 이제 국회의원, 시장까지 하겠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에 들어갈 단어는 ‘여성’이다. 시대적 상황은 1912년 런던. 영화 「서프러제트」(Suffragette : 여성참정권자)는 남성 정치인의 분노에 찬 연설로 시작한다. 당시 여성들은 투표권을 얻기 위해 수십 년 동안 평화적 시위를 전개했지만 번번이 묵살 당한다. 결국 이들은 “남성들이 알아듣는” 방식으로 투쟁 전략을 바꾸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여성들은 맞고 투옥되고 급기야 목숨까지 던진다. 이들의 투쟁으로 영국 여성은 1918년에 일부(30세 이상 여성) 참정권을 얻어냈고, 그로부터 10년 후인 1928년에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누리게 된다.

2017년 대한민국. 위의 문장 ○○에 청소년을 넣으면 18세 선거권을 반대하는 이들의 논리가 된다. 보수층을 대변한다는 자유한국당은 “청소년은 미성숙하고 판단력이 없다”며 만 18세 투표권을 반대해 왔다. 새로운 카드로 내민 ‘학제 개편 조건부’ 주장 역시 초등학교 취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출 때까지 18세 투표권 주장을 유예시키겠다는 꼼수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급기야 지난 4월 10일 ‘선거연령 하향 4월 통과 촉구 청소년농성단’은 자유한국당사 앞에서 기습시위를 벌였다.

그동안 국회에서는 선거연령을 만 18세로 낮추기 위한 20여 건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법뿐 아니라 국민투표법, 헌법 개정안 등을 시급히 통과시켜야 함에도 4월 임시국회는 개점휴업중이다.

6.13 지방선거는 ‘촛불’ 이후 처음으로 우리 지역 대표자들을 뽑는 중요한 기회이다. 그러나 이제 겨우 예비후보자들의 선거운동을 지켜보았을 뿐인데 유권자들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여당 후보로 낙점되면 당선이 확실시된다는 오만은 결국 곳곳에서 사고로 이어지고 있다. 유권자들에게 100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돌리고, 특정단체 임원들에게 식사를 제공한 혐의로 출마를 포기하거나 하루 만에 공천이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야당은 어떤가? 후보 기근 현상이 벌어지자 함량 미달 후보들이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고, 재임 기간 중 물의를 일으킨 인물들도 ‘유명세’에 기대 재선·삼선을 준비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소속 정당을 바꾸는 철새 이야기는 이제 새롭지도 않다.

예비후보자들의 출퇴근길 안부 인사도 하루 이틀이지 도대체 언제쯤 이런 익숙한 풍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색깔만 달랐지 후보자들의 유니폼에 새긴 글씨, 피켓 사이즈까지 획일화시킨 ‘깨알’ 선거법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일까? 행정공백 최소화라는 명분 아래, 예산과 조직을 쥐고 있는 단체장이 현직 프리미엄을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허용한 법은 과연 공정한가?

‘예비’후보자들의 정책과 소신을 살펴보기 위한 간담회도 사전선거운동이라고 금지하는 법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언론사 토론회 일정도 소화하기 어려운 공식 선거운동 기간(13일간)에 과연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을 만날 기회나 있을까? 모든 시민이 ‘스마트’한 시대에 유권자들의 참여를 막는 선거법, 정치 신인을 용인하지 않는 ‘기울어진 운동장’은 이번 선거에서도 바뀌지 않았다.

2005년, 미국 미시간주의 작은 마을 힐스데일 카운티 시장 선거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고등학교 3학년, 만 18세 학생이 현직 시장을 단 2표 차로 누르고 당선된 것이다. 주인공 마이클 세션즈는 18세 생일 다음날, 아르바이트로 번 돈 700달러를 들고 시장 선거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한 주민의 인터뷰가 걸작이다. “나이가 어린 것은 선거의 쟁점이 아니었다.”

다시 우리 지역으로 돌아와 보자. 무슨 ‘돌려막기’도 아니고 선거법 위반으로 낙마한 후보,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어제의 용사들’이 이번 선거에 뛰어들고 있다. 놀라지 마시라. 4월 23일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충북 기초단체장(시장·군수) 예비후보자 37명 가운데 16명이 60세 이상이다. 무려 43%에 달한다. 만 18세 선거권이 주어지면 6·13 지방선거에서 45만 명이 투표할 수 있다고 한다. 청소년이 투표해야 세상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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