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터넷에서 번진 머슴논쟁을 보고 생각이 많았다.
태초의 인간은 누구나 평등했으며 높고 낮음이 없고 너와 나의 개념자체가 없었다. 문명이란 과정에서 우리라는 덩어리가 만들어지고 너와 나의 것이 구분되고 많이 가진 사람과 적게 가진 사람으로 분리되며 계급이 형성돼 갔을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의 머슴이 되어 이 나라를 잘사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연설을 한다고 해서 대통령이 머슴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최소한 협의의 ‘머슴’이란 단어를 놓고 볼때 그렇다는 것이다.
옛날 양반놀음 좋아하던 시대에는 책만 보며 놀고 마시고 신선놀음하던 사람들이 언제 자기들 먹을 양식을 위해 논밭에서 농사짓는 것을 보았는가. 머슴이 열심히 농사지어 곳간을 가득 채우면 그것을 퍼먹고 놀던 사람들이 양반으로서, 가진 사람으로서의 계급자 입장에서 세경을 나눠주고 많은 하인과 가족들은 세경으로 생계를 유지해 나갔던 것 아닌가.
한집안의 생활을 책임지는 역할은 밖으로는 농토를 확장하여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고, 안으로는 곳간을 가득가득 채우는 것이다.
서로가 뜻을 같이 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노력하면 그 결과는 웃음과 희망이 넘치는 살기 좋은 집안-집안이든 사회든 마찬가지다-이 될 것이며, 사사건건 트집과 시비로 일관하게 된다면 그 집안 꼴은 보나마나다. 곳간이 허술해지고 서로 간에 너그러움은 사라지며 자기 주장만 남게 될 것이다.
물론 세경을 주는 마음도 즐겁지 않을 것이며 받는 쪽에서도 줄어든 세경에 불만의 소리만이 높아지며 요구사항은 갈수록 늘어만 갈 것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보면 아주 단순한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큰 일로 확산시켜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 입히는 미성숙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로의 고집 때문에 사업장과 일자리 자체가 사라져 버리는 안타까운 일들도 우린 많이 보아왔다.
그러나 자기의 역할을 이해하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오너가 머슴정신으로 열심히 일하겠다는 말은 위에서 군림하기 보다는 수평적인 위치에서 겸손하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일 것이다.
거드름피우는 오너보다는 머슴 같은 겸손한 오너가 좋은 것 아닌가.
예부터 머슴이라는 말은 나쁜 뜻으로 쓰여지지 않아왔다. 오히려 다정다감하며 친숙한 느낌까지 준다.
“열심히 일하는 머슴에게 화를 낼 사람이 어디 있으며 주인노릇 하는 머슴에게 칭찬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갚. 상하를 막론하고 머슴정신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회가 된다면 그 나라는 잘사는 나라가 될 것이다.
곳간이 넘치고 회사가 잘되는데 월급 안주고 나가라고 내쫓는 회사를 보았는가. 내가 알기로는 특별 보너스까지 듬뿍듬뿍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모두 특별 보너스를 두둑히 받도록 머슴정신으로 열심히 일해 곳간을 가득 채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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