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웬티아인 씨, 검정고시 합격…다문화센터 취업해 눈길

증평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통번역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원지영 씨.

2010년 지인 소개로 남편을 만나 베트남에서 충청북도 증평군으로 시집왔다.

요즘 세상에 국제결혼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18살,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나이에 남편만 믿고 베트남에서 대한민국 증평으로 이민왔다. 어린 나이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증평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남편이 큰 버팀목이 되어 주었지만 당장 가족, 주변 사람들과 말이 통하지 않으니 답답함을 넘어 하루하루 살아내기가 버거웠다.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사고 싶어도 ‘혹시 말이 통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까?’, ‘속지는 않을까?’ 매사가 걱정거리였고, 고민거리였다. 시간이 흐른다고, 좋아질 것 같지 않은 생각에 두렵기까지 했다.

그랬다. 7년 전,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그녀의 결혼생활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친정엄마가 있는 베트남으로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답답해하면서, 또 속상해하면서 살 수만은 없었다. 결혼과 동시에 생긴 아기를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한국생활에 적응해야만 했다. 그녀에겐 아기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남부럽지 않게 키워내야 한다는 ‘과업(課業)’이 있었다.

꼬박 3년동안 공부에 매달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꼬박 3년 동안 밤낮으로 검정고시 공부에 매달렸다. 어린 아기를 데리고 공부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아기가 자는 시간을 이용해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새벽 1, 2시는 기본이었다.

그 결과 초·중·고 검정고시를 일사천리로 통과하고 올 초부터는 증평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통·번역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결혼이민자들 사이에서는 어느새 귀감이 되고 있는 베트남, 아니 한국여성 원지영(응웬티아인·25) 씨 얘기다.

원지영 씨는 “이제는 당당히 한국인으로 살고 있다”며 “예전의 저처럼 어려움을 겪는 결혼이민자들을 도울 수 있어 행복하다”고 활짝 웃었다.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상태에서 한국에 왔어요.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죠. 나이도 너무 어렸고.” 당시를 회상하며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처음부터 졸업장이 중요하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살기 위해 한글을 배우는 것도 바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아이에게 한글도 직접 가르치고 싶고 또 아이가 학교에 가면 한국 엄마들처럼 숙제도 봐주고 싶었다. 남부럽지 않게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졸업장을 취득해 취업도 하고 싶었다.

어려움 겪는 이민자들 도울 수 있어 행복

이제는 어느새 도움을 받는 사람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 원지영 씨는 “제가 힘들었을 때 절 도와준 사람들이 참 많았어요. 가족들은 물론이고 동네 분들이랑 센터 직원 분들, 그분들이 없었으면 아마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을 거예요” 원지영 씨는 자신이 받은 것을 이제는 돌려주고 싶단다.

그녀는 고등학교 과정 합격에 머무르지 않고 대학에도 진학할 계획이다. 언어 쪽으로 대학에 진학해 언어영역에서 전문가가 되는 것이 원지영 씨 꿈이다.

아이 키우랴, 살림하랴, 직장 다니랴, 또 공부하랴, 누구보다 바쁘고 열심히 살고 있는 원지영 씨는 요즘 정말 행복하단다. 그녀는 “공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증평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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