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깜빡이를 안 켜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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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깜빡이를 안 켜시나요?
  • 충청리뷰
  • 승인 2018.04.1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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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직언직썰/ 오효진 소설가
오효진 소설가

지난 주말 경주에 다녀왔다. 고속도로에서 아찔한 일을 여러 번 겪었다. 빗길을 달리는데 깜빡이(방향지시등)를 안 켠 차들이 불쑥불쑥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고속도로에서만 이런 무례함을 겪는 게 아니다. 나는 세종-청주간 도로를 자주 오간다. 거기서는 대형트럭이 느닷없이 달려들어 기겁을 한다. 젊은이들이 많이 타는 SUV는 더 심하다. 시내서도 마찬가지다. 교통법규 안 지키기 캠페인이라도 벌이는 것 같다.

도이치에 주재하는 한국 상사원한테 들은 얘기다. 차를 타고 가다가 무심코 신호위반을 했단다. 마침 지나가는 차량도 없었다. 그러곤 잊어버리고 지냈는데 한참 후에 경찰서에서 벌금이 날아왔다. 상사원은 위반 사실을 까맣게 잊고 경찰서에 찾아가 항의를 했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상사원이 신호위반 하는 순간을 목격한 네 사람이 모두 위반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더란다.

일본에서 지진이 일어나 숱한 인명과 재산피해가 났을 때, 우리가 TV 화면에서 본 충격적 사실이 떠오른다. 심한 지진이 일어나 눈앞에서 땅이 쩍쩍 갈라지고 있는데 어떤 운전자가 네거리 신호등 앞에서 차를 멈췄다. 신호등에 빨간 불이 켜져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빨간 불이 켜져 있거나 말거나 어서 달아나야 할 판에 이렇게 맹맹이 콧구멍처럼 답답한 짓을 하고 있단 말인가.

국회의장을 지낸 분한테 들은 얘기다. 유치원에 다니는 그분 손자 손녀 세 명이 각각 한국, 일본, 미국에 살고 있었다. 방학이 돼서 외국에 사는 애들이 엄마 아빠를 따라 우리나라에 와서 할아버지 댁을 찾았다. 식사 시간에 벌어진 일이다. 일본서 온 애는 식탁에 앉아 “잘 먹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수저를 든다. 다 먹고 나서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인사를 깍듯이 하고 밥그릇을 들고 일어나서 싱크대에 가져다 놓았다. 미국서 온 애는 그렇게 깍듯이 하지는 않았지만 제 자리에서 밥을 조용히 먹고 일어났다. 그럼 한국서 자라는 애는 어떻게 했을까. 이 아이는 자리에 앉지 않고 방안을 뛰어다녔다. 그러면 엄마가 밥그릇을 들고 쫓아다니며 숟갈로 밥을 떠 넣었다.

우리는 가정과 유치원에서 식탁예법을 가르치는가. 학교에서 교통법규 지키기를 가르치는가. 정말 철저하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가르쳤다고 하자. 그렇다면 사회가 새로 진입하는 젊은이들이 배운 것을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 어른들이 솔선해서 도덕을 무시하고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다면 신입자들이 그걸 지키겠는가. 윗물이 맑지 않은데 아랫물이 맑을 리 없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됐다고 한다. 경제대국이 됐다고 한다. OECD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법률준수율이 꼴찌에서 두 번째다. 졸부들의 무법천지라는 따가운 시선을 면하기 어렵다.

법규를 제대로 지키는 사람이 융통성 없는 꽁생원 취급을 받는 세상이 됐다. 국가가 얼마나 부패했는가를 따지는 부패지수도 꼴찌에서 맴돈다. OECD는 우리나라의 부패한 집단으로, 정당 국회 종교 공무원 사법부 경찰을 순서대로 꼽는다. 공적 기관 대부분이 부패했다는 것이다. 선거 때도 돈 선거가 만연한다. 돈 선거로 당선된 사람은 본전 플러스 알파를 뽑으려고 돈과 특권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격이 말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교통사고율이 세계1위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서 2017년 조사한 교통문화지수를 보면 깜빡이를 제대로 안 켜는 사람이 10명 중 3명이라지만 내 경험으론 안 켜는 사람이 그보다 더 많을 것 같다. 아니 세 명이라도 많은 숫자다. 우리는 불감증에 걸려 있다. 교통법규를 더 엄하게 가르치고, 위반하는 사람을 더 열심히 단속하고, 보는 족족 고발해야 한다. 깜빡이 켜기가 법을 지키는 첫걸음이고, 부패한 국가라는 오명을 씻고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만드는 시작점이다. 국가에 무엇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나 먼저 지킬 것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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