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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의인, 고 남윤철 교사 4주기
청주 성요셉 공원 가족들 참배
"단 한 번도 떠났다고 생각한 적 없어"

벌써 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벚나무의 꽃은 피고 지기를 네 번 반복했다. 시곗바늘은 돌고 돌아 2018년 4월 15일을 가리켰다.

  하지만 단 한 개의 시계가 움직이지 않았다. 차가운 뱃속의 녹슨 시계는 여전히 2014년 4월 16일에 멈춰있었다.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되는 그날. 304명의 슬픈 영혼을 가슴 속에 묻은 그날의 시계가 다시 움직였다.

  세월호 참사 4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청주시 가덕면 천주교 성요셉 공원.

  침몰하는 배 안에서 제자들을 구하고 숨진 고 남윤철(당시 35세) 단원고 교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남 교사의 아버지 수현씨와 어머니 송경옥씨의 눈물만이 하염없이 떨어질 뿐이었다.

  사고 당시 남 교사는 비상구로 먼저 대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 교사는 제자들을 먼저 생각했다. 배 안에 물이 밀려드는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도 그는 선실 안을 뛰어다니며 제자들을 구했다. 그리고 최초 신고시각 28분 뒤 그는 배꼬리 부분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됐다.

  남 교사의 아버지 수현씨는 아직까지 가족 곁으로 돌아가지 못한 아들의 제자를 가장 안타까워했다.

  세월호 유골 미수습자 5명 중 2명이 남 교사가 가르치던 박영인 군과 남현철 군이기 때문이다. 남 교사의 두 제자는 아직도 단원고 2학년을 마치지 못했다.

  수현씨는 "차가운 바닷속에 있는 학생 2명이 아들의 제자라 더 미안하다"며 "따뜻한 봄날, 부모의 곁으로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눈물을 훔쳤다.

  그는 아들의 묘비 앞에 소주 한 잔을 따랐다. 아들은 아무 말 없이 잔을 비웠다. 집에서 늘 하던 대로였다. 수현씨는 아들을 단 한 번도 죽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오늘이라고 특별히 한 대화는 없어요. 평소처럼 마음을 나눴죠. '보고 싶고, 사랑한다'고."

  이날 남 교수의 제자 5명도 발걸음을 함께 했다. 예전 같은 대규모 시민 추모객은 없었다.

  이제 단원고를 졸업해 성인이 된 제자들은 '그가 떠난 자리는 한없이 따뜻했다', '뒤늦은 바람결로나마 누군가의 가슴속에 간직하고자 합니다'라고 적은 글귀를 묘비 앞에 내려놓으며 살아생전 선생님을 기억했다.

  어깨를 흐느끼는 아들의 제자를 도리어 수현씨가 위로했다. 매년 빠짐없이 아들의 묘비를 찾아오는 제자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모두가 가슴 아픈 일이죠. 우리 부부도, 이 어린 아이들도. 하루빨리 상처가 아물었으면 좋겠네요. 그날의 진실도 명확히 밝혀져야 하고요. 촛불의 염원을 모아 탄생한 정부인만큼, 그 한을 풀어줄거라 믿습니다."

  수현씨가 고개를 돌려 아들의 묘비 앞 작은 술잔에 소주를 따랐다.

뉴시스  cbinews04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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