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표면적으로 보면 구본영 천안시장의 얘기는 단순할 수 있다. 그는 지난 3일 채용비리와 뇌물수수혐의로 전격 구속됐다가 3일만에 구속적부심으로 풀려났다. 그리고 곧바로 행사장을 찾아다니면서 정당공천을 위한 면접까지 치렀다고 한다. 듣기에 따라선 ‘3일의 해프닝’ 쯤으로 치부될 사안이다.

결국 이 문제는 형사사건의 의례적인 공식(?)인 “혐의에 대한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단서를 달고 법원으로 넘겨지게 됐다. 유력한 당선 후보 1순위로 꼽혔던 그였기에 당연히 앞으로 기소 이후의 법정공방은 치열할 것이다. 구속적부심에서 이미 국내 4대 로펌인 법무법인 ‘태평양’을 내세움으로써 이를 예고했다.

성격은 좀 다르지만 만약 언론사가 자사보도와 관련해 송사에 휘말리고 상대가 이렇듯 호화 변호인단으로 나오면 참으로 난감하다. 특히 지방신문은 전문 법조팀과 연계해 상시 조력을 받는 중앙지와는 달리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선 형편상 나홀로 소송을 수행할 수 밖에 없고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되뇌이게 된다.

구본영 천안시장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재경 기자(충청타임즈 천안주재)의 작품이다. 지난해 6월 13일 첫 보도로 관련의혹을 제기한 후 거의 1년동안이나 외롭게 싸워왔다. 지방언론이 한 사건 그것도 지방권력자의 독직비리를 문제삼아 이토록 오랫동안 기사화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충북에서는 아예 없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굳이 이런 글을 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기자로서 그가 보여준 활동은 언론업계의 통념인, ‘취재및 역할에 있어 견제와 장애가 많은 적지(敵地)’에서 이뤄냈다는 점에서 더 독보적이다. 통상 지방신문의 경우 본사가 어디 있는가에 따라 보도의 경쟁력이나 파급력은 달라진다. 본사를 충북에 두고 있으면 충남과 대전에선 상대적 박탈감을 당할 수밖에 없고 그 반대의 경우도 똑같다. 이재경 기자 역시 광역자치단체를 달리하는 타 지역에서 온갖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이런 기사를 견인했다는 점에서 그 기자정신이 돋보이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현지의 다른 언론들은 구본영의 비리의혹을 증언하는 폭로가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거나 수동적인 자세로 일관했고 결과적으로 이 사안의 사건화를 늦춘 꼴이 됐다. 이는 언론계의 그릇된 관행 즉 특종이나 발굴기사를 경쟁사에 빼앗길 경우 행해지는 의도적인 무관심이나 배척 이른바 ‘자사 이기주의’를 뛰어넘는 언론의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급기야 천안시는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광고와 신문구독 중단이라는 보복으로 이재경 기자와 해당 언론사를 압박했다. 비판적인 언론보도에 대한 가장 비열한 대응은 이처럼 광고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다. 요즘 삼성이 이 문제로 곤혹을 치르고 있지만 충북에서도 이런 사례는 종 종 불거진다.

대표적인 곳이 학내문제로 늘 골치를 썩는 청주대학이다. 이 대학에 분쟁이 있을 때마다 재단과 학교운영의 세습문제등을 비판해 온 충청리뷰는 몇 년째 홍보광고를 못 받고 있다. 청주대가 4년 연속 정부재정지원 제한대학에 선정돼 현재 극도의 위기를 맞고 있는 이면엔 이러한 부끄러운 민낯이 숨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측의 정상화 목소리는 허구로만 들린다.
 

원론적으로 평가하면 이재경 기자의 성과는 저널리즘의 본질 추구에 있어 일종의 전범(典範)이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는 언론의 가장 큰 소임인 환경감시, 그 것도 권력견제를 위해 1년동안 외롭게 투쟁해 왔다. 요즘은 국정농단 특종으로 언론역할의 성공사례를 이룬 손석희의 JTBC에 이어 KBS와 MBC까지 다시 정상화에 돌입함으로써 탐사보도가 전성기를 이루고 있지만 사실 특정인을 상대로 비리의혹 기사를 연속해서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가 계속 부인하는 상황에서 기자가 같은 내용을 계속 공론화하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만약 이재경 기자가 조금이라도 책잡힐만한 내용을 기사화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상대로부터 지금보다도 더한 보복조치가 따랐을 게 뻔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팩트(사실)추적에 천착하며 상대의 반론 보장에도 소홀함이 없었던 것은 단순히 취재력을 뛰어넘는 그 이상의 근성을 엿보게 한다.

아닌게 아니라 부정이나 비리를 고발하는 기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상대로부터 가해지는 법적인 쟁송이다. 비판언론이 공통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로, 마구잡이로 제기되는 소송에서 설령 언론이 이기더라도 그 심적·물적 피해는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결국 언론활동의 위축현상, 심한 경우 기자가 자신이 쓰는 기사를 스스로 검열하는 역기능마저 빚어지고 이를 힘을 가진 정치인들이 악용할 경우 언론의 대처는 더욱 힘들게 된다. 하지만 법에 기대어 자신들의 치부를 숨기려는 이같은 비겁한 행위는 언젠가는 되레 응징을 당한다는 게 언론계의 또 다른 통설이다.

법적인 쟁송에서 비판언론을 특히 옥죄는 것은 사실을 기사화하거나 얘기할 때조차도 적용되는 명예훼손이다. 현행 관련법은 사실보도라고 하더라도 상대에 대한 고의성이 인정된다면 명예훼손으로 처벌될 수 있다. #미투 폭로 피해자가 역으로 가해자로부터 명예훼손 피소로 되치기를 당하는 최근의 몇몇 사례와 유사한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난 5일 국내 법률가 330명이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의 폐지를 촉구하는 선언을 했고 현재 국회에도 민주당 금태섭 유승희 의원 등이 발의한 사실적시명예훼손 폐기법안이 계류돼 있지만 사실적시명예훼손의 가장 수혜자격인 국회의원들의 어깃장으로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끝내 폐지법률안이 무산된다면 언론은 앞으로도 비리 공무원이나 비리 기업인, 비리 정치인들의 기사에서는 쉽게 실명을 밝히지 못할뿐더러 연속보도의 상황에선 자칫 ‘의도성이 있다’는 음해로 언제든지 명예훼손죄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지난 1960년 설리번 사건을 계기로 사실보도는커녕 허위사실 보도조차도, 취재 대상이 된 공인이 기자의 악의적인 의도를 스스로 입증하지 못한다면 무죄로 인정하는 미국의 언론문화를 다시 한번 생각케 한다.

어쨌든 이재경 기자는 저널리즘의 본질을 지역언론계에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고, 아울러 사주의 방패막이가 되거나 오너의 사회적 출세와 처세에만 이용당하는 가짜 언론에 대해 과연 언론의 신념과 정신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그 실체로써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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