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주희 양 몸에 난 상처들

3월 29일은 천주교에서 가장 큰 행사로 꼽힌다는 성유축성미사날이다. 파스카 성삼일을 성대하게 시작하는 날이자 사제의 날이기도 하다. 카톨릭 신자라면 누구라도 기쁘고 감사한 날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날 청주시 내덕동주교좌성당 입구에서는 때 아닌 피켓시위와 삭발식이 열렸다. 바로 ‘충주성심맹아원 김주희 양 의문사 사건 진상규명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원회)’가 고 김주희 양 의문사 사건에 대한 청주교구 회개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삭발식 및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이날 김주희 양 부모, 대책위원회 김은순, 안기원 집행위원 등 무려 4명이나 삭발을 했다.

삭발식에 앞서 김은순 집행위원은 “불의한 교회권력에 저항하며 마지막으로 교회양심에 호소하는 마음으로 삭발을 한다. 삭발이라도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밝혔다.

또 ‘천주교청주교구 장봉훈 가브리엘 주교님께 올리는 호소문 편지’를 통해 “세상의 도덕적, 윤리적 잣대마저 감지하지 못하고 세상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교회는 스스로 말씀의 감옥에 갇혀 교회가 나아갈 길을 잃을 것이다. 늦었지만 용기를 내시어 교구장으로서 사망사건의 책임을 통감하시고 부모님께 진정성 있는 사죄와 화해를 청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이날 삭발식을 지켜보던 관계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비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도대체 2012년 11월 8일 김주희 양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김주희 양 부모를 비롯해 김은순, 안기원 씨는 왜 삭발까지 단행했어야 했던 걸까?

사건은 2012년 11월 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1살, 시각장애 1급, 뇌병변 4급의 장애아였던 김주희 양은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야간당직 교사 강 씨에 의하면 새벽 1시 19분 경 충주성심맹아원 기숙사 진실방에서 김주희 양이 자다가 깨어 문을 두드리자 진정시키기 위해 동요를 틀어주고 주희양으로 하여금 책상 앞에 있는 일반 의자에 앉게 했다. 그 뒤 옆방에 가서 잠을 자고 알람소리에 깨어 새벽 5시 50분 경 진실방에 와보니 주희 양이 무릎을 꿇고 앉은 상태에서 오른쪽 팔걸이와 등받이 사이에 목이 낀 자세로 발견됐다.

2014년 1월 27일 유가족은 강 씨 외 원장 수녀포함 4명을 재정신청 접수했고 그해 7월 18일 강 씨는 기소됐지만 나머지 4명은 기각됐다. 2015년 4월 17일 피고인 강 씨는 업무상과실치사로 금고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나 강 씨는 항소했고 2016년 4월 15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다시 2016년 5월 7일 대법원 상고 접수했고 마침내 2017년 11월 9일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은 없다’는 것으로 결론이 난 셈이다.

하지만 2017년 8월 12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 - 진실방의 감취진 진실, 열한 살 주희의 마지막 4시간’에서는 몇 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김주희 양 몸에 수많은 상처와 상흔이 남은 점, 아동이 사망했음에도 사망현장을 보존하지 않고 방을 깨끗이 치워 증거를 없앤 점, 사망 3~4시간이 지나서야 119를 부르고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아 유가족의 강력한 항의로 사망 12시간이 지나서야 경찰에 신고를 한 점, 경찰이 사망원인을 수차례 변경한 점, 그리고 수사의 공정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김은순 집행위원은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며 “누가 봐도 주희 몸의 상처와 상흔들은 아동학대로 인한 상처임을 부인할 사람이 없었음에도 이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고 전했다.

김 집행위원은 “신앙인으로 사죄하는 마음에 1인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교회 내부에서는 쉬쉬하며 그냥 모른 체 하고 기도만 하라고 나무라는 사람만 있었다. 교회의 치부는 드러내면 안 된다는 인식이 그들 마음 안에 단단히 뿌리내려져 있다. 소스라치게 놀랐고 두려웠다.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대하는 사제들과 신자들의 태도가 두렵다. 이번에 연 기자회견과 삭발식은 억울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 마지막으로 호소하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지금이라도 대책위와 면담을 간곡히 요청한다”고 주장했다.

삭발식이 끝난 10시 30분. 성당에서는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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