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82곳에 참전기념탑 설립…기념비엔 “민족의 긍지 세계만방에 떨쳐”
‘한국군 증오비’는 3곳 …“하늘에 가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세계평화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자유의 십자군으로 월남에 참전되어 국가의 위상을 드높이고... 숭고한 뜻을 영원히 기리기 위하여 탑을 세웁니다." ”(청주시 북일면 월남찬전기념탑 건립 취지문)

 

충청북도 청주시 오창읍 구룡리에 세워진 월남참전기념탑 전경

 

"하늘에 가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한국군들은 이 작은 땅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저질렀다. 수천 명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가옥과 무덤과 마을들을 깨끗이 불태웠다" (베트남 중부 꽝응아이성 빈호아사 입구에 세워진 한국군 증오비)

푸옌성의 성도인 뚜이호아시(市)에서 화히엡남현(縣)에 세워진 한국군증오비(사진 충북인뉴스DB)

“아가야 이 말을 기억하거라/ 적들이 우리를 폭탄 구덩이에/ 몰아넣고 모두 쏘아죽였단다/ 아가야 이 말을 꼭 기억하거라.”(베트남 빈호아에 전래되고 있는 자장가)

"우리 민족의 긍지를 세계 만방에 떨치고 가신 전우들의 넋"(월남참전기념탑 비문)

똑 같은 역사의 현장에 공존했지만 바라보는 시각은 끝 모를 대척점에 서 있었다. 어느 한곳엔 증오비가 세워졌고 다른 곳에선 참전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건립됐다.

본보가 국가보훈처를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를 한 결과 현재 우리나라에는 총 82곳이 베트남전쟁 관련 현충시설로 지정관리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시설들은 ‘월남 참전기념탑’, ‘참전유공자비’, ‘월남참전선양비’의 명칭의 띠고 있다. 반면 베트남에는 푸엔성 뚜이오아시(市) 화히엡남현(縣)과 베트남 꽝응아이성 등 3곳에 ‘한국인증오비’가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3일 베트남을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과 베트남이 모범적인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가고 있는 가운데 우리 마음에 남아있는 양국 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참전과 그 과정에서 빚어진 민간인 학살 등의 문제에 대해 한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유감의 뜻을 밝힌 것이다.

 

월남참전기념탑, 베트남국민들이 안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베트남 쩐 다이 꽝 베트남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1992년 수교 이래 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경이로운 성장을 거뒀다"며 "특히, 2009년 이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심화·발전시켜 오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양국 간 교역액은 작년 한 해만 40% 이상 증가해 640억 달러에 달했고, 한국은 베트남의 2대 교역국이자 최대투자국, 베트남은 한국의 4대 교역국이 됐다"며 "2020년까지 양국 간 교역 1000억 달러 목표는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며 내년 중 베트남이 우리의 3대 교역국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처럼 양국은 아픈 과거를 딛고 경제적으로 뗄 수 없는 관계가 됐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베트남 전쟁으로 빚어진 서로의 깊은 상처와 앙금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것이 바로 ‘월남참전기념탑’과 ‘한국인 증오비’다.

본보가 국가보훈처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재 전국 82곳의 베트남전쟁 관련 시설이 현충시설로 지정돼 관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 경남지역이 17곳으로 가장 많고 경기 16곳, 전북 10곳, 충북 9곳에 관련 시설이 설치됐다. 이어 강원 8곳, 경북 7곳, 전남 6곳, 충남 4곳, 제주 2곳, 서울과 대구, 인천등에 각 1곳의 시설이 건립돼 있다.

이들 시설물들은 ‘참전기념탑’, ‘충혼탑’, ‘선양비’ 등 명칭을 달리하지만 대부분 기념탑의 형식을 띠었고 건립취지문과 참전용사의 명단을 새겨놓았다.

시설을 건립하는데 들어간 비용은 대부분 국비와 도‧시비등 정부예산이 사용됐다.

청주시 송절동 솔밭공원에 설립된 월남참전기념탑 건립취지문

건립취지문의 내용도 대부분 비슷했다.

충북 청주시 북일면에 세워진 월남참전기념탑 건립 취지문에는 “여기 세계평화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자유의 십자군으로 이역만리 월남에 참전하여 국가의 위상을 드높이고 경제발전의 초석이 된 우리 젊은이들의 숭고한 뜻을 영원히 기리기 위하여 탑을 세웁니다.

지난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열하의 나라 월남땅에서 백전불굴의 투혼을 불태우며 우리민족의 용맹성과 긍지를 세계만방에 떨친 이 지역출신 전우들의 큰 듯을 한데모아 우리 다함께 머리숙여 추인하려 합니다.“라고 되어 있다.

청주시 송절동에 세워진 기념탑도 일부 문구만 첨삭됐을 뿐 “자유의 십자군”, “우리민족의 긍지를 세계 만방에 떨치고” 등 대부분의 내용이 비슷했다.

청주시에서 기념탑 설립 추진위원장을 맡았던 모 인사는 과거 “기념탑은 베트남 참전유공자들에게는 전쟁 무용담을 나눌 수 있는 만남의 장소”라며 “베트남 참전유공자의 업적을 영원히 기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참전기념탑은 82곳, 한국인증오비는 3곳에 불과해

 

베트남 국민들은 15년에 걸친 미국과의 전쟁이 끝나고 베트남 사람들은 열사비와 박물관, 증오비를 세웠다고 한다.

열사비는 말 그대로 전쟁영웅들을 기리는 비석이다. 성(省, 한국의 道와 같은 행정단위)마다 지었다는 박물관은 전쟁의 증거를 모아놓은 시설이다.

증오비는 민간차원에서 양민학살이 일어난 마을마다 세웠다는데 베트남 사람들은 이를 ‘한국군 증오비'라고 부른다.

한국군 증오비에는 ‘비아캄토우’라는 문자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사진 충북인뉴스DB)

 미국과 베트남이 벌인 전쟁에 우리는 참전했을 뿐인데 왜 한국군 증오비란 말인가.

설명은 이렇다. “미국은 전투기가 없는 베트남을 상대로 공중전을 벌였다. 융단폭격이란 말도 베트남전에서 나왔다. 유엔이 사용을 금지한 네이팜탄이나 밀림을 사흘 만에 말려버리는 고엽제 폭탄을 융단을 깔 듯 투하했다. 그 이후에 마을로 들어간 것은 유일하게 전투병을 파견한 한국이었다.”

그렇지만 베트남에 남아있는 ‘한국인증오비’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한국에 82곳의 참전기념탑이 세워졌고 앞으로도 추가로 세워질 예정인 반면에 베트남에 세워진 한국군증오비는 3곳에 불과했다.

지난 해 한‧베평화재단과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가 주최한 '베트남 평화기행' 참가단에 따르면 현재 베트남에 남아있는 한국군증오비는 총 3곳이다.

이들 시설들은 ‘월남 참전기념탑’, ‘참전유공자비’, ‘월남참전선양비’의 명칭의 띠고 있다. 반면 베트남에는 푸엔성 뚜이오아시(市) 화히엡남현(縣)과 베트남 꽝응아이성 등 3곳에 ‘한국인증오비’가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새로운 뗄래야 뗄 수 없는 경제교역국으로 자리잡은 한국과 베트남. 증오비와 참전기념탑에 새겨진 비문의 거리감을 어떻게 좁힐지 풀어야할 숙제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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