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masculi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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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masculi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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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15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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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Oh masculinity!’ 미투 운동을 놓고 대담프로그램을 다루던 한 외신에 등장한 자막이다.

사실 남성성 상실을 우려하는 여론은 이 운동의 초장부터 있었다. 남녀라는 이성의 상대적 관계에서 미투는 결국 필연적으로 남자다움의 위축현상을 초래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면서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인간창조의 시원(始原)까지 거론, 여자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남자의 성정(性情)을 들먹이며 미투의 릴레이를 경계했다.

이 것이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미투의 후유증 내지 역기능 쯤으로 포장되어 회자된다. 조민기의 자살과 안희정의 몰락이 여기에 불을 지핀 측면도 있다. 잘 나가던 유명 배우가 미투 한방에 속절없이 스러지고 한 나라의 대통령을 꿈꾸던 정치인이 순식간 무너지는 현실은 단순히 동정론을 넘어 문화적 충격으로 받아들여질 만하다. 남자들이 사석에서 제기하는 볼멘소리를 듣다 보면 미투에 대한 남자들의 현실인식은 여전히 여성과는 괴리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를 실증적으로 드러낸 것이 각종 종편방송에서 투박하면서도 직설적인 언변으로 주목을 받는 차명진 전 국회의원의 발언이다. 그는 “성 상품화와 강간, 권력에 의한 성폭력은 구분해야 한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성 상품화나 강간이 아니다. 인간의 유전자를 보면 남자, 수컷은 많은 곳에 씨를 심으려 하는 본능이 있다. 이는 진화론에 의해 입증된 것이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투로 폭로된 사례들은 하나같이 성의 상품화와 강간, 권력에 의한 성폭력에 불과하다. 수컷의 본능과는 거리가 멀다. 가해자들의 행동양태는 수컷이라는 유전자의 본능적 발로가 아닌 암컷에 대해 비교우위(?)를 차지하는 수컷의 신체·물리적 힘과 이를 바탕으로 그동안 수컷들이 누려왔던 기형적 권력에 의한 야만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차명진은 남자다움(masculinity)과 남자우위(masculism)를 착각해서 얼치기 진단을 내렸다.

이번 미투운동에 대해 사람들이 잘못 인식하는 것이 있다. 이를 성(性)문제로 치부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생물학적 의미의 성(sex)과 사회적 의미로서의 성(gender)이라는 개괄적인 현상부여를 통해 궁극적으론 미투를 남녀 간 상관관계로 한정지으려 한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투는 성이나 젠더 차원의 담론이 아니다. 가깝게는 사회 권력관계의 일탈과 왜곡의 문제이고 멀게는 ‘인간’이 만들고 오랫동안 향유해 온 그릇된 문명에 대한 대 반란이다. 세계 곳곳, 사회 곳곳에서 이 운동이 퍼져나가는 것에 귀착해 인류사의 거대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식의 역사성 부여까지는 부담스럽다 하더라도 미투는 분명 이제껏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신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1893년 뉴질랜드에서 세계 최초의 여성 참정권이 인정된 후 1920년 미국, 1928면 영국, 1944년 프랑스, 1948년 대한민국이 이를 뒤따르면서 여성에 대한 ‘형식의 평등’을 이루어냈다면 다시 한 세기만에 나타난 미투는 여성을 완벽한 인격과 권리의 주체로서 인정하는 ‘내용의 평등’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의 페미니즘이 여성의 권리회복과 남녀평등이라는 상대적 가치에 방점을 뒀지만 미투는 이를 뛰어넘는 여성인권의 절대적 독립과 존중을 보장케 한다는 것이다.

바람둥이 남편에 속아 가정을 이뤘다가 끝내는 남편과 아들한테도 버림받아 기구한 삶을 살았으면서도 “힘든 현실이었지만 이를 잘 이겨내면서 그럭저럭 잘 살았다”고 자위하며 생을 마감하는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이 읽히는 시대는 지났다. 바로 미투가 이를 전 세계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처절한 외침으로 계속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정치의 민주화는 이뤘을망정 삶의 민주화는 아직도 요원함을 미투운동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남자다움(masculinity)은 존중돼야 한다. 일상의 삶, 그리고 문명의 진화과정에서도 남자의 성정(性情)과 남자만의 물리적 힘은 언제든지 필요하고 소중했다. 문제는 이 것들이 왜곡돼 발현되고 결국 그 것이 관행과 관습이라는 매너리즘으로 무장된 채 오랜 역사를 통해 여성들을 옥죄고 고통스럽게 한 데에 있다.

현재 진실을 다투는 것 외에 최근 미투로 폭로된 사례들을 보면 그 가해자들에 대해서는 “참 지저분한 놈들”이라는 욕이 절로 나온다. 그런 식으로 여성을 대하며 사회적 지위를 누렸다면 미투가 아니라 당장 주먹으로 응징한다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들의 비열한 여성관은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조차 거추장스럽게 한다.

서지현 검사가 처음 미투를 선언할 때 많은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빙산의 일각이다. 사회 곳 곳에 만연해 있고 정작 진짜 센 것은 숨어 있다.” 그 예측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미 드러난 것만 보더라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미투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하나도 없다. 깊숙이 숨어있던 센 것들이 여기저기 불거지면서 여의도 같은 경우는 아예 얼어붙었다는 소문마저 들린다. 안희정과 정봉주가 결정타를 날렸다고 한다.

좋은 징조다. 국민들이 정치개혁을 그렇게 외쳤건만 콧방귀도 안 뀌던 그들이었는데 미투 한방에 소스라치고 있는 것이다. 더 세고 더 큰 것이 터져 나와 이 참에 정치판도 근본적으로 물갈이를 했으면 한다.

하지만 한가지 우려되는 게 있다. 미투가 꼬리를 물면서 이를 의식한 법률이나 제도 그리고 각종 단체와 공적 기구 등의 신설이 중구난방으로 여론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현상을 이처럼 기계적 잣대로만 재단하고 규제하려 한다면 문제는 오히려 더 꼬이게 된다. 감시와 견제, 억압과 통제로만 체제를 다스리려다 끝내는 파산하고 마는 국가들의 몰락이 좋은 예다. 미투는 인간의 인식과 의식, 문화, 가치의 문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투는 아직 시작일 뿐인데 벌써 피로증 내지 반 사회성을 얘기하는 여론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는 건 심히 우려스럽다. 구식 문명에 대한 남성들의 ‘연대의식’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시사한다.

때문에 미투는 더 강하게 지속되어야 한다. 국민들, 특히 여성들에게 진정한 ‘masculinity’ 를 곧추세우기 위해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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