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남 「늦봄에」 전문

고향집 뜰에
불두화 피었다.
고개 조금 기울인 채 반가사유 하신다.

백발의 어머니
가만가만 여든다섯 해의 삶을 쓰다듬는 늦봄
회한마저도 검불처럼 가벼워
눈부신 고요 속에
남은 그리움만 하얗게 바래
불두화 피었다
고개 기울인 채 반가사유 하신다.

─ 한상남 「늦봄에」 전문(계간 <딩하돌하> 2010년 가을호에서)

그림 = 박경수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 ‘샘터’에서 간행한 책의 제목인데, 그 속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천칭의 한쪽 편에 세계를 실어놓고 다른 한쪽 편에 어머니를 실어놓는다면 세계의 편이 훨씬 가벼울 것이다.’ 기실, 신이나 우주 같은 거대한 중량을 지닌 단어와 맞먹을 수 있는 말은 어머니 밖에는 없겠지요.

 

미국 뉴욕항의 리버티섬에 서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조각한 바르토르디는 자기 어머니로부터 영감을 얻어, 무려 20년 만에 이 거대한 동상을완성했다고 하지요. 인간 생명의 영원한 고향이며, 언제나 우리 삶에 뿌리가 되고 힘이 되는 사랑의 근원이신 어머니에 대한 찬양은 해도 해도끝이 없습니다.

서울에서 출판 일을 하고 있는 시인, 오후의 한때, 고요한 회고의 시간에 들지요, 이맘때쯤이면, 고향집 뜨락에 다소곳이 불두화가 핍니다. 평소 어머니의 자태를 닮아 고개 기울인 채 반가사유하는 모습 그대로, 오이 속같이 투명한 빛깔로 숭어리숭어리 핀 꽃은 여든다섯 해를 넘기신 어머니의 눈부신 자화상입니다. 멀리 있어 더욱 간절하게 마음이 가 머무는 곳, 어머니의 품속은 늘 그리움의 절정입니다.

소설가 공지영이 쓴 딸에게 바치는 서간문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에는 이런 구절이 있지요. ‘언젠가 어두운 모퉁이를 돌며 앞날이 캄캄하다고 느낄 때, 세상의 모든 문들이 네 앞에서만 셔터를 내리고 있다고 느껴질 때, 모두 지정된 좌석 표를 들고 있는데 너 혼자임시 대기자 줄에 서 있다고 느껴질 때, 언뜻 네가 보았던 모든 희망과 믿음이 실은 환영이 아니었나 의심될 때, 너의 어린 시절의 운동회 날을 생각해. 그때 목이 터져라 너를 부르고 있었던 엄마의 목소리를.’

살아가는 오늘이 힘들고 다가오는 내일이 두려울 때, 가슴으로부터 깊은 위로를 받고 싶을 때, 으레 입속으로 가만히 불러보는 이름, 어머니입니다. 누가 그랬지요, 평소에 갑자기 뜨거운 것에 닿아도, 깜짝 놀라도, 감탄할 때에도 저절로 나오는 말이 ‘엄마’인데, 우리가 자주 써먹는 만큼 자주 사용료를 내자고. 그것 참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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