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순원 「밤꽃」 전문

거리실 과수댁이
바람나서 집 나갔다는 소문
봄 내 술렁거리더니
산 어귀마다 밤꽃이 피어 피어

유월엔 신神의 손가락이 길기도 하지
밤나무 꽃술 사이마다 흩뿌린 꽃내
미농지빛 화관이 부러운 유월엔
맨살이 부풀어 돌부리도 일어서는 유월에는
돌아선 이 몸태나 훔쳐보고 말 일이지
사내 하나 맘에 걸려
손에 일이 안 잡히는
유월에는
밤나무 숲이나 실컷 쏘다니다
돌아올 것이지

─ 옥순원 「밤꽃」 전문(시집 『내 마음의 패스워드』에서)

 

그림 = 박경수

 

봄은 식물의 발정기입니다. 흩날리는 꽃가루와 꽃잎은 식물의 정자와 난자가 되고요. 봄만 되면 만상이 설레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바야흐로 발정기의 절정인 유월에, 불타는 욕망의 극단에서 피는 밤꽃은 지상 최대의 포르노지요. 손가락이 긴 남신이 흩뿌리는 꽃내와 미농지 빛 화관, 맨살이 부풀어 돌부리도 일어서는 유월의 몸태하며, 남정네에 정신이 팔려 손에 일이 안 잡히는 밤나무 숲에서의 몸부림은 또 어쩌란 말인가. D. H. 로렌스의 소설에 등장하는 채털리 부인이 목부의집을 향해 어둠 속을 질주하는 본능의 싱싱한 근력이 느껴집니다. 속박을 거절하는 저 발칙한 언어 구사, 내부에서 오랫동안 발효시킨 담대한 욕망의 토로. 그러나 그 언행은 결코 불미하거나 불인하지 않습니다.

수상한 향기로 가득한 밤꽃 그늘 아래서 본능이 설레지 않는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육신이 아니지요. 솔직 대범한 표현이 주는 쾌감, 시인의 건강하고 자유로운 상상력이 귀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시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이며 주체적인 장르지요. 그러므로 사유와 정서를 넘나드는 상상력의 공간 또한 보폭을 넓게 쓸수록 신선하고 발랄한 힘을 줍니다. 물 오른 녹음 사이로 신음처럼 들리는 욕망의 물소리가 시원한, 유월에 읽는 좋은 시입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