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지방자치 실시 이후 가장 강조되는 것 중에 하나가 ‘지역 정체성 확립’이다. 지방이 주인이 되는 자치행정을 하려면 우선 그 지역의 근본부터 제대로 세워야 한다는 당위성의 발로이다. 여기서 비롯된 것이 지역학(地域學)이다. 말 그대로 특정 지역의 지리, 역사, 인물, 문화 등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문제의 지역학이 또 한번 터닝 포인트를 맞고 있다. 지방분권을 향한 개헌 때문이다. 현재의 추세라면 그 시기만 남았지 헌법개정은 불가피하다. 정치권의 상충되는 이해관계에도 불구 이를 위한 로드맵은 착 착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 “이번 헌법개정은 지방분권을 위한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이렇듯 자치행정을 넘어 자치권력으로 가는 과정에서 새롭게 조명되는 것이 다름아닌 현재 광역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각 각의 지역학이다. 지역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이를 해당 주민들과 공유하지 못하면 자치권력은 사상누각이 된다는 우려에서 출발한다. 쉽게 생각해도 내가 나를 모르는 데 무엇을 다스리겠는가라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지역학의 체계적 연구는 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이후 지방자치 정착과 함께 각 시·도의 지역학 연구기관이 경쟁적으로 출범했고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이 1993년 서울시의 ‘서울학연구소’이다. 충북은 한참 뒤인 1999년 2월 24일 ‘충북학연구소’로 시작을 알렸다. 올해로 만 19년이 된 것이다.

최근 충북학연구소의 올해 첫 자문회의가 열려 연간 사업계획에 대한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한데 이 자리에서 나온 얘기는 하나같이 우려섞인 목소리였다. 충북학연구소의 현 위상과 향후 대응문제 때문이다.

충북학연구소는 현재 충북도 싱크탱크인 충북연구원의 산하 특별연구조직으로 편제돼 있다. 그러면서 예산에 있어서는 연구소장 급여만 충북연구원의 충북도 출연금으로 지원받고 나머지 인건비와 연간 사업비는 충북도 문화예술산업과의 보조금으로 충당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충북의 정신과 혼(魂)을 다루는 연구기관이 자체 예산편성권은 물론이고 운신의 폭조차 갖추지 못한 채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충북학연구소의 연간 운영비를 보면 그 난맥상을 더 실감나게 한다. 출범 첫 해 8500만원이던 예산은 그 후 매년 줄어들어 4500만원으로 떨어졌다가 지난해 추경포함 9400만원을 회복한 후 올해 1억3500여만원으로 편성됐다. 올 예산이 대폭(?) 늘어나기까지는 담당부서인 문화예술과의 노력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실상은 연구원 인건비를 빼면 연구소가 자체 운용할 수 있는 돈은 벼룩의 간 수준이다. 어지간한 공기업의 한 두명 급여액에 불과하다. 현재 충북학연구소는 소장과 전문연구원 2명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문제는 이 예산으로 충북과 관련된 지역학의 모든 것을 커버한다는 점이다. 올해 사업계획만 보더라도 연구소는 충북학회 창립을 비롯해 도민참여 충북학아카이브 구축, 신진 전문인력양성, 문화자원 발굴 및 문화콘텐츠개발 등 총 9개 아젠다의 사업을 벌이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상식적으로 이중 한 가지만 제대로 하려도 연간 운영비 1억3000만원을 다 들여야 할 판이다.
 

지난 19년간 충북학연구소가 이룬 업적은 일일이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고 그 성격과 규모도 방대하다. 연구·조사·학술· 대외사업을 통틀어 충북의 근본과 관련된 숱한 것들을 만들고 이끌어 왔다. 이를 한 두명이 주도해 외부 전문가들의 조력을 받아 완성했다는 것 자체가 경외로울 정도다.

지역학의 미래를 고민하는 것은 충북 뿐만이 아니다. 지역학 연구기관의 독립성을 곧추세우거나 예산과 인원을 늘려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연구기관을 광역자치단체장 직속으로 하기 위해 아예 조례를 제정한 곳도 있다. 제주 강원 등이 그렇다.

충북보다도 한참 늦은 2011년에 출범한 ‘제주학연구센터’는 올해를 기관독립의 원년으로 하기 위한 절차를 마무리하는 상황이다. 이 곳의 상근 인력은 충북의 세배인 6명이고 예산은 충북의 열배인 13억원이나 된다. 지역학의 연구와 발굴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를 도민들과 공유, 선양하면서 지역의 긍지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며 앞으로도 관련 사업을 발흥시킨다는 방침이다.

충북학의 방점도 여기에 찍혀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학문 차원의 정립을 넘어 이 것의 공유로 도민들에게 자존과 자긍심을 높여주고 이를 통해 지역발전과 미래를 향한 동력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하는 지방자치와 성공하는 지방분권은 바로 이로부터 출발한다. 이렇게 되려면 충북학연구소의 안정적 재정과 안전적 연구여건 조성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지역의 경쟁력을 오로지 숫자놀음에서만 찾으려 안달이다. 기업체를 유치하고 특정 시설을 끌어오거나 짓는 것으로만 자치행정의 성과를 가늠하려 한다. 이른바 소프트웨어는 무시하고 하드웨어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이같은 외적인 확장은 내적인 성숙이 전제되지 않는 한 언제든지 허수가 된다. 충북인들도 이제는 역사적 격변기마다 영호남이나 특히 ‘광주정신’을 부러워만 할 시기는 지났다. 이시종 지사의 영충호니 강호축이니 하는 것들도 힘을 받으려면 충북의 존재감부터 먼저 키워야 한다.

충북학연구소의 활성화나 기관독립을 위해 당장 시급한 것은 조례를 제정하는 일이다. 그동안 충북도와 충북도의회 모두 이에 관한 부분적인 얘기는 만들어냈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액션’을 보이지 못했다. 이를 감안한다면 지금 도지사를 하겠다며 출마한 이들이 선거공약으로 들고 나왔으면 한다.

눈만 뜨면 지방자치와 로컬시대, 지방분권을 외치지만 충북의 ‘뇌’를 뜯어고치겠다는 인력은 고작 2명 뿐이고 그들의 병원 운영비는 연간 1억3000만원에 불과하다. 이러고도 무슨 낯으로 충북을 책임지겠다며 표를 달라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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