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유명한 말을 설파한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는 ‘인간의 본성은 원래 사악하며 이기적인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가 1600년대였으니 성악설의 아버지 순자(荀子)가 살던 때와는 무려 1800여 년의 시차가 있으나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데는 시공을 초월해 의견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홉스는 아무런 사회적 제약이 없는 자연상태에서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보고 싸우다 결국은 모두 생존자체를 위협받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믿었습니다.

때문에 그대로 두면 동물적으로 물고 뜯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가 됨으로 천부인권을 강력한 군주에게 전면 양도하고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홉스의 ‘사회계약론’입니다.

나는 오늘 우리 사회의 끊임없는 분란을 보면서 이 나라야말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시대가 되어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회 갈등이 아무리 심하다 할지언정 무정부 상태도 아닌 데 이렇게 까지 갈등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울 수 있는가, 이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 세기 이념갈등으로 동족간 피 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르고도 그것도 모자라 지역 갈등, 노사 갈등, 빈부 갈등, 세대 갈등, 보혁 갈등으로 날이면 날마다 바람 잘 날이 없으니 이것이 곧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아니고 무엇인가 생각되기에 말입니다.

지금 사회 각분야에서 용암처럼 분출되는 갈등현상은 내전을 방불 하는 천하대란의 형국이 되어있습니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지난 8, 9월 두 달 동안 전국에서 벌어진 집회는 무려 2190건으로 시위에 참여한 사람이 40만 명이라고 합니다. 하루평균 6000여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선 셈입니다.

그럼에도 사회 갈등을 조정하고 치유해야 할 정치는 치유는커녕 거꾸로 사사건건 대립하고 반목하며 앞장 서 갈등을 부채질하고 재생산해 내고있으니 이 어찌 한심타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서울은 그렇다 치고 우리 청주는 어떻습니까. 우진교통 부도사태, 충청일보 폐업사태, 원흥이방죽 단식사태, 공무원노조사태, 시장 개 비유파문, 행정수도 책임론 등 각종 시비와 분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들의 절규를, 요구를 들어주고 풀어줘야 할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이게 ‘세계일류도시, 행복한 청주’는 아닐 터입니다.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 살고 이곳에 뼈를 묻을 사람으로서 통탄을 금치 못합니다.

물론 갈등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긴 합니다. 역사발전에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수반하고 그것이 동력이 되어 역사가 발전한다는 ‘비온 뒤 굳은 땅’이론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갈등이 도를 넘어 사회를 분열시키고 궁극적으로 나라조차 망하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은 병이 들면 죽고 사회가 병이 들면 나라가 망합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사회의 심각성을 모두 자각하고 병을 고치는 일에 나서야 하겠습니다. 가난과 질곡에서 겨우 겨우 일으켜 세운 나라를 이렇게 싸우다 망칠 수는 없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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