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현송월은 아리송한 미소만 남기고 북으로 돌아갔다. 이틀동안 악착같이 달라붙는 기자들에게 입 한번 뻥끗하지 않고서도 남한을 달궜다. ‘현송월 신드롬’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고 그녀의 외모만을 좇을 수 밖에 없었던 언론은 ‘패션 잡지’로 추락했다는 비아냥을 받았다. 북에서의 차관급이 남한에선 대통령급 예우를 받았다.

현송월의 행차(?)를 바라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헷갈리게도 당장의 올림픽이 아닌 그 이후를 더 떠올렸다. 자유한국당이 끊임없이 어깃장을 놓으며 여론화하려는 그 의도와 맥락을 같이한다. 그들의 논리대로 유엔제재로 코너에 몰린 북한이 올림픽을 이용해 도발과 평화의 이중전략을 구사하며 한·미를 이간시키고 끝내 핵무기를 완성한다면 이를 어쩌냐를 염려한 것이다.

많이 생각할 것도 없이 올림픽이 끝난 후 북한이 미사일 발사등 도발을 감행한다거나 이번 현송월 방문의 사례처럼 북한이 제멋대로 돌변해 우리에게 다시 뒷치기를 가한다면 문재인 정부는 그 정치적 부하를 감당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도 “북한의 평창참가만으로 끝난다면 앞으로 우리의 외교 안보에 큰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이미 이를 전제로 국민들에게 평창이 아닌 평양올림픽을 세뇌시키려 안간힘이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인가. 선거때마다 용공조작도 부족해 아예 북한에 돈까지 주며 휴전선에 총도발을 사주한 총풍세력의 후예들이다. 권력탈취와 표를 위해서라면 국가나 국민, 나발이고가 없었다. 바로 이 것이 그들이 그토록 집착하는 색깔론의 실체이다.

이같은 배신행위부터 속죄하는 게 오늘의 자유한국당이 먼저 할 일이다. 안 그러면 지방선거를 통해 보수의 재건을 꾀하겠다는 홍준표의 공언(公言)은 다시 허언(虛言)이 된다. 세계인의 축제가 되어야할 평창올림픽을 향한 그들의 저주는 곧바로 또 한번의 국가와 국민에 대한 씻을 수 없는 배신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사람들은 주군에 대한 측근들의 배신이라고 하지만 아니다. 오히려 주군인 MB가 측근들을 배신한 것의 후유증에 불과하다. 너무 탐욕했고 그러기에 측근들을 오로지 돈으로 다스리려 했으며 끝내는 세상까지 자기편의대로 재단하는 바람에 이제 와서 이른바 문고리들로부터도 버림을 받는 것이다. 이명박이라는 의사(擬似)대통령이 없었다면 박근혜라는 개념없는 대통령은 절대로 나오지 않았다.

때문에 적폐청산의 화룡점정은 MB 처벌이 될 것이다. 그의 죄는 단수한 적폐가 아니다. 사자방(4대강사업, 지원외교, 방위산업)과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을 통해 국기를 문란시키고 민주주의 체제를 훼손시킨 국가 최고 패악의 원흉인 것이다. 오죽하면 지금 시중에선 MB를 구속시키는 대신 박근혜를 석방시키라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범의(犯意)의 고의성만을 따진다면 유(有)개념의 MB가 무(無)개념의 박근혜보다 훨씬 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6월 지방선거의 도래는 곧 ‘배신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른 이합집산이 또 기승을 부릴 조짐이다. 이미 저기저기서 볼멘소리들이 쏟아지고 있다. 우선 자유한국당의 청주권 당협위원장 자리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내치는 형국으로 결정되다보니 말들이 많다. 박힌 돌의 입장에선 이보다 더한 배신도 없다. 일단 배신을 당하면 사람들은 선의가 아닌 정략적으로 행동하게 되고 이는 막상 선거에서도 당 득표의 큰 변수가 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선 현재 거론되는 광역단체장 후보와 관련된 배신론이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여서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현 정권에 대한 신의와, 더불어민주당의 당성(黨性)에 대한 특정 후보의 평소 처신이 논란이 되고 있다. 본격 선거전이 시작되면 이 문제는 어차피 도마위에 올려질 수밖에 없다. 만약 상대후보가 강하게 치고나온다거나 경쟁력있는 제3의 인물이 나타나게 되면 이 논란은 급상승의 폭발력을 가질 것이다. 명분을 중시하는 정치영역의 문제여서 그렇다.
 

사진=뉴시스

현송월의 방남은 반대측의 그 숱한 비난과 비아냥에도 불구 우리로선 같은 민족끼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단초로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또 북한이 우리를 배신한다면 현재로선 뾰족한 대안이 없다. 바람이 있다면 이번 교류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또 이를 근거해 북미간 대화까지 정상화되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현송월의 방남과 그 후속조치로 남한과 북한은 이제 서로 쓸 수 있는 카드를 거의 소진한 상황이다. 특히 전방위적 제재에 봉착한 북한은 과거처럼 막무가내식 도발이 어렵게 됐다. 그렇다면 답은 무엇인가? 평창올림픽이다.

스포츠는 역시 사람들에게 담백한 감성을 일으킨다. 자기계산적이고 늘 협잡과 기망이 판치는 정치와는 다른 것이다. 테니스 정현의 갑작스런 낭보는 모처럼 국민들을 한 껏 즐겁고 배부르게 했다. 그동안 메이저 대회에선 들러리나 방관자에 불과했던 우리 선수가 세계적인 스타를 누르고 승리했으니 그 자체로 쾌거가 아닐 수 없다. 누구는 한민족의 우수한 DNA를 비로소 세계인들에게 각인시켰다고도 했다.

스포츠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오로지 분명한 승부와 승복, 환호와 열정만 있을 뿐이다. 거기엔 상대를 속이는 계산이 따르지 않는다. 가식도 없다. 그래서 스포츠는 정치와 외교에도 앞선다고 한다. 비록 북한 참가와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이라는, 그 출발은 힘들게 이루어졌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 상황은 분명 달라진다. 반드시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할 것이다. 이 것이 스포츠의 정직함이고 우리는 이를 위해 지금껏 매달려 왔다.

1971년 미국와 중국의 핑퐁외교는 미국 탁구선수가 중국을 찾은 1년 후에야 비로소 구체적 성과를 냈다. 현송월의 아리송하고 묘한 미소가 우리에게도 이를 암시하는 신호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한반도의 달라지는 모습, 통일을 향한 우리민족의 대장정이 평창에서 시작되기를 바란다.

더 이상 국민들은 문재인의 얄팍한 ‘쇼통’을 보고싶지 않다. 더 이상 국민들은 홍준표의 천박한 정치를 보고싶지 않다. 이제 국민들은 더 이상, 정말이지 더 이상 배신을 당하기가 싫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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