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에 불 떨어진 충북도…정작 다급해야 할 청주시는 뒷짐

충북도 경제파트에는 다급한 지상명령이 내려져 있다. 무슨 일이 있더라고 LG전자 GSM 단말기 사업부문의 평택행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LG전자 GSM 단말기 사업부문이 청주를 떠나는 상황을 그냥 지켜만 볼 경우 그동안 화려한 수식어들로 치장돼 온 충북도와 청주시의 경제정책(산업육성정책)은 지역 산업의 운명과 함께 결정적 치명타를 입게 될 것은 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래서 충북도 경제파트 내부에는 비상한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LG전자 GSM 단말기 사업부문의 유출은 막아야 한다”는, 스스로에게 부여한 지상명령을 떠안은 상황에서 비장감마저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청주상공회의소 등 민간부문에서 신행정수도 무산과 버금가는 절박한 현안으로 떠오른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데 대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책임 방기”라는 비판론이 나오고 있다. 현안의 무게와 파장,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는 언론도 마찬가지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충북도는 “이럴 땐 언론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데…”라며 야속하다는 반응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압권은 청주시의 무사태평한 무감각·지리멸렬한 무관심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 가장 밀접하고 큰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청주시가 정작 침묵하는 상황이 말문을 막히게 한다. 나몰라라 하는 청주시의 태도는 충북도의 처지를 더욱 곤궁하고 서운하게 만들고 있다. 충북도 정정순 경제통상국장은 “이 문제가 충북도만 홀로 뒤집어 쓴 채 해결해야 할 성격의 사안이냐”고 노골적으로 청주시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토로할 정도다.

   
▲ 충북 최대 사업부문이 빠져나간다는 데도 충북도와 청주시는 속수무책이다. / 육성준 기자
“기존기업 홀대하며 외국·타지 업체에만 구애”

하지만 충북도가 원죄론을 비켜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청주산업단지의 정서만을 알아봐도 충북도와 청주시에 대한 시각이 어떻게 형성돼 있는 지 확연하다.

#1. “행정기관에서 숱한 감사장과 감사패를 남발할 정도로 기관단체와 개인에게 상장을 전달하면서도 수천억원대도 아니고 수조원대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투자를 오창에 쏟아붓는 LG화학(오창테크노파크 공장)에게 감사패 한번 전달한 적이 있습니까? 반면 충북도는 모든 산업정책의 최우선순위를 오창과 오송에 ‘올 인’하는 단선적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고작 수십 수백억원대의 투자에 나서는 외국기업에게는 수십년간 땅을 무상으로 임대해주고 세금도 획기적으로 감면해주는 정책을 쓰면서도 정작 지역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해 온 기존 기업들에 대해선 별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은 게 사실 아닙니까.”

#2. “LG화학이 정보전자소재 부문 생산공장을 오창에 짓기로 결정하기 전에 청주산업단지 내 삼익세라믹 부지에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삼익세라믹 부지를 소유하고 있는 채권단이 까다롭고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바람에 LG측과 협상이 진행되지 않아 결국 무산됐습니다. 이 바람에 오창투자로 선회하게 된 것이지만, 그때 청주시와 충북도가 대규모 투자유치 차원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 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충북도의 희망대로(?) 오창투자를 이끌어 낸 셈은 됐지만 청주산업단지는 신규투자를 받아들일 호기를 놓친 꼴이 됐습니다.”(청주산단 관계자)

#3. “충북도와 청주시가 그동안 청주산단 입주기업과 종업원들을 위해 배려해 준 게 뭡니까. 거의 없어요. 시내버스 노선조차 제대로 없어요. 도시가 커지면서 이젠 도심에 자리하게 된 청주산업단지의 처지가 이렇습니다. 매일 아침 회사 통근버스 아니면 자가용을 이용하면 된다지만 행정기관의 청주산단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구체적 사례 아닙니까. 충북도 등이 오창에 쏟는 노력의 10분의 1이라도 청주산업단지 기업들에게 쏟았더라면 상황은 훨씬 달라졌을 겁니다.”(LG전자 청주사업장 노조 관계자의 말)

충북도는 “나중이라면 몰라도 지금 책임론을 들먹이는 것은 우선순위를 벗어난 한가한 공론에 불과한 일”이라며 “당장 우리에게 시급한 상황인식은 어떻게 든 LG전자 GSM 부문을 붙잡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조차 조용한 데 어떻게 해야 하나”
충북도의 깊어만 가는 막막한 고민 , “좋은 방법 일러달라” 부탁할 정도로 초조해 있어

“비리나 범법행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기업이 자구적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내린 결정에 대해 충북도가 마치 발목이나 잡듯 막무가내로 시비를 걸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LG전자 청주사업장내 GSM 단말기 사업부문의 유출이 가져 올 악영향이 막심할 것이라는 분명한 사실을 손에 쥐고도 속수무책인 상황이 정말 답답합니다. 심지어 해당 회사 노조도 사업이전에 대해 전폭적인 동의를 한 채 조용한 데 충북도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충북도가 바짝 몸 달았다. 도는 LG전자가 단말기 사업부문을 평택에 올인키로 하면 근거로 내세운 논리에 대해 다각도로 분석한 결과 LG의 주장을 뒤집을 만한 논거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더더욱 무작정 가지 말라고 생떼 쓰듯 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고민만 깊어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불감청 고소원의 심정입니다. 오죽하면 언론에서 ‘충북도는 뭐하는 것이냐’며 비난하더라도 LG전자 GSM 단말기 사업부문의 역외유출을 막아야 한다고 압박해주길 바랄 정도겠습니까.”

충북도는 LG전자에게 그간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게 뭐 있겠는가. 땅이냐. 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기까지 했다고 한다. LG전자가 떠나지 않는다면 충북도가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도와줄 의지가 있음을 피력하며 붙들고 늘어진 것. 하지만 LG측에서 난감해 하며 기업입장을 이해해 달라고 오히려 부탁하는 형국인 것으로 전해졌다.

충북도 고위관계자는 충북출신 강유식 LG 그룹 구조조정본부장(부회장)에게 부탁했지만 “ 그룹차원에서 결정한 사안이 아닐뿐더러 그룹에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답변만 얻었다고 했다.

그러나 LG전자 출신으로 중소기업체를 운영하는 Y 사장은 “경기도와 평택시 등 타 지방자치단체에서 기업체 유치를 위해 뛰는 것을 보면 놀라울 정도”라며 “결국 충북도가 지역 내 최대 사업장을 빼앗긴 꼴 아니냐”고 말했다. 또 다른 경제인은 “행정수도 무산과 수도권 공장 총량제 완화, 게다가 중국으로 속속 빠져나가는 기업들로 인해 충북의 경제블록이 주변의 거대한 산업 블랙홀로 흡수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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