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최근 방송사들이 경쟁적으로 내 보내는 박종철, 이한열과 87년 6월항쟁에 대한 특집 내지 기획프로그램을 보고 있자니 참으로 묘한 생각들이 교차한다. 방송이 각종 시국사건을 요즘처럼 과감하게 다룬 적이 있었나 싶어 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도 그들이 또 언제 표변할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돌연 갑갑해지는 것이다. 그동안의 학습효과 때문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방송만큼 권력에 비열하고 비굴한 것도 없었다. 너무 자주 변절했다.

남들은 가상화폐 광풍이라고 하지만 나는 좀 생각이 다르다. 언론의 광풍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미국은 트럼프와 언론이 하루도 쉬지 않고 전쟁을 벌이는 바람에 CNN, 뉴욕타임즈 등 세계 유수의 매체들이 언론과 권력의 관계를 연일 헤집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언론문제가 요즘처럼 자주 전국적인 이슈로 부각된 적이 없다.

국정농단을 통한 JTBC의 성공사례, 또 최승호 피디의 금의환향이 몰고 온 사회적 파장, 여기에다 언론을 놓고 벌이는 정치권의 아전인수식 아귀다툼 등이 동시다발로 겹치면서 기실 한국 언론은 지금 엄청난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MBC는 도울 김용옥을 이달 말부터 2주간 파일럿 토론프로그램 진행자로 기용한다고 예고했다. 요즘 전성기를 구가하는 폭로성 탐사보도 경쟁에 이은 이슈 파이팅(issue fighting· 쟁점의 여론화)을 선점하겠다는 의도다. 이렇게 되면 간단히 말해 진보는 언론이 알아서 적폐를 드러낸다고 좋아할테고 보수는 세상이 어지럽다며 예의 국민피로증을 들고 나올 수 있다. 어쨌든 메이저 언론사들은 당분간 저널리즘의 재구축이라는 일종의 ‘명분(名分) 전쟁’을 벌일지도 모른다.

MBC와 KBS의 정상화와 이를 본보기로 하는 여타 방송사들의 몸부림을 보면서 또 하나 생뚱맞은 생각을 해 본다. 왜 신문은 무풍지대인가. 적폐로 말한다면 전두환의 쿠데타에 대해 ‘황강의 기적’이라는 소설을 쓴 신문은 반역사의 원죄(原罪)에 있어 방송보다도 더 끈질기고 집요했다. 지금도 그 유산은 수구 신문들에 의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요즘의 언론 광풍은 이런 것들을 지엽적인 문제로 치부하게 할 정도로 언론의 원초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그 것도 미국과 한국에서 거의 동시에 비슷한 팩트로 불거진다는 점에서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롭다. 우선, 입만 열었다 하면 그 즉시 언론이 승냥이떼처럼 달려드는 트럼프가 그렇다.

“the fake news media is not my enemy, it is the enemy of the american people!”. 얼마전 트럼프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로, 직역하면 가짜 뉴스를 보도하는 언론은 나의 적이 아니라 미국인의 적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그가 말하는 가짜 뉴스는 허위 기사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비판기사라는 점이다. 트럼프가 손가락질을 해대는 CNN과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언론을 적으로까지 단정한 트럼프에 대해 역으로 “독재자들의 전형적인 행태”라고 비난한다. 워터게이트 특종으로 닉슨을 하야시킨 칼 번스타인 기자마저 “닉슨도 언론에 반감이 컸지만 트럼프의 비뚤어진 언론인식은 그 심각성이 더하다”고 꼬집었다. 일부 과격한 언론학자들은 트럼프가 “미쳤다”고까지 한다. 막말꾼인 자기 편을 안 들어준다고 해서 언론을 죽여야할 적으로 매도하는 트럼프의 고약한 성정(性情)머리에 역시 막말수준의 반격을 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더 헷갈리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3일 있은 MB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일행의 신년 인사에서다. 비록 임의로운 자리였다지만 이날 이들의 언론관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좌파정권이 들어서니 SBS도 뺏겼다....(이 정권이) 아예 방송을 빼앗는다”<홍준표> “조중동은 잘 지키고 있지 않느냐”<이동관 MB정권 홍보수석> 이들의 논리는 결국 언론을 정권의 소유개념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더 큰 사단은 바로 엊그제 홍준표의 입으로부터 불거졌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홍보전략이 괴벨스의 선전술과 닮았다고 일갈했다. 하여 이른바 괴벨스 어록으로 전해지는 언론관련 나치선전술을 한번 들여다 봤다. 대략 이런 것들이다. “언론은 권력의 손안에 있는 피아노가 돼야 한다”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엔 부정하고 그 다음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엔 믿게 된다” “선동은 한 문장만으로도 가능하지만 그 것을 반박하려면 수십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것을 반박하려 할 때는 사람들은 이미 선동되었다”

한데 공교롭게도(?) 이를 가만히 음미하다보면 지난 이명박근혜 정권이 먼저 떠오른다. 바로 그들이 언론을 손안에 든 피아노처럼 가지고 놀려다가 뒷치기를 당하고 있다. 자원외교와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을 놓고 그들은 뻔한 거짓말을 너무도 많이 하며 국민을 기망했다.

또 홍준표로 대표되는 야당 정치인들은 기회만 왔다하면 선동적인 말로 정치판을 흔들려고 한다. 이번 발언을 비롯해 주막집 주모의 낮술, 영부인의 옷값만 수억원, 대통령이 질질운다 등이 이런 것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결과적으로 이런 세 가지 괴벨스 전술을 즐겨 사용하다가 국민들로부터 응징을 받았고 지금도 많은 수가 교도소를 떠올리며 밤잠을 설치고 있다.

역사적으로 독재자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언론의 입을 틀어막는 것이다. 언론을 주적으로 보는 트럼프나 언론을 자기 소유물로 여긴 우리의 일그러진 지난 권력자들은 스스로는 아니라고 강변할지 몰라도 ‘독재자의 인성’이 충분하고도 남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신문없는 정부보다 정부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제퍼슨의 외침은 20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언론과 민주주의 사이에서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상수(常數)가 되고 있다.

그러기에 느닷없이 저널리즘 회복이 소리높여 외쳐지는 지금 언론의 전성시대에, 역으로 고민이 커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제부터 언론은 문재인 정권과 싸워야 한다는 것,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끊임없이 코를 들이밀고 짖어대야 한다는 것, 그 소명을 앞으로도 다할 수 있느냐는 우려 때문이다.

이 것이 진정 촛불혁명이 우리 언론에 내린 지상 명령일텐데 나는 아직 언론을 믿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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