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거리 시장 ‘아케이트 공사’도중 남석교 일부 노출
“이번기회에 일부라도 노출시켜 문화재를 알리자” 여론비등

남문로 2가 156-2번지의 아스팔트 뚜껑 바로 밑에는 석교가 묻혀져 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다리’, 남석교(南石嬌)다. 현재 육거리 시장내 동명약국과 구 석교동 파출소 사이에 묻혀진 다리 남석교는 ‘석교동’의 지명이 남아있어서 그나마 이곳에 석교가 있었음을 말해주지만, 청주시민들조차도 남석교에 대한 인식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청주에 비를 하나 세웠으면 좋겠다, 시비가 되었든, 노래비가 되었든, 청주에 비를 하나 세웠으면 좋겠다, 세울만한 시나 노래가 없으면, 석교동 어디엔가 묻혀 있는 돌다리라도 찾아내어 세웠으면 좋겠다…….” 청주의 한 시인의 읊조림처럼 석교동에 묻혀있는 다리, 남석교를 우리는 언제쯤 밟아볼 수 있을까.

남석교의 흥망성쇠

남석교의 축조연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1975년에 시행된 발굴조사보고서에 의하면 “부분적인 시굴로서 건조연대를 추청하기는 어려우나 가구양식, 백자파편, 철종연간의 개조등으로 미루어 조선조 중기 이전의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사료된다”라고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1920년대의 조선환여승람, 1923년에 간행된 청주연혁지,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월간지 ‘조선’230호(1934년 7월호) 등에 “五鳳元年(BC.57년)이라고 구체적으로 상술되어 있는점, 남석교 매몰전의 탁본자료, 무심천 명칭의 변화, 석조난간 법수이기(法首二基), 무심천의 유로변경등을 미루어 그 보다는 훨씬 이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박혁거세가 왕위를 즉위한 오봉원년이냐, 조선조 중기 이전이냐는 논란은 학계에서도 확실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다만 현재 매몰되어 있는 남석교는 이미 이전에 건립된 후에 여러차례 수선되고 개축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남석교의 원조로도 볼 수 없다는 의견이다. 또한 신라 진흥왕(서기 558)에 남석교를 수선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으로 소급할 수 있다는 견해. 즉, 남석교의 원조는 청주읍성이 위치한 장소인 서원경의 번성을 상기하여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왕위를 즉위한 오봉원년을 건립연대로 기록할 만한 충분한 역사적인 의미가 담겨있다고 보고 있다.
충청북도 문화재 전문위원 박상일(45)씨는 “법수에 견상(犬像)중 3개가 남아있고 이것을 고려견(高麗犬)으로 불렀던 것으로 보아 현재 매몰된 남석교를 적어도 고려시대 이후로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매몰된 남석교의 입지는 시대에 따라 변동이 없었다고 보여지나 남석교가 수선되고 개축되면서 형태와 구조에서는 변화가 있었다. 청주읍성의 발전과 무심천의 유로변경 등에 따라 흥망성쇠를 거듭한 셈. 특히 1906년 대홍수로 인한 무심천의 유로변경과 1932년 남석교 부근의 제방공사로 인하여 남석교의 기능은 쇠퇴하게 되었다. ‘남석교 사적비’는 1907년까지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 후에 유실된 것으로 보여지며 남석교는 석교동 제방공사로 인하여 완전히 매몰된 것으로 보고 있다. 남석교 매몰로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던 답교풍속도 함께 사라지게 됐다.

남석교 복원 ‘뜨거운감자’

남석교는 청주읍성의 안과 밖을 이어주는 다리로, 청주도시발전사의 상징적인 역사유적물이다. 이러한 남석교의 매몰에 대해선 여러가지 의견이 있지만 일제강점기 당시 도시계획의 입안에 따라 불필요한 다리라고 시멘트로 묻어버렸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지금 가장 큰 현안은 무엇보다도 남석교를 어떻게 복원하느냐 하는 방법제기일 것이다. 남석교는 사실 75년 일부분에 대한 발굴조사이후 단 한차례도 전체적인 발굴조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그동안 남석교를 복원하자는 얘기가 식상할 정도로 많이 제기되었고, 중앙공원으로 남석교를 옮겨 복원하자는 여론도 들끓었다. 남석교 복원의 가장 어려운 문제는 역시 경제적인 문제였다. 시 관계자들은 “공사기간 중에 드는 주변상권보상비와 피할 수 없는 주변상권매입비용, 또한 남석교 자체 복원 비용 등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청주시 1년치 예산을 다 쏟아 부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남석교 복원사업이 정권이 바뀔때마다 수차례 제기되었으나 실질적으로 접근한 결과물이 없었던 것이기도 하다. 그 예로 과거 김종호 지사 부임시 남석교 복원에 대한 지시를 내려졌으나 이행되지 않았다. 시 관계자들은 이에대해 “남석교 복원에 대한 지시는 늘 비일비재했다”고 일축했다. 이어 “보이지 않는 문화재를 그대로 두는 것도 복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현재상황을 충분히 고려한 후 기술이 발전한 다음세대에게 맡기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화려한 외출 가능할까

그러나 남석교를 복원하고자 하는 노력은 그 세대에 맡겨진 몫일 것이다. 학계에서 제기된 적극적인 개발방향중에 하나는 남석교의 일부만이라도 노출시켜 재래시장의 주변 정리와 더불어 사라져가는 재래시장과 문화유산을 함께 되살리자는 것이었다.
지난 4월 20일에 열린 학술토론회는 이러한 문제제기를 구체화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현재 진행중인 육거리 아케이트 공사(기후의 영향을 받지 않는 전천후 상권)중에 남석교부근이 일부분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동안 추정되었던 남석교의 총 넓이 3.4m, 총 길이 64m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또한 남석교 위에 약 70cm가량의 시멘트가 덧씌어진 것이 드러났다고 한다.
남석교의 노출로 인해 청주시는 아케이드 공사를 일시적으로 중지하고 이 부근에 대해 설계를 변경했다. 육거리 시장 입구 농협부터 만물유통까지의 1차 아케이트 사업안 중 중앙몰부분인 남석교 부근에 대해 원래의 설계상에서 남석교와 약 1.5m떨어져 기둥을 박았던 것을 8.5m떨어진 곳에 기둥을 박는 안과 아예 이곳에 몰을 세우지 않는 방안을 세운 상태. 공사 관계자들은 “아직 두가지 안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모두 남석교에 대해 영향은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들은 중앙몰 개념이 쇼핑공간과 더불어 휴식할 수 있는 공간연출이었다면, 오히려 남석교의 노출이 상승효과를 줄 수 있을 것이라 입을 모았다.
이에대해 시 관계자들은 “남석교 노출이 청주시와 육거리 상인들간의 원만한 합의에 의해 진행되어야 한다. 남석교 일부 노출위에 방탄유리를 깔아 문화재를 보여주는 방식을 계획중이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합의안이 도출되지 않았다. 여기에는 얼마남지 않은 선거로 인해 사실상 예산확보문제를 뒤로 밀어야 하기도 하고, 공청회 등을 열어 각계의 소리를 듣고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기회에 지하에 잠든 다리, 남석교의 ‘화려한 외출’이 가능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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