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행정수도 무산 후폭풍

사실 이지사를 비롯한 도내 한나라당 단체장들은 신행정수도 문제가 불거진 이후 지역 유권자들로부터 끊임없이 탈당 압력이나 요구를 받아 왔다. 특히 당적 문제가 본인의 정치적 역학관계에서 최대 아킬레스건인 이지사의 입장에선 주변의 이런 여론이 버거울 수 밖에 없었던 것. 그러다가 지난 9일 청주 중앙공원에서 열린 신행정수도사수 도민궐기대회를 계기로 한나라당 소속 단체장들이 결정적으로 여론의 코너에 몰리게 됐다.

 한나라당 자치단체장은 물론 한나라당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 충북도의회 의원들이 사전 일정을 이유로 코빼기도 안 보이자 여론은 극도로 악화됐다. 지금 상태라면 한나라당은 1년 반밖에 안 남은 차기 지방선거를 보장받을 수 없다. 노무현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여론악화에 편승, 표정관리를 할 상황에서 졸지에 위기를 만난 것이다. 신행정수도 변수에 따른 충북의 이상기류는 여론조사에서도 감지된다.

청주방송이 얼마전 창사 7주년을 기념해 실시한 도민여론조사에서 열린우리당은 여전히 한나라당의 정당지지도를 34·7% 대 25·3%로 훨씬 앞섰다. 전국의 정당지지도가 줄곧 한나라당 우세로 나타나는 것에 비하면 분명 반대 현상이다. 더 큰 문제는 신행정수도 무산으로 야기된 도민들의 상실감을 치유할 마땅한 대안 마련이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15일 한나라당 박근혜대표와의 간담회 결론도 ‘여야 합의로 대안을 마련하겠다’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여야 합의가 결코 쉽지 않다. 열린우리당은 앞으로도 신행정수도 추진의 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분위기이인 반면 한나라당은 여전히 여당 독주를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신행정수도의 원상복구를 원하는 충청권의 여론이 ‘당초의 행정수도 이전에 버금가는 대안을 모색하겠다’는 열린우리당과 매치될지언정 ‘행정수도 절대 불갗를 전제로 대안마련에 나선 한나라당과는 쉽게 동화될 수가 없다는 점도 여·야 합의를 어렵게 할 조짐이다.

이를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지난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충청권 압승을 안긴 행정수도 변수가 다음번 지방선거에서도 얼마든지 ‘위력’을 발휘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박근혜대표와의 간담회에서 나타난 한나라당 소속 단체장들의 고민은 정치적(?) 너스레가 아니라 당장 눈앞에 직면한 ‘현실’이 되고 있다.

진퇴양난의 해법 도출
충북의 경우 신행정수도 무산에 따른 풍향은 한나라당에 더 민감하게 미친다. 광역자치단체장은 물론 도시지역의 기초자치단체장들이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기 때문이다. 이원종지사를 비롯한 한대수 청주시장, 엄태영제천시장 그리고 손문주영동군수, 유명호증평군수 등이 현재 한나라 당적이다. 이들은 17대 총선 이후 오히려 한나라당의 주가가 계속 올라가면서 2선이나 3선의 가능성이 한껏 높아지는 듯 했으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신행정수도 불을 빨리 끄지 못한다면 차기 지방선거는 물건너간다”라는 한나라당 관계자의 말은 바로 위기감의 발로로도 비쳐진다. 그는 “다음번 지방선거는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기 때문에 지금에서 그 때의 정국을 예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신행정수도 논란의 해법은 그 성격상 쉽게 나올 수가 없다. 어차피 다음번 지방선거때까지 공방은 계속될테고 한나라당은 항상 수세에 몰릴 것이다. 이런 분위기의 반전은 지금으로선 충청의 민심을 돌이킬만한 근본적 ‘대안’ 제시가 있어야 가능할텐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특별법 통과를 17대 총선 당론으로 정해 놓고 헌재의 위헌판결 후 만세를 부른 한나라당에 대해 기본적으로 충청권은 극도의 반감을 가지고 있다. 신행정수도 무산보다 이런 이중플레이를 더 싫어하는지도 모른다. 한나라당이 제시한 행정+과학도시의 충청권 조성에 대해서도 아주 냉소적이다. 워낙 상실·패배감이 크기 때문에 행정수도 건설이나 이전에 버금가는 대안이 안 나오면 해법 자체가 요원하게 된다. 그러나 충청권을 의식해 대폭적인 양보안을 내놓게 되면 당장 다른 시도의 반발이 있을 것이고, 자칫하면 한나라당 정체성마저 무너지게 된다. 이 때문에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자칫하면 하루아침에 망조
열린우리당이 앞으로도 신행정수도 문제를 충청권에서 여론의 견인차로 활용할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한 열린우리당 의원의 말은 이를 입증하고도 남는다. 그는 “당내엔 현재 두가지 기류가 있다. 한쪽은 중기적 대안마련을, 다른 한쪽은 장기적 전략마련을 주장한다. 노무현대통령은 충청권 민심이 워낙 흉흉하다 보니까 중기적 대안마련에 호감을 갖지만 대세는 장기적 대처로 모아지고 있다.

서둘렀다간 자칫 일을 그르치게 되고 또 정쟁의 빌미를 안길 수 있다. 결국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접근하자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격앙된 분위기를 감안, 무슨 선언적 차원의 공표는 빠른 시간 내에 있을지도 모른다. 신행정수도 문제를 우리 당이 이용하는게 아니라 이미 전후과정이 그런 꼴로 되어가고 있다. 지금이라도 한나라당이 깨끗이 포기하고 나오면 모를까 행정수도 이전 절대불가를 굽히지 않는한 이 논란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이어질 것이다”고 내다 봤다.

도내 한나라당 소속 자치단체장과 도의원들이 차기 지방선거의 걸림돌로 의식해야 하는 것은 행정수도 무산 뿐만이 아니다. 노무현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정국반전을 위해 제시할 ‘카드’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이와 관련, 현재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대북관계에서의 돌출 변수다. 이는 남미를 방문한 노대통령이 핵문제와 관련해 북한 두둔 발언을 한 이후 더욱 가시권으로 잡히는 분위기이다.

궁극적으로 내년 중에 남북정상회담이라도 이루어지면 향후 정국변화는 그야말로 예측불허다. 도내 한나라당 소속 자치단체장들이 2006년 지방선거를 위해 헤쳐나가야할 길목엔 이처럼 전국 공통의 복병 외에도 행정수도라는 지역적 복병이 숨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이 자신들의 당적을 초지일관으로 밀고 나가야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는 여론도 많다. 정당을 옮길 경우 하루아침에 망할 수도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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