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 「풍경의 뼈」 전문

단양 역 지나
단성 역 네 평 대합실에는
온실에 들어선 것처럼 국화 화분이 많습니다
정중앙에 탁구대도 있고
연못도 있고
자전거도 들여다 놓고

잉꼬도 두 쌍
늙은 쥐도 두 쌍
물고기도 두 쌍
살아있는 것들은 다 짝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上行 두 편
下行 두 편
열차시간표 빈칸에는 적요만 도착합니다

물 끓는 난로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역무원 두 사람이

희끗희끗 내리는 눈송이에 고개를 돌리고 있다는 사실도
이 속절없는 풍경에 넣어야 할까요

─ 이병률 「풍경의 뼈」 전문(시집 『당신은 어디로 가려 한다』에서)

그림=박경수

 

간이역에는 하루 두 번 적요만 도착합니다. 대합실에는 종일 고요가 촘촘하게 앉아 하얀 촉루처럼 반짝이고요. 너무 외로운 나머지 국화꽃도 들여놓고 탁구대도 연못도 만들었습니다.

흔히들 ‘외로움은 정서적 유대에서의 이탈로 인해 쓸쓸함과 서글픔을동반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외로움에 대한 편견입니다. ‘외로움의 본질은 타자의 도움이 필요 없는 자기 안의 충만이며, 온전히 자기 자신이되어 자기를 바라보는 일’이라고 한 어느 시인의 말이 더 적절합니다. 외로움에 실존의 뿌리를 내리고 정주할 때 오히려 허무와 절망에서 벗어나는 동력을 얻을 수 있지요. 보십시오. 어느새 적요한 공간 속에 사는 잉꼬도 늙은 쥐도 물고기도 짝을 이루고 존재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하고 있지않습니까. 외로운 것들이 저들끼리 모여 외로움을 함께 하는 순간 간이역대합실은 외로움의 온기로 훈훈해져, 설사 기차가 그냥 지나가버린다 해도 그런 것쯤 아랑곳하지 않게 되었지요. 눈물 나도록 아름답게 순치된적요의 풍경입니다.

아울러 모든 그리움은 외로움에서 출발한다고 하지요. 누군가 간절히그리워하는 순간 외로움은 감미로워집니다. ‘물 끓는 난로 옆에 앉은 역무원 두 사람’도 마음은 벌써 ‘희끗희끗 내리는 눈송이’를 바라보며 속절없는 그리움으로 애틋하네요. 적막 속에 서 있는 ‘풍경의 뼈’가 따뜻하게스며들어 번집니다. 이병률 시인의 고향인 봉양에서 서너 정거장 더 가면바로 단성역이 나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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