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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개같이 살면 안 될까요?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아무래도 새해의 시작은 덕담이 제격이다. 일단 징조가 좋다. 대통령은 국민소득 3만불을 확신하며 “이젠 국민들이 체감하는 성장을 이뤄 삶의 질을 높이라”고 채근하고 있고 북한의 동계올림픽 참가, 더 나아가 남북한의 화해무드도 조금씩은 진전되는 것같다. 아직은 서로를 다 믿지 못하는 뱁새눈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말이다.

지난해 국정농단과 정권교체에 이어 올해 있을 지방선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사회적 화두는 온통 변화에 대한 갈망이다. 국가통치는 달라져야 하고 정치가 선진화돼야 하며, 기업도 바뀌어야 하고 자치단체장 또한 다음번에는 모조리 뽀다구(?)나는 사람들로 교체돼야 한다고들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나이들어 욕심을 부리거나 딱히 할 일이 없어 지방선거에 나오려는 사람들은 여지없이 난도질을 당한다.

이런 자리에 꼭 등장하는 것이 하나 있다. ‘58년 개띠’다. 아마도 올해가 개의 년(年)이기 때문일 게다. 환갑을 맞은 58년 개띠는 어느덧 삼척동자도 다 아는 대한민국의 고유명사가 됐다. 특정 세대가 이처럼 각인된 것도 참 특이하다.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그들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개같은 삶을 살아서’라는 믿거나말거나한 답이 달리기도 한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리나라가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사회적 분위기를 수습한 것은 1958년을 전후한 시기이다. 비로소 살만하니까 사람들은 다시 정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 때 출생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얼마나 많았으면 그 당시, 철로 옆에 둥지를 튼 금슬좋은 종달새 가족이 열차가 지날 때마다 화들짝 놀라 깨어 다산(多産)의 과업을 완수하는 것에 비유하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베이비부머라는 집단적 정체성을 부여받은 58년 개띠는 묘하게도 우리나라 현대사의 격변기마다 예의 집단적 굴레로써 휘둘리거나 휘말려 왔다. 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는 교실이 턱없이 부족해 시간을 오전과 오후로 나눠 받는 2부제 수업이 보편화됐다. 당시 시골의 학교는 닭장 등 축사를 임시 개조해 교실로 사용하는 바람에 베이비부머들 사이에서는 지금도 ‘닭장 교실’의 추억이 생생히 남아 있다.

뺑뺑이 1세대로서 중학교 3학년이던 1973년 서울에서 최초로 고등학교 무시험제도가 도입돼 지금으로 치면 무작위 추첨으로 학교를 배정받았다. 58년생인 아들을 위한 아버지 박정희의 배려라는 소문이 돌면서 박지만이 엉뚱하게 여론의 피해를 입은 것도 이 때다. 하지만 58년 개띠들은 성년이 되어 더욱 파란만장한 삶을 거친다.

유신정권 몰락과 전두환의 5공화국 탄생을 목격하면서 이들의 대학생활은 숱한 곡절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산다는, 불혹의 40세가 되던 1997년엔 IMF 외환위기를 맞아 되레 직장에서 쫓겨나 거리를 헤맸다. 그들 중에 많은 수는 10년 전 6월 항쟁 때 넥타이 부대를 자처해 거리에서 종주먹을 휘두르며 처절한 성인생활을 시작했다. 학자들 사이에선 58년 생을 우리나라 전후 세대를 가장 상징적으로 대표한다고 규정한다. 현대사의 산업화와 민주화시대의 한 복판에서 그 주역으로 살아왔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황금 개띠’라는 올해, 문제의 58년생들은 공로연수 등의 타이틀을 달고 모두 공직에서 은퇴한다. 전국적으로 8000여명에 가까운 공직자들이 해당된다고 한다. 물론 사기업이나 전문직종에선 이 나이는 이미 오래전에 뒷방으로 밀려났다. 이에 맞춰 언론들은 대한민국 사회의 총체적 세대교체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떤다.

58년 개띠는 평생 대한민국의 ‘돌연변이’를 온몸으로 감내하며 버텨 왔다. 이제껏 죽어라 살아 왔건만 이들은 또 다시 모진 풍파에 맞서야 할 판이다. 그 것도 허울좋은 ‘황금 개띠’라는 훈장을 달고 말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우리사회가 온통 ‘변화’의 욕구에 휘말리는 건 당연하다.

우선 58년 개띠들부터 은퇴 이후의 새로운 삶, 제 2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힘쓸 것이다. 어느 땐 살아 온 것을 후회하고 또 어느 땐 그동안 선택의 순간에 다른 길을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참회의 시간을 가질지도 모른다. 지금과는 다른 삶, 좀 더 나은 삶을 이룩하지 못한 것을 자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삶에 있어 가정이라는 것은 없다. 누가 되었든 결국엔 모든 순간 순간 자신의 인생을 수놓고 또 그 것에 대해 책임질 뿐이다. 인간은 자신의 더듬이로 길을 찾아가고 그 여정 또한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 게 된다. 운명은 결코 주어지는 게 아니다. 내가 만들고 개척하고 가꾸다 보면 어느덧 다가오는 게 운명이다. 그래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선택의 여지는 이 것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두고 왜 이렇게 했던가, 왜 그렇게 밖에 못했느냐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남과의 비교도 그렇다. 사람은 태어날 때 이미 서로 다른 DNA를 가지고 세상에 나온다. 그러기에 모든 이의 삶은 애초부터 같을 수가 없다.

개(犬)는 어떤 동물보다도 충성스럽지만 그렇다고 야성(野性)을 버리지는 않는다. 수틀리면 주인까지도 물어뜯는다. 개는 먹이에 탐욕하지만 그렇다고 주인의 의도를 넘어서지는 않는다. 개는 애완용으로 길들여지지만 그렇다고 집밖에 내쳐졌을 때 결코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또 그 환경이란 것이 불리하게 되면 언제든지 극복하겠다는 자세로 세상을 헤쳐나간다. 그러다가도 사람들한테 조그마한 사랑이라도 받게 되면 마냥 즐겁고 행복함을 표현하는 게 개다.

58년 개띠들이 분명 이렇게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그들은, 그 탁월한 생존의 본능으로 대한민국 현대사의 주인공, 역사 변천의 아이콘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여, 올해는 모두가 개같이 살았으면 한다. 그 개들의 운명처럼 아모르 파티 (amor fati),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외치면서 말이다. 그러면 나라가 편해질 게 아닌가.

충청리뷰  043sim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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