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직언직썰/ 오효진 소설가

오효진 소설가

도이치(Deutchland)는 왜 독일(獨逸)인가. 프랑스(France)는 불란서(佛蘭西)가 아닌 프랑스로 쓰고 스페인(Spain)도 서반아(西班牙)가 아닌 스페인으로 쓰는데, 도이치만 왜 독일이란 한자말로 표기하는가. 독일이라는 뜻도 소리도 알 수 없는 이 엉뚱한 말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의문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허탈감에 빠지게 된다.

도이치는 1882년 고종연간에 덕국(德國)이란 이름으로 우리나라 공식문서인 승정원일기에 올랐다. 덕국이란 나라 이름은 말할 것도 없이 당시 중국이 쓰던 말을 그대로 들여온 것이다.

중국은 외래어를 표기할 때 우선 본토발음을 음으로 베껴서(취음), 비슷한 발음의 한자어를 찾아서 쓴다(음역). 중국만 그런 게 아니고 다른 나라들도 그렇게 한다. 이런 원칙에 따라 중국은 도이치를 ‘덕의지(德意志)’로 표기했다. 덕의지의 중국어 발음이 ‘더이찌(deyizhi)’였던 것이다. 중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덕의지를 줄여서 덕국(德國)으로 적었다. 그것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들어온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그래도 여기까지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데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 덕국이 독일로 바뀐 데는 그냥 웃어넘기지 못할 사연이 있다. 일본강점시대가 되면서 외래어를 표기하는 데도 일본을 따라가게 된 것이다. 일본은 중국과 달리 자주적으로, 도이치를 독일(獨逸)로 표기했다. 이때도 일본은 ‘도이치’라는 발음을 따왔다. 獨逸의 일본어 발음이 ‘도이쯔’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본은 도이치를 ‘獨逸’로 써놓고 읽을 땐 ‘도이쯔’로 읽는다. 요즘엔 독일이란 한자어 표기를 멀리하고 아예 가타가나로 ‘도이쯔(ドイツ)’로 쓰고 있다. 이러다 보니 우리나라만 뜻도 소리도 관련이 없는 독일을, 도이치를 뜻하는 나라이름으로 쓰고 있다. 닭 쫓던 개 울 쳐다보는 격이다. 어이가 없어도 한참 없다.

물론 어떤 나라이름을 다른 나라들이, 자국민들이 부르는 대로 한 가지로만 부르는 예는 많지 않다. 도이치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몇 가지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자국어로는 도이칠란트(Deutchland)지만, 미국은 게르만(German)에서 온 저매니(Germany)로, 프랑스는 게르만족이 살던 옛 지역을 따서 알르마뉴(Allemagne)로, 폴란드는 니엠치(Niemcy)로 부르고 적는다. 세계 여러 나라가 대개 이 세 부류로 독일을 부른다.

그밖의 다른 나라들은 도이치를 이렇게 부른다. 몽고-게르만, 네팔-절마니, 아랍-알마니아, 인도네시아-제르만, 태국-저르마니, 말레이-제르만, 터키-알마니아, 캄보디아-알르망, 힌두어-절마니, 체코-니메쓰코. 나름대로 쉽게 이해가 가고 뿌리가 있는 이름으로 독일을 부르고 있다. 우리처럼 이해할 수 없는 말로 도이치를 부르는 나라는 아직 찾지 못했다.

이런 예는 도이치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미국(美國)은 중국의 미리견(美利堅, meilijian, 아메리카에서 취음)에서 왔고, 영국(英國) 역시 중국의 영길리(英吉利, yingili / 英格蘭, yingelan, 잉글랜드에서 취음)에서 왔다. 이런 나라들의 이름도 중국에서는 의미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말인데, 이걸 우리가 생각 없이 받아들이다 보니 알 수 없는 말이 돼 버린 것이다.

말에는 주권이 있다. 물론 우리말에도 주권이 있어야 한다. 일제 강점기에 쓰던 말을 앵무새처럼 뜻도 모르고 생각도 없이 받아들여 쓰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중국과 일본을 눈 감고 따라 해온 외국의 인명 지명 표기법을 자주적으로 고쳐야 한다. 1908년 발간된 ‘소년(少年)’지 2호는 미국을 ‘아메리카’로, 영국을 ‘뿌리탠’으로, 도이치를 ‘떠잇튀’로 적고 있다. 그때부터 110년이 지났는데도 우리는 아직도 선각자들의 뒤를 잇지 못하고 있다. 무슨 변명을 할 것인가. 할 말이 없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