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노 칼럼 ‘吐’/ 충청리뷰 충주·음성담당 부장

윤호노 부장

대학 입학 후 들은 첫 수업이 선택과목으로 택한 법학개론 이었다. 당시 수업을 한 교수님은 칠판에 법(法)이라고 쓴 뒤 물(水)+거(去)가 합쳐진 글자라고 했다. 법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쉽게 물이 흐르는 것으로 여기면 된다는 것이었다.

인간사회에 존재하는 법칙이 자연법칙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관념을 설명한 것이다. 대법원은 얼마 전 거액의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진경준 전 검사장에게 징역 7년과 벌금 6억 원, 추징금 5억 219만 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진 전 검사장의 핵심 혐의인 뇌물죄에 대해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린 것. 이에 따라 앞으로 진 전 검사장에 대한 신체제한은 물론 120억 추징·몰수는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선고는 고위공직자의 뇌물 범죄에 대한 대법원과 일반 국민 간 인식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진 전 검사장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김정주 넥슨대표로부터 2005년 5월 4억 2000만 원에 해당하는 공짜주식을 받았다.

그는 1년 뒤인 2006년 11월 해당 주식을 넥슨 쪽에 10억여 원에 팔고 이 돈으로 다시 넥슨재팬 주식을 샀다. 이어 진 전 검사장은 2015년 그 주식을 팔아 무려 120억 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올렸고, 120억 원의 밑천이 된 ‘공짜주식’이 문제가 돼 뇌물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재판에서 쟁점은 120억 원의 대박을 터트린 공짜주식의 직무상 대가성 여부였다.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해 대법에서 최종 어떤 결론을 내릴지 관심이 모아졌다.

한데 대법원은 법조문에만 지나치게 매달려 뇌물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사회통념을 깡그리 무시한 판결을 내렸다. 공무원 뇌물 범죄에 대해선 대가성을 폭넓게 인정해 강력히 처벌하자는 것이 사회분위기인데 대법원은 확대 해석하지 않았다. 이런 판결 취지라면 구체적 대가성이나 직무관련성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한 스폰서 법조인이나 공직자에 대한 처분은 더욱 어렵게 된다.

만취해 변호사들을 폭행, 물의를 빚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셋째 아들 김동선 씨도 처벌을 피하게 됐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최근 김씨의 처벌이 어렵다고 결론 내리고 ‘공소권 없음’으로 재판에 넘기지 않았다. ‘땅콩 회항’ 사건으로 재판을 받아온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대법원이 확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여객기 항로를 임의로 변경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과거 재벌이나 정치권 인사 등 사회지도층들의 사건·사고는 갖가지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로 일단락됐다. 때문에 국민의 ‘법 허무주의’가 커졌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인식도 굳어갔다.

‘박근혜-최순실 사태’ 이후 이제 우리나라도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사법당국의 의식과 태도는 제자리걸음이다. 법을 무기로 기득권을 지키고 옹호하고 있다.법은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고 누구나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 법은 상식의 최소한이기 때문이다. 사법당국은 더 이상 상식을 벗어나는 행태로 국민들을 분노케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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