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외의 문화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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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의 문화재<1>
  • 충북인뉴스
  • 승인 2017.12.26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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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식의 ‘톡톡 튀는 청주史’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碑像

국보 제106호
청주시 상당구 명암로 143 국립청주박물관

이 불비상은 세종시 전의면의 비암사 극락보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의 꼭대기에서 발견하였다. 네모꼴 돌기둥의 4면에 불상을 새겼다. ‘계유’ 명문을 통해 백제가 멸망한 직후인 673년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앞면에는 부처와 보살, 신장상 등 9존불을 배치하였다. 앞면과 뒷면에 걸쳐 이 불비상의 조성기를 적었다. 그 내용은 계유년 국왕과 대신, 백제의 7세 부모를 위하여 절을 짓고 아미타상과 관음·대세지상을 비롯한 불비상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높이는 42.5㎝이다.

 

 

기축명아미타불비상己丑銘阿彌陀佛碑像

보물 제367호
청주시 상당구 명암로 143 국립청주박물관

1960년 비암사 삼층석탑 정상에서 발견한 불비상이다. 큰 광배형의 바탕 앞에 아미타불을 중심에 두고 보살상과 여덟 존상을 배치하였다. 하단에서 상단으로 올라오는 구성으로 하단에는 극락세계의 연지蓮池와 보계寶階가 있다. 불비상 뒤쪽에 기축년, 백제의 유민들이 칠세부모를 위해 아미타불과 여러 보살상을 만들었다는 명문이 있다. 이 불비상에서 보이는 아미타불과 서방정토의 도상은 수나라에서 수용된 새로운 아미타신앙의 영향이 크게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명문을 통해 689년(신문왕 9)에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높이는 57㎝이다.

 

미륵보살반가사유상彌勒菩薩半跏思惟碑像

보물 제368호
청주시 상당구 명암로 143 국립청주박물관

비암사 삼층석탑 정상에서 발견한 석상이다. 비석과 같은 모양으로 사방에 돋을 새김으로 조각하였다. 가운데에 반가사유상을 새기고 뒷면에 보탑을, 옆면과 하단에는 공양자상과 보살상을 배치하였다. 상단의 옥개석에는 몸돌 기둥 모서리에서 올라온 나무의 줄기와 잎을 표현하였다. 하단의 대석에는 항아리 모양의 향로를 중심으로 두 공양자가 무릎을 꿇고 있다.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과 같이 673년에 만들었다. 높이는 42.5㎝이다.

 

청주 계산리 오층석탑淸州 桂山里 五層石塔

보물 제511호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계산리 48

계산리 오층석탑은 청주 지역에서 가장 큰 석탑이다. 석탑 제일 꼭대기의 상륜부를 제외하면 옛 모습을 그대로 갖추었다. 전체 579cm의 높이인데, 지하에 매몰된 지대석 높이 7cm를 더한 것으로 기단부의 하대석에서 5층 옥개석까지는 572cm이다. 탑의 기단이나 탑신에 우주나 탱주를 생략하였다. 옥개석의 상면은 반전 없이 직선으로 처리하고 낙수면이 짧은 특징을 보여 전탑에서 보이는 둔중한 느낌을 준다. 석탑은 신라 하대 이후의 양식에다가 백제계 기단구조와 전탑의 옥개 형태가 복합된 형식이다. 고려 중기인 11~12세기 쯤의 작품으로 보인다.

 

청주 용화사 석조불상군淸州 龍華寺 石造佛像群

보물 제985호
청주시 서원구 무심서로 565

용화사 석조불상군은 무심천변에 방치되어 있던 일곱 불상을 1902년 용화사를 창건하면서 모셔왔다. 1995년 미륵보전을 새로 세워 불상을 모셨다가 2008년 극락전을 지어 작은 불상 4구를 따로 옮겨 모시고 있다. 모두 양 어깨에 법의를 걸친 입상과 좌상이다. 용화보전(삼불전)에는 미륵불(높이 5.5m)을 중앙에 두고 왼쪽에 약사여래, 오른쪽에 뒤에 나한상을 새긴 석가여래를 모셨다. 극락전에는 3구의 좌불과 1기의 미륵보살 입상을 모셨는데, 제일 왼쪽의 좌불은 유마거사이고 중앙 좌불 2구는 미상이다. 고려시대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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