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환 「상처를 만지다」 전문

입춘 지나 경칩이면 봄 아니냐고
밖에 내놓은 군자란이 밤새 냉해를 입어
한 잎 끝이 짓무르더니
손쓸 겨를도 없이 마르고 부서졌다.

매끈하던 잎에 상처가 생겨
흉한 것을 며칠 들여다보다가
아예 잎 밑동을 잘라버릴까
가위를 들었다 놓기를 거듭하다가

그냥 두기로 하였다.
얼룩진 상처도 제 얼굴이려니
감출 수 없어서 눈길을 붙드는
흉터도 제 삶이려니 싶어
성급함을 자책하는 내 상심이
살을 도려내는 아픔보다 더하랴 싶어

그냥 두고 한 번 더,
한 번 더 만져주기로 하였다.

 

─ 류정환 「상처를 만지다」 전문(시집 『상처를 만지다』에서)

 

그림=박경수

상처를 만져봅니다. 덧없이 부서져버린 생이 부질없지요. 오직 아픔만이 실존입니다. 상처를 가리지 말고 진실한 눈으로 응시할 뿐입니다. 타자의 고통이 전율처럼 내면으로 스며들 때까지. 그리하여 상처가 스스로 삶이 될 때까지. 사랑이여 상처를 가리지 말 일입니다. 상처를 두려움 없이 바라볼 때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영혼과의 해후가 가능하지요. 타자의 상처를 가식 없이 내안으로 받아들일 때 사랑은 마땅히 제 모습을 드러내니까요. 손쓸 겨를도 없이 밀어닥치는 운명처럼 맞닥뜨리게되는 상실의 순간들. 그 상처 난 대상을 향한 사유의 넉넉함을 통하여 체념과 위안의 궁극을 보게 되고, 마침내 상처 받은 영혼의 존엄을 가능케합니다. 그냥 두고 한 번 더, 한 번 더 만져주는 저 무량한 마음 그늘 아래절 한 채 짓겠습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