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가가 살아온 길, 현도면<3>
상태바
명문가가 살아온 길, 현도면<3>
  • 충북인뉴스
  • 승인 2017.12.14 16: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민식의 ‘톡톡 튀는 청주史’

절이 있어 사동리寺洞里, 안심사

안심사安心寺가 있는 남이면 사동리는 19세기 말 새로 생긴 지명이다. 『여지도서』에는 남차이면南次二面에 편호 9호, 남자 19명이 있던 안심사가 어느 틈엔가 사동리로 바뀌었다.

775년(혜공왕 11) 진표율사는 제자들과 마음을 편히 한다는 의미로 안심사安心寺를 세웠다고 한다. 그후 1325년(충숙왕 12) 원명元明국사가 중창하였고, 1626년(인조 4) 송암松庵대사가 다시 중창하였다. 이에 앞서 비로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2호)은 1613년(광해군 5)에 창건하고 1842년(헌종 8) 중수하였다.

안심사는 청주지역에서 가장 많은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고찰이다. 1626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게 중창하였다고 하는데 이보다 앞선 유물도 있다. 안심사 법고法鼓(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44호)는 훼손 상태가 심하나 안쪽에 ‘만력이십구년신축萬曆貳拾玖年新築’이란 묵서가 있어 1601년(선조 34)에 만든 것을 알 수 있다.

 

대웅전은 3단의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3×2칸의 다포식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옆면 공포로 보아 원래 팔작지붕이었을 것이다.

 

대웅전(보물 제664호)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인데, 양 옆 풍벽 안 공포로 보아 원래는 팔작지붕이었다. 이 건물은 1626년 송암대사가 중건하였다고 한다. 대웅전 처마 끝 암막새에 ‘강희11년康熙十一年’ 명문이 있어 1672년(현종 13) 중수 또는 기와를 새로 올린 사실을 알 수 있다.

비로전에 보관 중인 영산회괘불탱靈山會掛佛幀(국보 제297호)은 7.4×4.9m 크기로 석가여래불의 설법을 듣기 위해 영산회에 모인 불·보살·사천왕을 그린 그림이다. 그림 아래쪽에 순치9년임진사월일順治九年壬辰四月日이라 하여 1652년(효종 3)에 그린 것이다. 보살사 괘불보다 3년 후에 만들었다.

 

괘불은 사찰의 법회나 큰 의식 때 법당 앞에 걸어놓는다. 윗부분의 작은 손상을 제외하면 상태가 매우 좋다.

 

안심사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7호)은 창건 당시 진표율사가 직접 봉안한 것이라 하나 사리탑 양식은 조선 후기이다. 탑 옆 세존사리비에 의하면 이 산중에서 발견하여 1900년 다시 옮겨놓은 것이라 한다.

이와 같이 청주를 대표하는 안심사는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의 것들이다. 임진왜란 당시 승의병의 활동에 따른 반대급부로 사찰의 유지가 가능했다. 청주지역에는 안심사와 같은 유형의 사찰이 제법 있다. 보살사와 월리사가 그것이다.

보살사菩薩寺도 778년 진표율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지금 보살사에서 미륵신앙이나 화엄신앙의 자취를 찾아보기 어렵다. 아마도 중창 과정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보살사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유물은 석조이불병립상石造二佛竝立像(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4호)이다. 불상 높이는 64cm에 불과하며 한 광배에 두 불상을 조각하였다.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본다.

 

하나의 광배에 두 불상을 새긴 특이한 형식으로 갸름하고 천진난만한 얼굴의 미소가 친근감을 갖게 한다.

 

보살사 영산회괘불탱(보물 제1258호)은 6.13×4.26m의 크기로 1649년(인조27) 신겸, 덕희, 경윤 등이 그렸다. 석가모니 본존불을 두고 하단에 8대 보살, 중단의 10대 제자를 빽빽하게 좌우 대칭으로 배치하였다.

 

삼베 바탕 위에 적색, 녹색, 황색 등의 안료를 사용하여 밝은 느낌이다. 선명한 색채와 화려한 문양, 세미랗고 단아한 묘사가 돋보인다.

 

보살사 극락보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6호)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조선 중기의 양식을 보이는데, 1683년(숙종 9) 중수하였다.

보살사 오층석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5호)은 2층 탑신석에 ‘강희계미康熙癸未’라 하였으니 1703년(숙종 29)에 세운 석탑이다. 독특한 기단이 돋보이나 전체적으로 단순하다. 전체 높이는 348cm이다.

문의의 끝자락 벌랏마을로 향하는 초입에 월리사月裡寺가 있다. 사적비에 따르면 월리사 대웅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8호)은 1657년(효종 8) 원학元學대사가 이웃에 있는 신흥사新興寺를 옮겨와 지었다 하는데, 이때 중창한 것이다. 처마 끝 암막새 명문으로 1730년(영조 6) 중수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앞면 3칸, 옆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처마 끝 모서리에 활주가 있는데 처마를 길게 높여 날렵한 모습을 보여준다.

 

보살사 극락보전과 오층석탑
월리사 대웅전. 자연석을 올려 쌓아 대지를 이룬 후 자연석 주초를 놓고 3×3칸 기둥 위에 팔작지붕을 올렸다. 처마 끝의 활주가 이채롭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