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직언직썰/ 박아롱 변호사

박아롱 변호사

‘법조인이 되기로 결심한 이유가 뭐예요?’ 사법시험 2차에 합격한 뒤 3차 면접을 준비하면서 답변을 준비하기 가장 곤혹스러웠던 질문은 이처럼 간단하고 기본적인 것이었다. 누구 앞에서 이렇다 하게 내놓을 만한 멋들어진 계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쯤까지 그때 한창 유행하던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해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용모나 집안의 경제적 상황이 여의치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문과생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직업 중 하나인 법조인을 지망하게 되었다. 갑자기 닥친 IMF 상황도 나의 장래희망을 정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어떤 법조인이 되고 싶다’기 보다는 ‘빨리 법조인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으로 짧지 않은 수험기간을 지냈고, 처음으로 진보정권이 들어서서 세상이 서서히 바뀌어가는 와중에도 세상일에 눈을 돌리지 못했다. 대학교 저학년 시절 풍물패에 속해 선배들로부터 이것저것 주워듣고 나름 그 나이 대에 할 만한 사회에 관한 고민도 하는 척 해보았다. 하지만 당장 내 눈 앞에 시험이 있고, 그 시험에서 몇 번 떨어지다 보니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질 만한 처지도 아니긴 했다.

그렇게 다분히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수험생활을 마치고, 이미 법조인으로서 첫걸음을 내딛기 직전에야 ‘법조인이 되기로 결심한’ 그럴 듯한 이유를 소급해서 생각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젊은 법조인으로서 기존의 흐름을 바꿀 만한 획기적인 아이템이나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다른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상태도 아니었으며, 애초에 그런 것들이 나의 융통성 없고 고리타분한 성향과 맞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 나는 법조인이라는 직업 자체가 갖는 근본적인 성격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세상의 규칙을 세우고 이를 지키며,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처벌받게 하고, 바른 일을 하려는 사람은 그 목표를 관철하도록 돕는 일. 그러면서도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직업. 딱 거기까지가 처음 법조인이 되기로 결심했을 때 내가 이 직업에 대해 갖고 있던 인식이었다.

해서 나는 ‘손이 닿는 곳에서 작은 정의를 하나씩 세우고 지키는 일을 하고 싶어서 법조인이 되었다’ 정도로 예상 답변을 정리했고, 이후 같거나 유사한 질문에 대해 꼬박꼬박 같은 답변을 해왔다. 처음부터 정확히 그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말을 할 때마다 찔리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크고 거창한 일을 해낼 깜냥이나 자신은 없어도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법조인이라는 직업의 근본적인 본분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면에서 솔직하지 못한 답변도 아닌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비록 소급해서 만들어내다시피 한 것이지만 위 답변을 나의 변호사로서의 목표로 삼게 되었다.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을 전담할 때에는 정말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우면서 공익을 위한 변호사 업무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하며 큰 보람을 느꼈다. 사선변호사로 일하는 지금은 그때 만큼은 아니라도 ‘기본적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변호사로서의 사명을 잊지 않고 간접적으로나마 사회적 약자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잊지 않고자 부족하나마 노력하고 있다.

‘정의가 무엇이냐’고 하면 딱 떨어지는 답이 생각나지 않아서 항상 당황하곤 한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정의가 애초에 그렇게 종류와 크기가 다양하고 실현을 위한 난이도도 천차만별이어서 그 뜻이나 본질을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루 하루, 새롭게 만나는 어떠한 일들마다 그에 맞는 정의를 찾아내고 그것을 지켜내고자 나름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와 우리의 본분이 아닐까. 오늘도 내게 주어진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내 삶 속의 작은 정의를 세우고 지켜나가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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