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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만들던 곳 복합문화공간 되다덴마크 헬싱외르 크론보르성 근처 ‘쿨투어베아프트’
도서관·공연장·전시장·컨퍼런스홀 갖춘 문화조선소

윤송현의 세계도서관기행
(22)북유럽 편


덴마크 햄릿성에 가보고 싶었다. 헬싱외르에 있는 크론보르성이었다.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기차로 50분 정도 거리이다. 기차역에서 내려 바다를 끼고 걷다보니 윤곽이 뚜렷하게 그려지는 성이 보였다. 성벽에 올라서보니 발아래 바다가 흘러가고 바다 건너 스웨덴의 헬싱보리시가 코앞에 보인다. 4km 남짓의 거리이다. 이 바다가 북해와 발트해를 연결하는 길목이다. 서유럽에서 발트해에 연해있는 도시들로 물건을 실어나르는 배들은 이 좁은 해협을 지나야 한다.

북유럽을 오래도록 지배한 덴마크의 왕조는 이 길목에 성을 쌓고, 포대를 설치하고 지나다니는 배들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였다. 성은 여러번 고쳐 지었지만,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 딱히 햄릿의 장면을 떠올릴 만한 곳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도 여기 저기 ‘햄릿’을 파는 설치물들이 있어 카메라를 누르게 된다.
 

‘햄릿’의 배경이 돼 햄릿성으로 알려진 크론보르성. 뒷쪽 바다가 북해와 발트해를 잇는 길목이다.


쿨투어(문화)+베아프트(조선소)의 의미

크론보르성에서 돌아나오는 길에 독특한 건물이 있어서 들어가 보았더니 복합문화공간인 쿨투어베아프트(Kulturveaft)였다. 쿨투어는 ‘문화’이고, 베아프트는 ‘조선소’이다. 문화조선소라는 것이다. 문화발전소는 들어봤어도 문화조선소는 좀 낯설다. 건물 안에 들어서니 빨간 벽돌의 벽체가 눈에 들어온다. 오래 전에 지은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1층에서 바로 도서관으로 이어지는데, 들어서는 순간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2층까지가 도서관이다. 도서관만 하루에 1000여명이 찾는다고 한다. 건물 내에는 공연장, 전시장, 컨퍼런스홀이 있다. 헬싱외르는 인구가 4만 7000명 정도이다. 그런 작은 도시의 바닷가에 대규모 복합문화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문화를 만들어내는 조선소. 그 사연을 파고 들어가 보았다.

헬싱외르의 경제는 오랫동안 앞바다를 지나는 배들에게서 뜯어내는 세금에 의존하는 바가 컸는데, 1857년부터는 세금을 걷을 수 없게 되었다. 그로 인한 어려움에 새로운 비전을 준 것은 조선소 사업을 들고 나타난 상인 매드홈이었다. 매드홈은 헬싱외르 바닷가에 있는 해군기지에 조선소를 세우려고 했으나 군대는 양보하지 않았다. 협상장에서 매드홈이 조선소를 다른 곳에 짓겠다며 책상을 내리치자, 다급해진 헬싱외르 의회는 정부와 군을 압박해서 해군이 부지를 양보하도록 하였다.

그렇게 1882년에 헬싱외르의 앞바다에 근대적인 조선소가 세워졌다. 기대대로 조선소는 계속 번창해서 오래도록 헬싱외르를 지탱하는 지주가 되었다. 그러나 오일쇼크로 조선업은 큰 타격을 받게 되었고, 이후 동아시아 신흥국들의 진출로 북유럽의 조선업은 경쟁력을 잃었다. 결국 100여년간 헬싱외르를 지탱해온 조선소는 1989년에 문을 닫게 되었고, 3000여명의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헬싱외르에 다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방치되던 조선소 건물에 불빛이 비치기 시작한 것은 일부 예술인들에 의해서였다. 젊은 예술인들이 폐쇄된 조선소 건물에 들어가 작업공간을 마련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활동은 점점 사람들의 관심을 끌며 확대되었고, 그에 따라 방치된 건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활기를 띠었다.
 

쿨투어베아프트 전경


방치된 조선소에 피어난 꿈

기존의 예술가들의 활동을 살려서 문화공간으로 조성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헬싱어의 중심지이고, 세계문화유산인 크론보르성이 인접한 요지이기 때문에 대규모 주거단지와 상권으로 개발하자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오랜 논의에 매듭을 지은 것은 2003년에 당시 헬싱어의 시장이던 페르 태르스뵐(Per Tærsbøl)이었다. 당시 정부의 문화부장관이던 브리안 미켈슨의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이 큰 힘이 되었다. 그들은 방치된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문화센터 겸 도서관을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다.

2005년에 오래된 조선소의 확장과 전환에 관해 총 1억 5000만원의 상금이 걸린 국제공모가 진행되었다. 세계 각국에서 86개의 기업이 응모한 가운데 결국 아르후스(Arhus)의 젊은 기업이 선정되었다. 2010년 준공 이후 이 건물은 세계적인 건축상을 많이 받았고, 단번에 북유럽을 대표하는 문화명소가 되었다. 다양한 공연과 행사로 수많은 방문객들을 불러 모으면서 헬싱어에 활기를 불어넣는 엔진이 되고 있다. 과거에는 관세를 뜯어서 살다가 이후 배를 만들어서 살았고, 이제는 이 도시가 문화로 먹고 살게 된 것이다.
 

페르 시장 인형. 페르시장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복합문화공간을 추진했던 페르시장은 보수당 소속이었는데, 다음 선거에서는 주거공간으로 개발할 것을 주장했던 사민당의 후보가 시장이 되었다는 점이다. 쿨투어베아프트는 2010년에 건물을 준공하였다. 준공이후 북유럽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아트팩토리 건물로 주목을 받았고, 크론보르성과 함께 세계적인 문화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2014년에 열린 개관 기념행사에서는 반대했던 정치인들도 쿨투어베아프트의 가치를 인정하였다고 한다.

많은 조선소의 시설 중에서 앞쪽에 있는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복합문화공간인 쿨투어베아프트를 만들었다. 아직도 쿨투어베아프트 뒤편에는 손길을 기다리는 빨간 벽돌 건물들이 여러 채 남아 있다. 어떻게 변모할지 궁금하다.


충청리뷰  043sim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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