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노 칼럼 ‘吐’/ 충청리뷰 충주·음성담당 부장

윤호노 부장

가끔 찬바람이 불 때 몸이 긴장되는 것을 느낀다.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3학년 늦가을에 느꼈던 감정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1992년 12월 18일 제14대 대통령 선거가 열려 그해 대학입시는 12월 22일 방학 때 치러졌다. 11월에 치러지는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비교하면 한 달 이상 늦게 본 것인데 대체적으로 학력고사 세대는 그랬다.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이 수능 연기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몰고 왔다. 수능이 1주일 연기됐고,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해 온 60만 수험생들도 지진 여파를 피해가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수능이라는 한 번의 시험으로 수십만명의 운명이 매년 갈린다.

많은 기업들은 여전히 대학 간판이나 학과를 보고 신입직원을 채용하고 있고 의사, 한의사 등 전문직은 대학을 들어가지 못하면 하고 싶어도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수능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수능 연기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수능 연기에 반대한다”는 청원이 잇따랐다.

학생들이 수능에 맞춰 스케줄을 짜서 컨디션 조절을 하며 공부했는데 연기는 말이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수능은 인생에서 중요한 시험이긴 하지만 그 가치는 사람의 목숨에 비할 수 없다. 포항지역 수험생을 생각하면 그런 청원은 할 수 없다.

연기 반대를 외친 당사자가 그런 일을 당했을 경우를 생각하면 답은 쉽게 나온다. 더 큰 우려는 인터넷 특유의 풍자를 담은 패러디로 지진 피해자나 수험생을 혼란스럽게 한다. 수험생 커뮤니티 사이트는 수능 시험일을 앞두고 ‘지진특강-1주일 단기완성', ‘지구가 준 선물: 마지막 일주일을 불사르는 특강'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놓고 들썩거렸다. 일부 게시물은 교육방송 EBS의 특강처럼 합성돼 제작됐다.

교육기관이나 학원가에서 실제로 마련된 특강은 아니다. 이 게시물들은 일주일 미뤄진 수능에 맞춰 교육기관과 학원가에서 재빠르게 기획된 특강을 패러디할 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일부 학원은 수능 연기가 발표된 직후 특강 광고로 대대적인 홍보를 전개했다.

자유한국당 류여해 최고위원의 망언도 회자된다. 그는 1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문재인 정부에 하늘이 주는 준엄한 경고, 천심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결코 이를 간과해 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논란이 되자 류 위원은 가짜 뉴스라며 항변했지만 궁색한 변명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류 위원이 야당 입장에서 현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포항 지진을 이용했다는 것을 안다. 차라리 “말실수를 했다. 잘못했다”고 수습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인의 자세다.

아마 수십 년이 지나도 류 위원의 말은 회자되고 기억될 것이다. 필자가 20여 년 전 대학입시 때 느꼈던 감정을 아직도 기억하듯이 2017년 11월 수능 때 저런 망언을 한 사람이 있었다고.

천재지변이지만 지진은 문재인 정부에게 어려운 과제를 안겼다. 수능이 문재인 정부의 ‘재난대응능력시험’이 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번 시험에서 만점을 받을 수 없더라도 최선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래야 지난 정권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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