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애호가 문학수의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백창화 괴산숲속작은책방 대표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문학수 지음 돌베개 펴냄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갓 취업한 언니가 월급을 털어 최초로 산 건 ‘전축’이었다. 이 고급한 물건을 들여놓으면서 함께 사들고 온 레코드판이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였다. 전축도 신기하고, 음악도 신기한데 음반이 달랑 한 장 밖에 없으니 우리는 매일 매일 이 음반을 듣고 또 들었다. 책읽기를 좋아하던 나는 음반에 들어있는 작품해설과 줄거리를 외울 정도로 읽었고 가사 하나하나 뜻을 음미하며 노래를 들었다. 그때 들었던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아다지오 소스테누토>의 저자인 문학수 기자가 처음 클래식을 만났던 것도 중학생 때였다. 전축이 있던 친척 할머니 집에 일주일에 한 번씩 달려가 바흐와 하이든,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듣던 소년은 대학생이 되자 명동 ‘필하모니’ 음악감상실을 드나들었고 기어이는 클래식음악 애호가이자 비평가가 되고 말았다.

책의 첫 장을 펼치자마자 쉬지 않고 한달음에 책을 읽어 내려간 것은 그의 이런 이력들 때문이다. 어쩌면 나도 어렸던 그 시절, 언니가 클래식 음악에 좀 더 몰두했더라면, 혹은 여유가 있어서 음반을 좀 더 사들였더라면 나도 지금쯤 클래식 애호가가 되어 있었을까, 이런 부질없는 생각으로 책장을 넘긴다. 저자보다 조금 늦었지만 역시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나도 당시 전설적인 음악감상실이던 종로 ‘르네상스’와 명동 ‘필하모니’를 몇 번 드나들었는데 그때 이미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던 두 곳은 곧 문을 닫고 말았고 아쉽게도 나의 클래식 입문은 다시 좌절되고 말았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책에 빠져들었다.

책에서 저자는 음악가들의 생애와 음악을 이야기한다. 바흐와 하이든,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베를리오즈와 쇼팽, 바그너, 브람스, 말러, 드뷔시. 에릭 사티와 쉰베르크, 쇼스타코비치. 그리고 전설의 피아니스트 호로비츠와 글렌 굴드까지 이름만큼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음악가들. 한 권의 책으로 그들의 모든 걸 담아낼 수는 없겠으나 저자가 특히 공명했던 그들의 삶과 사랑, 명연주와 명반을 소개하고 있다.

음악가의 생생한 삶과 시대를 만나

책 제목은 <아다지오 소스테누토>지만 부제를 ‘어느 인문주의자의 클래식 읽기’라 한 것은 저자가 단순히 그들의 삶을 백과사전 식으로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가 생각하기에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는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고’ ‘한 개인의 내면을 만나는 일인 동시에 그가 살았던 시대와의 대면’이기에 책을 읽는 우리도 저자의 안내를 따라가며 한 음악가의 생생한 삶과 한 시대를 만나게 된다.

CD가 170장에 이를 정도로 많은 음악을 남긴 바흐. 아직도 사람들이 왜 그의 음악을 듣는 걸까. 묻는 질문에 호들갑스럽지 않고 질서정연하며 논리적이기 때문이라는 답을 들려준다. 그래서 바흐를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신이 맑아진다는 것이다. 하이든은 하층 계급에서 태어났지만 77세까지 살며 생전에 부와 명성을 누리고 100곡이 넘는 교향곡과 70곡 가까운 현악4중주, 34곡의 오페라를 써낸 은근과 끈기의 대기만성형 음악가다.

음악신동이자 천재였던 모차르트는 20대 시절 6시면 일어나 9시까지 곡을 쓰고 오후 1시까지 레슨을 하고 이후 다시 밤 9시까지 작곡을 했다. 그러고도 생계를 위해 월 20회씩 연주회를 열어야 했던 가난하고 고단한 가장이었다. 천재라고 해서 노력 없이 먹고 살 수는 없는 법인 것이다.

모든 장르가 그렇듯이 음악도 기존의 형식을 무너뜨리고, 변형과 파격을 통해 새 시대를 열어왔다. 천재들은 한 장의 악보를 남겼지만, 그것을 소리로 구현한 연주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저마다의 음악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지금 사람들은 자기만의 방 안에서 역시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음악을 삶에 물들이고 있으니 예술이란 창작자와 향유하는 자 모두가 위대하다는 저 명제가 거짓이 아닐지 모른다. 바흐도, 바흐를 연주한 글렌 굴드도, 글렌 굴드의 피아노를 사랑하는 우리도 모두 똑같이 존귀하다.

‘음악은 애초에 인문학의 범주에 놓여 있었다. 미국의 인문학자 월터 카우프만에 따르자면 인문학이란 철학과 문학, 종교와 역사, 음악과 미술을 통틀어 일컫는다. 말하자면 음악이 지향하는 바는 이른바 전인성이었다는 얘기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