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산은 청주시민 삶의 체취와 추억이 묻어 있는 마음의 고향이다. 오르는 산등성이마다 향수의 조각이 숲 속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수리부엉이를 쫓으며 하늘로 쏘아 올린 어린 날의 푸른 꿈이 뭉개 구름으로 남아 산 정수리를 감싼다.

우암산으로 소풍을 가던 그리움의 길목엔 아직도 아카시아 향기가 알싸하고 상수리나무 사이에선 살찐 청설모가 토실토실한 알밤을 정신 없이 까먹는다. 산을 찾는 검정 고무신이 운동화로, 등산화로 바뀌고 계절의 순환이 수천, 수만 번 거듭하였어도 우암산의 우직한 모습은 변함이 없다.

나들이를 갔다 청주로 돌아올 때 플라타너스 숲 사이로 우암산이 보이기 시작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하다. 멀리서 보아도 좋고 가까이서 보면 더욱 좋은 산이다. 그래서 우암산은 청주의 어머니와 같은 산이다.

청주의 진산(鎭山) 우암산은 ‘소가 누운 모습 같다’ 하여 원래 와우산(臥牛山)으로 불리었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조선환여승람(朝鮮輿勝覽)과 일제시대 일인 오오꾸마 쇼지(大熊春峰)가 만든 청주연혁지에도 우암산은 ‘와우산(臥牛山)으로 명기하고 있으며 더러는 우산(牛山)이라는 약칭으로도 불리었다.

이외에도 당이산(唐山), 장암산(壯岩山), 대모산(大母山), 모암산(母岩山), 목암산(牧岩山), 목은산(牧隱山) 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대모산, 모암산은 ‘어머니와 같은 산’이라는 뜻이며 목암산, 목은산은 고려말 삼은(三隱) 중의 한 분인 목은(牧隱) 이색(李穡) 선생과 연관이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언제부터 와우산과 이같은 별칭들이 사라지고 우암산이라는 명칭이 등장하여 보통명사화 된 것일까. 정확한 사연은 알 길이 없으나 대략 1935년 무렵부터 와우산 명칭이 우암산으로 바뀐 듯 하다.

일설에는 와우산과 청주대 구내에 있는 용암사(龍岩寺)의 음운이 결합하면서 우암산이 되었다는 얘기가 있으나 용암사의 창건이 1945년이므로 이 논리는 맞지 않는다. 아무튼 일제지배 중기부터 와우산이 우암산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제는 우리의 고유지명을 일본식으로 많이 바꾸었는데 우암산도 그 영향을 받지 않았나 추정될 뿐이다.

지난 1960년대부터 우암산을 와우산으로 환원시키려는 노력이 뜻 있는 사람들에 의해 몇 번 시도된 바 있으나 공교롭게도 와우아파트 붕괴사건이 발생하여 꺼림칙하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그런데 1993년에는 우암상가 아파트 붕괴사건이 발생하였다. 우연의 일치이지만 ‘소가 들어 누우니 와우나 우암이 명칭으로 들어간 곳은 붕괴 위험이 있다’는 속설이 떠돌았으나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암동에는 건물 한 채 지을 수 없다는 논리가 된다.

한자의 의미로 풀어보면 우암산은 죽은 산이요 와우산은 살아 있는 산이다. 우암산은 소가 바위로 변한 산이고 와우산은 살아 있는 소가 단지 누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와우산이라는 명칭 속에는 무언가 살아 꿈틀대는 생명력을 느끼게 되고 우암산이라는 명칭 속에서는 무미건조함과 화석화된 산의 모습이 연상되는 것이다.언어 관습이란 참으로 무섭다. 일제식 용어 ‘본정’이나 ‘오정목’에서 ‘성안길’ ‘방아다리’라는 우리지명을 찾는 데는 무려 반세기가 걸렸다. 우암산이 일본식 용어는 아니지만 일제 때 바뀐 명칭이므로 그 이전의 이름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가칭 ‘와사모’(와우산을 사랑하는 모임)라도 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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